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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 경험의 즐거움 539

아련한 감성, 삶의 긍정 에너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나(키타무라 타쿠미)는 우리 반에서 가장 인기가 없는 학생이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두고 있지 않으며, 나 또한 그들과 관계를 맺고 싶은 생각이 딱히 없다. 복잡한 건 딱 질색이며, 단순하게 살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우리 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학생 가운데 하나인 사쿠라(하마베 미나미)가 내게 접근해온다. 이건 분명 놀랍고 뜬금없는 일이다. 당시 난 학교 도서관의 장서를 정리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런데 사쿠라도 도서위원에 가입, 나의 도서 정리 작업 프로젝트를 도우려 나선 것이다. 그러나 티없이 맑은 성품을 지닌 데다가 성격까지 좋아 모든 이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던 그녀는 어느 누구에게도 공개할 수 없는 비밀 하나를 간직하고 있었다. 난 그녀가 일기장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

미투 운동으로 더욱 의미있게 다가오는 영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지젤(류현경)은 덴마크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여류 화가다. 하지만 그림에 문외한인 내가 보더라도 유럽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사실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어찌 보면 똘기 충만한 그녀의 평소 행동과 걸맞은 결과물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지젤은 학업을 무사히 마쳤고, 덕분에 국내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동안 자신이 그린 작품들을 평가 받고 싶어 하는 그녀다. 갤러리 등에 작품 전시를 의뢰한다. 그러나 그녀를 반겨하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모두 거절 당하고 만다. 미술계를 쥐락펴락하는 기라성 같은 기존 작가들에 비하면 지젤은 대중적인 인지도가 형편 없이 낮은, 아주 보잘 것 없는 햇병아리 아티스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무언가 일을 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입시를 앞둔 ..

초저출산 국가의 민낯 '가족시네마 - 인 굿 컴퍼니'

직원 수가 10명도 채 안 되는 조그마한 출판사, 최근 사보 계약 건으로 비상이 걸렸다. 단기간 내 사보를 만들어야 하는 긴박한 상황, 이를 성공시킬 경우 회사는 앞으로 꽃길만 걷게 될 전망이다. 이쯤 되면 이 프로젝트에 회사의 명운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팀장을 비롯한 모든 직원들이 이에 사활을 걸고 매달리는 건 지극히 당연한 노릇이었다. 하지만 하필 이 중차대한 시기에 핵심 실무진인 지원(최희진) 대리가 출산에 나서며 대열로부터 이탈하고 만다. 회사는 단 한 사람의 손길도 아쉬운 판국이다. 출산과 육아로 이어지는 긴 시간 동안 그녀의 사정을 헤아려줄 여력이 단언컨대 이 회사에는 없다. 결국 그녀를 내보내고 새 사람을 뽑아야 할 상황이다. 팀장인 철우(이명행)가 총대를 매기로 했다. 회사..

생명윤리를 곱씹어보게 하는 작품 '가족시네마 - E.D. 571'

영화 '가족시네마'는 네 편의 각기 다른 스토리로 이뤄진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다. 'E.D. 571'은 그 가운데 세 번째 작품으로, 이수연 감독이 연출했다. 가까운 미래, 2030년의 일이다. 인아(선우선)는 요즘말로 표현하자면 골드미스다. 그녀는 국내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 한 기업체에 입사,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집과 회사만을 오가며 철저하게 회사인간화된 인물이다.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일에 치여 지내느라 결혼은 언감생심이다. 아니 어쩌면 애초 결혼 따위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다른 사람들의 시각으로 볼 땐 일 중독 환자임이 분명하다. 덕분에 회사 내에서는 승승장구다. 부장이라는 직책도 달았다. 이렇게 되기까지 그녀가 기울인 노력과 열정에 대한 스스로의 자부심은 대단..

타인의 남은 수명을 알 수 있다면 '빽넘버'

이원영은 중산층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난 인물이다. 유복한 가정 환경에서 자란 까닭에 요즘말로 표현하자면 금수저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은수저 정도의 계층은 되지 않을까 싶다. 그의 아버지는 최근 직장 내에서 임원으로 승진하였으며, 어머니는 이참에 기존의 승용차를 평소 갖고 싶어하던 이쁘장한 외제차로 교체한다. 대학생인 그에겐 윤지라 불리는 사랑스러운 연인이 있었으며, 온통 그에게 우호적인 환경 덕분에 학교 생활은 늘 즐거움의 연속이다. `그러던 어느날의 일이다. 고모할머니의 사망으로 원영네 가족 전체가 상갓집에 가게 됐다. 새로 구입한 어머니의 승용차를 활용키로 한다. 어머니는 운전 배테랑으로 평소 편안하고 안정된 운전 솜씨를 뽐내오던 터다. 문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간이 휴게실에 잠시 들러 ..

