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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저냥 303

덜덜 떨면서 먹어야 제맛.. 얼어 죽어도 '동치미국수'

26일 서울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5도까지 곤두박질쳤다. 한겨울로 깊숙이 진입한 모양새다. 습관처럼 켜놓은 TV 화면에는 목도리 등으로 칭칭 감싼 차림새로 얼굴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기상 캐스터가 등장,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며 외부의 느낌을 생생히 전하고 있었다. 덕분에 조금은 밋밋하여 잊고 지내온 한겨울의 느낌이 온전히 되살아난다. 이런 날에는 움직임 자체가 무척 곤혹스럽다. 일요일인 게 천만다행이다. 오늘처럼 온몸이 오들오들 떨릴 정도로 몹시 추운 날이면 으레 따스한 국물이 곁들여진 음식을 찾기 마련이다. 하지만 난 그 반대다. 추우면 추울수록 되레 덜덜 떨면서 먹어야 제 맛으로 다가오는 음식 하나를 떠올린다. 흔히들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생각하기 십상이겠으나 이는 아니다..

그냥 저냥 2021.12.26

산책은 늘 즐겁다

해가 또 바뀌었다. 눈 깜짝할 새다. 시간의 속도가 나이에 정확히 비례한다더니 정말 그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전광석화와 같다. 오랜 풍화작용에 의해 돌의 거친 표면이 점차 부식되고 무뎌지는 것처럼 나이가 들면서 말랑말랑하던 나의 감정도 딱딱하게 경화된 탓인지 이젠 해 바뀜 현상마저도 별 감흥이 없다. 언젠가부터 새해맞이 이벤트 따위는 먼 나라 이야기가 돼버렸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해가 갈수록 왠지 더욱 애착 가는 것들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산책이다. 하루 24시간 중 오롯이 혼자서 걷고, 혼자서 생각하는 바로 그 시간이 내겐 점점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하루를 갈무리하는 데 있어 산책만큼 효율적인 건 없는 것 같다. 산책은 그 자체로 유산소운동 효과가 있는 ..

그냥 저냥 2020.01.02

아메리카노와 한약

한국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다는 한 브랜드 커피전문점에 들렀다. 물론 개인적으로 간 건 아니다. 모임의 뒤풀이 장소라 어쩔 수 없이 가게 됐다. 입구에 들어서니 높다란 천장과 넓게 트인 매장의 전경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러한 개방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좁아터진 공간의 여느 커피숍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좌석 곳곳에 노트북을 펼쳐놓은 채 무언가 작업에 몰두하는 손님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그 가운데서도 넓은 공간에 비해 터무니없이 좁아 보이는 긴 협탁에 상대방의 노트북이 닿을 듯 말 듯 마주 앉은 젊은이들의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일행이 아닌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가까이 마주 앉는다면 난 답답해서 못 견딜 것 같은데, 정작 그곳에 앉아있는 이들은 전혀..

그냥 저냥 2019.12.23

관계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

호스피스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기도를 해주던 한 신부님이 있었다. 이 신부님은 죽음에 임박한 환자들에게 그동안 살아온 인생이 어떠했느냐 물었고, 이들 가운데 80%가량은 ‘인생이 아주 짧은 1박 2일 같았다’고 답했단다. 고 천상병 시인 역시 그의 시 ‘귀천’을 통해 삶을 일찌감치 소풍으로 비유한 바 있다. 그의 뛰어난 통찰력에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 하지만 적어도 눈을 감는 순간 이를 되감아볼 경우, 우리가 지나온 자취는 길어봐야 1박 2일, 그도 아니면 소풍처럼 아주 잠깐 머물렀던 기억으로 남게 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죽는 순간 가장 후회하는 건 무얼까? 죽는 이들의 십중팔구는 ‘관계’를 가장 아쉬워하고 있었다(이근후의 저서 ‘백 ..

그냥 저냥 2019.12.22

살아있는 매 순간을 긍정의 에너지로

얼마 전 위암 4기를 앓고 있다는 한 동화작가를 TV 방송을 통해 우연히 본 적이 있다. 얼굴이 워낙 앳된 데다 시종일관 밝게 웃고 있던 터라 그녀가 암과 사투를 벌이는 환자라는 사실이, 그것도 암 세포가 온몸에 전이된 단계인 4기에 이르렀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녀는 어느 누구보다 씩씩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싫거나 힘든 기색 하나 없이 3살가량의 아이를 돌보며 틈틈이 항암치료를 병행하고 있었고, 그녀가 좋아하는 그림 그리기와 동화 창작 작업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암은 모든 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엄청난 기술 발전 속에서도 여전히 난공불락의 영역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한 일본인 의사는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혹시 암에 걸린 게 아닐까 두려워 스트레스를 받느니 차..

