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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 경험의 즐거움 539

<우는 남자> 그는 외강내유의 상남자였다

어릴적 엄마 손 잡고 여탕에 간 기억은 내게도 있다. 욕실 문화의 발달로 인해 근래 대중 목욕탕이 점차 자취를 감춰가는 추세라 다소 아쉬운 감이 있지만, 덕분에 이는 더욱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듯싶다. 얼마전 여탕에 데리고 들어올 수 있는 남아의 연령을 5세 아래로 낮춰야 한다며 여성들이 한껏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기사를 언뜻 본 적이 있다. 요즘 아이들은 예전과 달리 발육 속도가 빨라 5세만 돼도 성 정체성에 눈을 뜨는 경우가 많아 여성들에겐 상당한 부담감으로 작용하는 모양이다. '곤'이라 불리는 소년이 있다. 유년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온 곤에게도 한국에서의 잊을 수 없는 기억 중 하나가 바로 엄마 손 잡고 따라간 대중 목욕탕이다. 때문에 그에게 한국 하면 으레 떠오르는 ..

<말레피센트> 엄마 미소짓게 만드는 행복한 영화

프랑스 작가 샤를 페로의 동화 를 재해석한 영화다. 실은 재해석이라기 보다 모티브는 해당 동화로부터 차용해온 게 분명하지만 젼혀 새로운 작품의 탄생이라 봐야 함이 맞겠다. 매력 만점의 마녀 요정 말레피센트의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변덕(?)과 때로는 심술, 그리고 그녀의 마법에 맞서는 인간 세계의 탐욕이 이 영화의 요체다. 물론 그의 배경엔 사랑과 애증 그리고 끝없는 욕망의 기제가 깔려 있다. 새롭게 창조된 세계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요정들의 모습 그리고 이들이 나누는 특이한 소통 방식을 보는 재미는 상당히 쏠쏠하다. 판타지적 상상력에 의해 탄생한 다양한 생명체들은 기존 영화 속에서 흔히 봐왔거나 동식물의 외양에서 따온 모습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어찌 보면 다소 식상한 감이 없지 않다. 좀 더 기발한 캐릭..

<SX테잎> 공포감이라 쓰고 역겨움이라 읽는다

마치 주인공 자신이 1인칭 시점에서 직접 촬영한 것처럼 꾸민 이른바 페이크 다큐 류의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공포감을 느끼게 하기보다는 극도의 역겨움을 선사해 주고 싶어 안달이 난 모양새다. 다큐멘터리 기법을 빙자한 페이크에 덧불여 공포 영화라는 타이틀 자체도 애초부터 페이크였으리라 짐작될 만큼 어마어마한 짜증을 유발해 온다. 오싹함이 느껴지기보다는 못 볼 것을 본 느낌이라고 하면 좀 더 정확한 표현이 되지 않을까 싶다. 미술을 전공하는 질(케이틀린 폴리)과 아담(이안 던컨)은 연인 사이다. 질의 일상을 좇으며 카메라에 담는 게 취미인 아담, 카메라와 함께 하는 일상은 그날도 계속됐다. 이들의 촬영은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칠 만큼 과도한 측면이 슬쩍 엿보인다. 질의 미술 작품을 전..

<끝까지 간다> 능청스러움과 카리스마의 불꽃 대결

이 영화가 무척 흥미롭게 다가오는 건 순전히 물셀 틈 없을 정도로 탄탄하면서도 정교한 시나리오 덕분일 게다. 헐리우드 액션을 어설프도록 무작정 좇지 않았다는 부분에도 높은 점수를 줘야 할 것 같다. 한 마디로 한국형 액션의 모범답안을 제시해 주는 영화 아닌가 싶다. 영화는 초반부터 마지막 끝나는 그 순간까지 제목 그대로 끝까지 달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무조건 달리기만 하지는 않는다. 심각한 상황에서조차 관객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터져나오게 만드는 웃음 코드는 이 영화만의 또 다른 매력이다. 액션과 코믹을 적당히 버무려놓아 마치 맛난 퓨전 음식을 먹고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강력반 형사 고건수(이선균)는 어머니의 장례식날 업무상 비위 혐의로 감찰반의 내사를 받게 돼 경찰서로 호출된다. 음주 상태로 차..

<더 바디> 깔끔하게 잘 짜여진 추리소설 같은 영화

흡사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돌려보던 코난 도일의 얇은 문고책 한 권을 얻어 읽은 느낌이다. 검은색 바탕의 50권 짜리 추리소설 시리즈 말이다. 물론 너무 오래된 일이라 출판사를 기억해낼 수가 없다는 점은 함정이다. 영화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그런데 이 영화 어쩌면 모 평론가의 평론처럼 반전 하나에 모든 운명을 걸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마지막 반전이 백미라는 의미이다. 관람 전부터 전해 들은 극적인 반전 요소 덕분에 관람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었으며, 끝까지 사건 경위를 짚어가는 솔솔한 재미도 뒤따른다. 오로지 아내의 자산과 배경만을 노리고 결혼한 알렉스(우고 실바), 그는 카를라(오라 가리도)라는 젊은 여성과의 혼외 교제 끝에 아내인 마이카(벨렌 루에다)를 살해하기로 결심한다. 모든..

