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관계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

새 날 2019. 12. 22.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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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기도를 해주던 한 신부님이 있었다. 이 신부님은 죽음에 임박한 환자들에게 그동안 살아온 인생이 어떠했느냐 물었고, 이들 가운데 80%가량은 ‘인생이 아주 짧은 1박 2일 같았다’고 답했단다. 고 천상병 시인 역시 그의 시 ‘귀천’을 통해 삶을 일찌감치 소풍으로 비유한 바 있다. 그의 뛰어난 통찰력에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 하지만 적어도 눈을 감는 순간 이를 되감아볼 경우, 우리가 지나온 자취는 길어봐야 1박 2일, 그도 아니면 소풍처럼 아주 잠깐 머물렀던 기억으로 남게 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죽는 순간 가장 후회하는 건 무얼까? 


죽는 이들의 십중팔구는 ‘관계’를 가장 아쉬워하고 있었다(이근후의 저서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인용). 흔히들 물질적인 결핍이나 경험해보지 못한 아쉬움 따위를 토로할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로는 인간관계를 가장 후회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관계란 누구와의 관계를 말하는 것일까? 평소 물리적으로 가장 가깝게 지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심리적 간극이 가장 크게 다가오는 가족과의 관계 아닐까?


제75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장편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는 미구엘이라는 한 멕시코 소년이 우연히 ‘죽은 자들의 세상’이라 불리는 저승세계로 들어간 뒤 그곳에서 하룻밤 동안 겪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 '코코' 스틸 컷


내가 평소 가장 신뢰하지 않는 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격언이다. 왜냐하면 저승에 간 사람은 많아도 아직까지 그곳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데, 어떻게 저승과 비교하여 이승이 무조건 더 낫다고 하는 것이지 도무지 신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 ‘코코’가 이러한 기존 통념을 통쾌하게 뒤집어버린다.


스크린 위로 펼쳐지는 저승세계는 이승 못지않게 화려하고 역동적이다. 이곳에서는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는 우리의 통념이나 상식과는 달리 이승과 작별을 고하고 이미 죽은 자들이 숨지기 전 살던 세상과는 또 다른 형태의 세상을 꾸린 채 제2의 삶을 누린다. 그러니까 ‘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격언이 적어도 이 영화속 세상에서는 통하지 않는 셈이다. 


뮤지션의 꿈을 간직한 미구엘은 이곳에서 전설의 뮤지션 에르네스토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러던 미구엘은 우연히 저승세계에 관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이승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자동으로 미구엘이 지금 발을 딛고 서 있는 저승세계로 보내진 뒤, 이곳에서 제2의 삶을 살게 된다. 이승에서 죽었다고 하여 모든 걸 잃지는 않는 셈이다. 하지만 저승세계에서 제2의 삶을 누리기 위해선 반드시 특별한 조건이 전제돼야 한다. 



이승에서 사는 누군가가 숨진 이를 그리워하고 늘 생각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이승세계로부터 잊히는 그 순간, 동시에 그는 저승세계에서 영원히 퇴출되어 비로소 영면에 들게 된다. 저승세계에서 제2의 삶을 누리는 데엔 결국 이승에서 맺은 인간관계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는 의미다.


이 영화는 죽음이라는 매개를 통해 가족과의 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독특한 설정과 상상력이 극대화된 비주얼은 관객의 감정과 시선을 스크린 속으로 확 빠져들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알고 보면 가족이란 존재는 굉장한 인연이다. 그 관계가 맺어지기까지의 과정을 확률로 따져보라. 경이로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늘 접촉 가능하다는 이유로 우리는 가족관계를 여타의 인간관계보다 소홀히 해온 경향이 없지 않다. 


긴 인생이라고 하지만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이를 되돌아볼 경우 결국 소풍처럼 짧디짧기만 한 우리네 삶이다. 죽을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들과의 관계에 조금 더 신경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상처를 준 일이 있다면 잘 보듬어 새살이 돋을 수 있도록 돕고, 데면데면한 관계라면 먼저 다가가 마음을 열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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