그냥 저냥 2019.12.21

송년회식 때 보신탕이요? 아무려면 어때요, 하지만

“무얼 드시겠어요?”라는 질문에 “보신탕이오”라는 답변이 오간다. 복날 풍경이 아니다. 어제 송년회식에 참석한 한 회원의 음식 주문 광경이다. 특별한 사정 때문에 각자 먹고 싶은 메뉴를 선택하기로 했는데, 보신탕이 선택지로 등장하게 될 줄은 나를 포함한 어느 누구도 짐작조차 못했던 것 같다. 덕분에 난 내 귀를 의심해야 했다. 우리 모임은 특성상 남녀의 성별 비율이 비슷했고 연령대가 다양했다. 단순한 친목 목적이 아닌 협업을 위해 지난 1년 동안 다듬고 유지해온 모임이다. 그 가운데 가장 연장자인 남성 회원 두 분이 보신탕을 주문한 것이다. 과거에 비해 요즘엔 어디서건 개인의 취향을 최대한 존중해주는 분위기다. 집단의 그림자에 가려져왔던 개별성에 비로소 햇볕이 들고 이를 인정받는 셈이니, 이러한 환경이 ..

그냥 저냥 2019.12.19

'라떼는 말이야' 꼰대 광풍이 우려스러운 이유

‘라떼는 말이야’ 입 밖으로 말을 끄집어낼 때마다 ‘나 때는 어땠는데..’ 라는 식의 표현을 일삼는, 이른바 ‘꼰대’를 풍자하는 표현이다. 꼰대란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으며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나이 많은 부류’를 일컫는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권위주의, 서열주의, 특권의식 등을 비틀어 부르는 단어다. 반겨할 만한 소식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꼰대라는 단어가 우리만의 울타리를 넘어 어느덧 해외로까지 진출했다. 비록 좋은 의미는 아니더라도 ‘재벌(chaebol)’과 ‘갑질(gapjil)’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식 표현의 세계화에 일조한 셈이니 쾌거라면 쾌거라 할 수 있겠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가 지난 9월 23일 ‘오늘의 단어’로 '꼰대(KKONDAE)'를 선정하면서 전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세대..

그냥 저냥 2019.12.18

조금 특별한 건배사? 이런 건 어떨까

또 다시 돌아온 연말 시즌이다. 하지만 올해는 다른 때보다 조금 더 각별하다. 2010년대를 마감하는 해이기 때문이다. 각 매체에서도 지난 1년뿐 아니라 10년 동안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다루며 과거를 복기하고 있다. 이 즈음이면 또 다시 한 해를 보냈다는 아쉬운 생각에 괜스레 마음이 바빠지기도 하지만, 직장이나 친목 모임 등 각종 연말 술자리가 절정에 이르는 시기이라 몸도 덩달아 바빠진다. 연말 술자리 하면 으레 따라붙는 게 있다. 다름 아닌 건배사다. 건배사는 과거 중세시대에 술잔을 부딪쳐 쨍하는 소리를 내야 마귀를 쫓을 수 있다며 의식처럼 행해진 데서 유래한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로마시대에 상대방의 술에 독이 들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 때문에 건배 행위를 통해 술잔을 서로 부딪치고 이를 통해 자..

그냥 저냥 2019.12.17

내가 전철에서 이어폰을 사용하는 이유

며칠 전의 일이다. 전철역에 있는 무인 도서 대여 기계를 이용하여 책을 빌리고 있었다. 장바구니에 이미 책 세 권을 담아둔 상태였고, 한 권을 더 빌리기 위해 스크린을 이용하여 검색하던 찰나였다. 20대쯤 되어 보이는 한 여성이 내게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도서 반납 시간이 임박해서 그러는데 자신의 책을 먼저 반납하면 안 되겠느냐”고 묻는다. 도서 대여 절차가 거의 끝나가는 순간, 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의 것을 먼저 처리하겠노라는 속내를 떳떳이 밝힌 이 여성의 발칙한(?) 행동엔 주저함 따위는 전혀 없었다. 당당했다. 오히려 당황한 건 내 쪽이었다. 나는 거의 마지막 단계에 놓인 도서 대여 절차를 포기하고 그녀에게 양보해야 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하던 작업을 계속해서 마무리해야 하는지, 정확히 10초 ..

그냥 저냥 2019.12.16

시속 30km의 폭풍 드리블로 완성한 손흥민 인생골

멀리 영국으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손흥민에겐 인생골이라 할 만한 멋진 골이 터진 것이다. 8일(한국시각) 토트넘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번리와의 홈경기에서다. 기적 같은 일은 전반 32분쯤 일어났다. 토트넘 골 에이리어 근처에서 번리 공격수의 발을 맞고 튀어나온 공이 뒤에 서 있던 손흥민에게로 향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어느 누구도, 심지어 손흥민 본인조차도, 이 공이 오직 한 사람에 의해 직접 골로 완성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공을 잡은 손흥민은 평소처럼 동료에게 이를 패스하려는 듯 주변을 부지런히 살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던 모양이다. 상대 수비수들이 그의 주변을 촘촘히 에워싸며 시야를 방해했다. 그는 주춤주춤하다가 패스를 체념한 듯 갑자기 드리블하기 시작했다. 순간 상대 수..

그냥 저냥 2019.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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