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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말이야' 꼰대 광풍이 우려스러운 이유

새 날 2019. 12. 18.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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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말이야’


입 밖으로 말을 끄집어낼 때마다 ‘나 때는 어땠는데..’ 라는 식의 표현을 일삼는, 이른바 ‘꼰대’를 풍자하는 표현이다. 꼰대란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으며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나이 많은 부류’를 일컫는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권위주의, 서열주의, 특권의식 등을 비틀어 부르는 단어다. 


반겨할 만한 소식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꼰대라는 단어가 우리만의 울타리를 넘어 어느덧 해외로까지 진출했다. 비록 좋은 의미는 아니더라도 ‘재벌(chaebol)’과 ‘갑질(gapjil)’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식 표현의 세계화에 일조한 셈이니 쾌거라면 쾌거라 할 수 있겠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가 지난 9월 23일 ‘오늘의 단어’로 '꼰대(KKONDAE)'를 선정하면서 전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고 소통을 막아 관계를 단절시키는 꼰대적 세태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젊은 세대들이 근래 부쩍 늘었다. 이들은 과거 세대와 달리 의사 표현에 좀 더 능동적이다. 부조리를 참고 침묵으로 일관하기보다 되레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의를 제기하고 현실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한다. 기성세대의 횡포에 ‘잘못됐다’며 신호를 보내고 과감히 반기를 든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불거지고 있는 일련의 현상, 즉 꼰대 기피 내지 혐오 현상은 이의 대표적 사례다. 그만큼 그동안 쌓인 게 많았노라는 방증이다. 작금의 분위기를 교묘히 상술에 이용하려는 업체들도 하나둘 늘어나는 추세다. 편의점 CU의 카페라떼맛 과자 '라떼는 말이야'와 카카오톡의 '꼰대티콘-꼰대 김부장' 이모티콘 출시가 대표 사례다. 이쯤 되면 가히 꼰대 광풍이라 할 만하다.



사회 곳곳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청년들이 늘어나면서 꼰대는 점차 설 곳을 잃어가는 양상이다. 꼰대 몰이가 한창이다. 이를 두고 권위주의와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세대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세대 간 단절됐던 관계를 복원시켜주는 셈이니 여러모로 바람직해 보이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 했다. 


쥐 잡듯이 특정 방향으로 몰아세우며 휘몰아치는 이 광풍은 지금 우리 사회에 꼰대라는 단어 하나에도 지나치도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과민성 꼰대 증후군’ 현상을 낳게 한다. 주변에서 하도 ‘꼰대 꼰대’ 하며 분위기를 띄우니, 일상 속 대화에서도 혹시 자신이 꼰대가 된 건 아닐까 싶어 스스로를 돌아보고 의심하는, 자기검열에 빠져드는 경우가 다반사다. 


심지어 누군가와의 대화 도중에도 상대방의 특정 발언에 대해 ‘어머, 그렇게 말하면 꼰대 아니니?’ 하며 지적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꼰대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지적질’인데, 이 꼰대라는 낙인찍기를 피할 요량으로 또 다시 지적질을 해대는, 결코 웃을 수 없는 현상이 일상에서 곧잘 벌어진다.



꼰대 행태를 문제 삼고 배척했던 목적은 애초 세대 간 단절을 막고 관계를 원활히 하여 갈등을 봉합하고자 함에 있었을 테다. 하지만 꼰대 광풍은 결과적으로 꼰대라는 어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과민성 꼰대 증후군을 낳았다. 과도한 현상이 자기검열을 촉발시키고, 지적질을 자꾸만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꼰대 광풍은 앞선 세대에 대한 이미지를 무조건 깎아내리거나 부정적으로 각인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염려스럽다. 앞선 세대가 있었기에 젊은 세대가 존재하는 것일 텐데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현상이 못마땅한 일부 기성세대는 소통에 나서기보다 차라리 입을 굳게 다무는 극단적인 전략을 택하기도 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세대 간의 갈등을 봉합하고 관계를 증진시키는 게 아니라 자칫 세대 간의 간극을 더욱 넓히고 관계를 좀 더 멀어지게 하는데 일조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라떼는 말이야’로 대변되는 작금의 꼰대 광풍이 우려스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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