<그가 그립다> 우리에겐 과분했던 노무현, 그래서 더욱 그립다

"이런 게 어딨어요,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영화 속 송변의 대사 한 꼭지다. 생전 노무현 님의 모습을 어쩜 저리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 싶다. 노무현 님의 인품과 성격이라면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와 저런 식의 투박한 말투로 한 마디 툭 내던지셨을 것 같다. 틀림없다. 5월 23일 오늘은 그분이 홀연히 떠나가신 그날이다. 올해로 벌써 5번째에 접어든다. 확실히 해가 거듭될수록 북받쳤던 감정들이 추스러지며 점차 차분해져가는 느낌이다. 올해는 세월호 참사라는 국가적 재난 상황 여파 때문에 예년처럼 전국 단위의 추모 행사가 치러지지 못하는 듯싶다. 덕분에 이제껏 단 한 차례도 거른 적 없었던 서울에서의 추모행사를 올해는 참석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노무현재단 공지글 캡쳐 대신 책 한 권을 통해 다시금..

<방황하는 칼날> 그의 방황이 우리사회에 상식을 묻는다

생활 여건이 개선되어 그런지 과거에 비해 요즘 아이들의 성장 속도는 눈부실 정도로 빠르다. 초등학생 5,6학년만 돼도 덩치가 눈에 띠게 커지며 확연히 달라 보이니 말이다. 신체는 이미 성인의 그것을 능가할 만큼 훌쩍 자란 아이들이 부지기수다. 그렇다면 정신적인 측면에서의 성장은 어떨까? 아무래도 웃자란 신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여물어 둘 사이에 부조화를 이루는 아이들의 경우가 왕왕 있다. 간혹 요즘 아이들이 너무 영악하다고들 말한다. 아이들을 그저 아이들로만 바라볼 수 없게 만드는 오염된 주변 환경 요인들 탓이다. 물론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모습은 어른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라 하지 않았던가. 결국 아이들의 모습 속에선 기성세대인 어른들의 실체가 그대로 투영되고 있는 셈일 테니, 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전혀 어메이징하지 않은 거미인간

거미인간이 이젠 식상하다? 거미줄을 이용해 뉴욕 도심 사이를 가로지르며 활강하는 스파이더맨, 이전 버전들보다 한결 섬세해졌으며 새로운 관점과 시각에서의 연출에 공을 들인 듯 꽤나 날렵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게다가 코믹한 행동과 애드립 능력까지 겸비했다. 그러나 정확히 거기까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화끈하고도 가슴 뻥 뚫릴 만한 액션 장면을 기대하며 영화관을 찾았건만 식상한 액션과 생각지도 못한 지루한 로맨스만을 감상하고 나온 느낌이다. 어차피 CG로 떡칠한 장면 하나 하나에선 새로움이나 번뜩이는 무언가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가장 실망스러웠던 부분은 스파이더맨과 대척점에 서 있던 악당 '일렉트로'의 등장이다. 감독이 애초 '일렉트로'와 같이 너무도 뻔한 캐릭터보다 참신한 악당을 창조해내지 ..

<온리 갓 포기브스> 진정한 절대자란 일상 속에 존재한다

복잡 미묘한 감정이 교차하게 만드는 영화다. 황당함과 역겨움 속에서도 무언가에 끌리는 느낌이라 하면 이해가 될까. 어쨌든 이 영화 속엔 차마 말로 형언하기 힘든 묘한 분위기가 혼합되어 있다. 아니 단순히 물리적으로 섞인 것만이 아닌,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전혀 새로운 물질로 화한 느낌이다. 오로지 신만이 용서가 가능하다는 타이틀이 강한 자성으로 나를 이끌더니, 태국을 배경으로 한 퇴폐적인 분위기의 시뻘건 홍등가와 뒷골목 이미지들은 이러한 묘한 분위기에 뚜렷한 상승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태국에서 권투 클럽을 운영하는 줄리엔(라이언 고슬링)의 형이 어느날 사창가에서 미성년자인 상대 여성을 죽이고 자신도 죽임을 당한다. 죽은 여성의 아버지가 그의 형을 죽인 것이다. 하지만 외양상 그녀의 아버지가 죽인 사실이..

<한공주> 아무도 공주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나라 전체가 어수선하다. 갈수록 늘어가는 사망자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런데 이 혼란함을 틈타 한동안 잠잠해있던 정치병 환자들이 수면 아래에 있던 머리를 빼꼼히 쳐들기 시작했다. 이번 참사를 기화로 또 다시 한반도를 좌우 프레임으로 나누어 서로 물어뜯기에 여념이 없어 보인다. 국가적 재난상황과 좌우 이념이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다고 저러는 걸까? 우리 사회의 이념 갈등은 잠복돼 있다가도 이렇듯 결정적인 순간이면 언제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사회 전체를 큰 혼돈 속으로 빠뜨린다. 심각한 사회적 병리 현상이 아닐 수 없으며, 우려하던 일이 현실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앞으로 커다란 혼란이 야기될 때마다 비슷한 홍역을 치르게 될 게 너무도 뻔하다. 자중지란이란 표현이 딱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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