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송년회식 때 보신탕이요? 아무려면 어때요, 하지만

새 날 2019. 12. 1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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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 드시겠어요?”라는 질문에 “보신탕이오”라는 답변이 오간다. 복날 풍경이 아니다. 어제 송년회식에 참석한 한 회원의 음식 주문 광경이다. 특별한 사정 때문에 각자 먹고 싶은 메뉴를 선택하기로 했는데, 보신탕이 선택지로 등장하게 될 줄은 나를 포함한 어느 누구도 짐작조차 못했던 것 같다. 


덕분에 난 내 귀를 의심해야 했다. 우리 모임은 특성상 남녀의 성별 비율이 비슷했고 연령대가 다양했다. 단순한 친목 목적이 아닌 협업을 위해 지난 1년 동안 다듬고 유지해온 모임이다. 그 가운데 가장 연장자인 남성 회원 두 분이 보신탕을 주문한 것이다. 


과거에 비해 요즘엔 어디서건 개인의 취향을 최대한 존중해주는 분위기다. 집단의 그림자에 가려져왔던 개별성에 비로소 햇볕이 들고 이를 인정받는 셈이니, 이러한 환경이 나로선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밖에서 함께 즐기는 음식도 한 종류로 통일하기보다 이렇듯 각자의 취향에 맡겨버리는 경우가 잦다. 그래서일까? 왠지 모두가 즐거워하고 만족해하는 눈치인 것 같다. 



음식점에서 제공되는 메뉴 가운데 무엇을 고르건 그건 전적으로 그 사람의 취향 문제다. 아울러 이는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날 일부 회원의 메뉴 선택은 왠지 고개가 갸웃거려지게 한다. 물론 송년회식이라고 하여 보신탕을 먹지 말라는 법은 없다. 분위기애 걸맞지 않은 음식을 주문하느냐며 누군가의 취향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보신탕이라는 음식을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펴려는 건 더더욱 아니다. 



다만, 다른 회원들에 대한 배려가 결여되었다는 점은 못내 아쉽다. 학교 동창 등 동년배의 단순한 친목 모임이었다면 혹시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즉 우리처럼 성향이 서로 다르고 연령대도 다양하며 성별도 고르게 섞인 모임이라면 적어도 누군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등의 논란이 될 법한 메뉴 선택만큼은 피했어야 옳지 않을까 싶다. 이런 게 바로 존중이고 배려 아닐까?


이날 회식에 참석한 누군가는 보신탕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몸서리쳤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반려견을 애지중지 키우며 모임 단톡방에 근황을 자주 올리던 한 회원에게는 모르긴 몰라도 이러한 현실이 감정적으로 몹시 힘들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개중엔 보신탕이라는 음식 자체에 혐오를 느끼는 회원이 있을 수도 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채식주의자일지도 모른다. 



자신과 취향이 같지 않은 주변 사람들을 향한 배려가 결여된 개별성의 강요는 자칫 폭력으로 둔갑할 수도 있는 사안이다. 비단 물리적인 위해가 아니더라도 감정적으로 가해진 상처 또한 폭력이 되어 얼마든 곪아터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린 일상에서 간혹 경험하곤 한다. 타인의 감정을 철저히 무시한 대가는 더 많은 이들의 감정 밑바닥을 헤집으며 돌고 돌아 결국 자신에게로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한때 반려견을 키웠었고, 보신탕이라는 음식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던 내겐 그분들의 배려 없는 취향이 막무가내식 폭력으로 다가온다. 송년회에서 보신탕이라는 메뉴를 선택했다는 사실 자체가 어색해서라기보다 주변 사람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들의 취향만을 고집하는 그분들의 선택이 나의 감정을 온통 들쑤셔놓은 탓이다. 2020년 새해엔 아무쪼록 자신의 감정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누군가의 감정도 좀 헤아려가며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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