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살아있는 매 순간을 긍정의 에너지로

새 날 2019. 12. 2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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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위암 4기를 앓고 있다는 한 동화작가를 TV 방송을 통해 우연히 본 적이 있다. 얼굴이 워낙 앳된 데다 시종일관 밝게 웃고 있던 터라 그녀가 암과 사투를 벌이는 환자라는 사실이, 그것도 암 세포가 온몸에 전이된 단계인 4기에 이르렀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녀는 어느 누구보다 씩씩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싫거나 힘든 기색 하나 없이 3살가량의 아이를 돌보며 틈틈이 항암치료를 병행하고 있었고, 그녀가 좋아하는 그림 그리기와 동화 창작 작업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암은 모든 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엄청난 기술 발전 속에서도 여전히 난공불락의 영역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한 일본인 의사는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혹시 암에 걸린 게 아닐까 두려워 스트레스를 받느니 차라리 건강검진 자체를 받지 말라는, 다소 극단적인 주장을 펴기도 한다. 암 질병이 우리에게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가를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다. 


서두에서 언급한 동화작가를 보고 내가 놀란 건 바로 이 암 질병이라는 암담한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한 상황에서도 웃음과 용기를 잃지 않고 오히려 평소보다 더욱 열심히 삶을 꾸려나가는 밝은 그녀의 모습에 감응해서다. 더구나 그녀의 상태는 몸 곳곳으로 암세포가 전이되어 어느덧 완치가 거의 불가능한 4기에 이르렀다. 비록 그녀가 방송에서는 웃고 있는 모습이긴 하나 카메라가 닿지 않는 곳에서는 병마와 싸우느라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 에너지를 무한 발산하는 그녀의 모습 속에서 나는 작은 위안을 얻게 된다.



의사로부터 암 진단을 통보받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비현실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러다 시간이 조금 지나 현실감을 되찾게 되면 왜 하필 나인가 하는 원망의 싹이 움트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싹은 분노의 형태로 활짝 꽃을 피운다. 패닉 상태에 빠져듦과 동시에 자신의 여생을 그간 누적돼온 생존율 몇%라는 확률에 의존해야 하는 안타까운 처지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이를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진정한 용기 있는 자 아닐까 싶다. 


ⓒMBC


그렇다고 하여 이게 전부는 아니다. 이미 암 진단을 받고 힘든 항암치료를 이겨낸 뒤 좋은 예후를 기대해온 암 환자들 앞에는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린다. 다름 아닌 재발에 대한 두려움이다. 어쩌면 전이 등 재발로 인한 두려움은 처음 암 진단을 받을 당시의 충격보다 더 큰 중압감으로 그들을 억눌러온 존재일지도 모른다. 


알고 보면 이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우리의 신체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친다. 재발에 대한 두려움이 크면 그만큼 사망 위험도 증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삼성서울병원의 암 관련 공동연구팀이 악성 림프종 환자 400여 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재발에 대한 두려움이 큰 환자는 그렇지 않은 환자에 비해 사망 위험이 2.5배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가 비단 암 환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육신은 감정의 지배 하에 놓여 있으며, 감정 역시 육신의 지배를 받고 있는 까닭에 둘은 상호 의존적인 존재이자 서로에게 상수로 작용한다. 막연한 두려움의 감정은 스트레스로 진화, 몸에 해로운 물질을 분비하고 육신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모르긴 몰라도 암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는 이러한 결과가 더욱 치명적일 것이다. 


위암 4기의 동화작가는 쉽지 않은 투병 생활 속에서도 늘 밝고 긍정적인 모습을 통해 ‘암 환자도 이렇게 살아갈 수 있구나’ 하는 희망의 불씨를 쏘아 올린다. 더불어 비록 완치가 어려운 환경이라 해도 우리가 살아있는 매 순간만큼은 두려움 따위의 악감정을 모두 떨쳐내고 기죽지 않고 살아가야 할 당위성을 보여준다. 그녀는 혹시라도 맞닥뜨리게 될지 모를 불행 앞에서도 의연히 일상의 삶을 누리는 용기를 몸소 실천함으로써 현재 암과 싸우는 수많은 환우들뿐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따스한 위로를 건넨다. 그녀의 용기 있는 삶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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