남겨진 자의 고통 '가족시네마 - 별 모양의 얼룩'

오늘은 지원(김지영)의 어린 딸이 유치원에서 단체로 캠핑을 떠났다가 현장에서의 화재로 인해 목숨을 잃은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당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1주기 추모 행사 참석 차 사고가 일어났던 현장으로 향하는 버스에 단체로 오른다. 1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은 길다면 길다. 이 흐름이 그들의 슬픔과 아픔을 어느 정도는 무디게 만든 듯 동행에 나선 아이들 부모의 표정은 한결 같이 평온해 보인다. 그러나 이 평화는 마치 강요되기라도 한듯 잠시잠깐 동안의 억지스런 침묵에 지나지 않는다.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참사 현장에 도착, 다시는 볼 수 없는 아이들의 사진 앞에 부모들이 각기 장난감이며 먹거리며 꽃 등을 놓는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이던 슬픔과 그리움이 다시금 피어오르며 그..

상실감을 감싸안은 따스한 도피처 '가족시네마 - 순환선'

상우(정인기)는 실직 가장이다. 하지만 가장이라면 대개 그렇듯이 집에는 이러한 사실을 알릴 수가 없는 처지다. 중학생 딸이 하나 있고 아내(김영선)가 이제 곧 출산을 앞둔 상황이라 상우는 자신의 처지를 곧이 곧대로 알릴 수가 없다. 그가 대신 선택한 건 위장 출근이다. 아침 출근 시각이 되면 평소와 다름 없이 출근 복장을 완벽하게 갖춰 입은 채 지하철에 오른다. 그것도 순환선에.. 종착지 없이 계속해서 같은 노선을 반복해서 달리는 순환선은 상우처럼 일정한 목적 없이 시간을 때우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무가지를 펼쳐 들고 처음부터 마지막장까지 글자 하나하나 빠뜨림 없이 꼼꼼하게 읽어내려가도 시간은 더디 흘러만 간다. 그러나 일을 하지 않아도 배꼽 시계는 정확한 법이다. 어느덧 점심시간, 간이매점에서 ..

어른을 위한 동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 진영 사이에 이념 전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 미국과 소련은 어느덧 패권 경쟁의 보폭을 우주라는 외연으로까지 넓혀가던 와중이다. 말을 못하는 엘라이자(샐리 호킨스)는 미 항공우주 연구센터에서 청소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의 일이다. 연구센터 실험실에 괴생명체 한 마리가 실험 대상으로 들어온다. 흉측하게 생긴 녀석은 아마존에서 서식 중인 수중생물이었으며, 그곳 원주민들로부터는 신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던 터다. 항공우주 연구센터의 보안 책임자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는 괴생명체를 완력으로 제압하고, 소련과의 우주개발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괴생명체를 해부, 이를 이용해야 한다며 윗선을 설득시킨다. 한편 스트릭랜드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는 괴생명체가 몹시도..

서로를 향해 수렴해가는 '두 개의 빛: 릴루미노'

RP(망막색소변성증) 환자인 인수(박형식)는 시각 장애인들로 구성된 사진 동호회에 가입, 회원들과 첫인사를 나눈 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이곳 동호회에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 시각 이외의 감각을 활용, 사진을 찍는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동호회 회원인 수영(한지민)은 인수와 우연히 만나게 된 이래 자연스럽게 그로부터 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 두 사람은 더욱 가까워지는데... 피아노 조율사인 인수의 시신경은 미약하나마 아직은 살아 있다. 시력을 온전히 잃은 건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되어 결국 시력을 잃게 되는 건 기정사실이다. 아로마 테라피스트 수영의 한 쪽 눈은 완전히 실명된 상태이고, 나머지 눈을 이용하여 어렵사리 물체를 감지해오던 터다. 두 사람은 시각..

상실 앞에 선 한 아이의 성장기 '몬스터 콜'

질풍노도의 시기에 깊숙이 들어선 코너(루이스 맥도겔)는 요즘 많이 우울하다. 그의 엄마(펠리시티 존스) 때문이다. 그녀는 오래된 암 환자다. 병원에서 가능한 방법을 모두 동원, 치료에 나섰으나 딱히 효험이 없다. 실패를 거듭한 끝에 몸은 점차 쇠약해져 갔다. 코너는 누군가가 애써 말해주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엄마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런 걸까? 코너는 밤마다 정체 모를 악몽에 시달리는 와중이다. 엄마와 자신이 등장하는 꿈을 꾸던 도중 매번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나기 일쑤다. 하지만 현실은 꿈 이상으로 혼란스러우며 혹독하기만 하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주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탓에 짓궂은 아이들의 표적이 되곤 했다. 유약하기 짝이 없는 코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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