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타인의 남은 수명을 알 수 있다면 '빽넘버'

새 날 2018. 3. 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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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은 중산층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난 인물이다. 유복한 가정 환경에서 자란 까닭에 요즘말로 표현하자면 금수저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은수저 정도의 계층은 되지 않을까 싶다. 그의 아버지는 최근 직장 내에서 임원으로 승진하였으며, 어머니는 이참에 기존의 승용차를 평소 갖고 싶어하던 이쁘장한 외제차로 교체한다. 대학생인 그에겐 윤지라 불리는 사랑스러운 연인이 있었으며, 온통 그에게 우호적인 환경 덕분에 학교 생활은 늘 즐거움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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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날의 일이다. 고모할머니의 사망으로 원영네 가족 전체가 상갓집에 가게 됐다. 새로 구입한 어머니의 승용차를 활용키로 한다. 어머니는 운전 배테랑으로 평소 편안하고 안정된 운전 솜씨를 뽐내오던 터다. 문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간이 휴게실에 잠시 들러 가기로 한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 머무르게 된 휴게소엔 원영네 차 외에 또 한 대의 차량이 있었는데, 해당 차량에 타고 있던 청년은 무슨 영문인지 계속해서 원영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원영은 그의 시선이 왠지 모르게 불편하고 꺼름직스러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의 차는 휴게소를 벗어나 다시 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한다.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강한 비트의 음악을 들으며 최대한 편안한 자세를 취하던 원영, 하지만 이러한 안락함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한다. 무언가가 원영이 타고 있던 차를 순식간에 덮쳤고, 그 충격으로 인해 순간 정신을 잃은 원영이 다시금 정신을 차릴 무렵엔 주변이 온통 새하얀 병원 안이었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로 부모님 두 분은 모두 돌아가신 뒤였고, 원영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것이다. 



어머니의 차량은 폐차됐다. 그는 죽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온몸 구석구석에 깊숙한 상처를 입었다. 원영의 지난한 병원 생활은 이렇게 해서 시작된다. 그런데 사고를 당한 이후 그에겐 특별한 능력이 생겼다. 다름 아닌 사람의 등 뒤에 어스름이 비치는 백넘버를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숫자는 그 사람의 남아있는 수명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앞으로 1년을 살 수 있다면 '365'라는 숫자가 등 뒤에 아로새겨지는 셈이다. 그러나 자신의 백넘버만큼은 절대로 볼 수가 없다.


누군가의 생애와 관련하여 남은 수명의 날짜 수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는 건 매우 흥미롭고 특별한 능력임이 분명하다. 이는 한 사람의 미래에 일어날 일을 일정 부분 예측 가능케 하고, 그에 개입하여 적절히 대응할 수 있을 만큼 중차대한 사안이다. 실제로 영원은 아직 유아에 불과한 유치원생들의 등 뒤에서 붉은색으로 '1'자가 선명하게 점멸하는 현상을 몸소 겪으며, 이들의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백넘버 '1'은 수명이 하루 남았으므로 곧 사망한다는 의미로, 유치원생에 불과한 아이들에게 동일한 장소에서 동시에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건 곧 모종의 사고가 이들에게 들이닥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소설은 2015 대한민국 전자출판대상 대상 수상작이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다른 사람의 남은 수명을 알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 한 청년이 그로 인해 겪게 되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맛깔스러운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우리 모두는 태어난 이상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 모든 불확실성 속에서도 적어도 이 명제만큼은 팩트다. 하지만 누구로부터 태어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운명이 뒤바뀔 수 있듯이 죽음 또한 모든 이들에게 똑같은 조건으로, 즉 공평하게 주어지지는 않는다. 불행 중 다행인 걸까? 그렇다면 우리가 언제 죽게 되는가를 사전에 알 수만 있다면 삶의 양태 또한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 


영원은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대신 그의 반대급부로 앞서 언급한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됐다. 해당 능력이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성질의 것인 데다 이것이 만약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누군가의 삶에 개입하여 그의 수명을 연장시키면서 일종의 돈벌이 수단으로 이를 활용하고자 하는 망상을 꿈꾸게 될 것 같다. 불확실성과 혼돈의 세상, 전국 곳곳에 위치한 철학관이 여전히 세인들의 발길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만큼 영원이 지닌 능력의 10분의1가량만 발휘되더라도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는 건 왠지 누워서 떡 먹기일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스치기 때문이다. 비단 돈벌이 수단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그 이상으로 잘 활용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한 번 만들어진 에너지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시속 100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달리던 차량이 또 다른 차량에 의해 받힐 경우 그 충격은 정확히 두 차량이 지니고 있던 운동에너지의 합만큼 물체에 고스란히 전달된다. 차량이 찌그러지거나 뒤집히고 더 심할 경우 도로 위를 수 차례 구르기도 하는 건 바로 이러한 연유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지 않는다면 이는 차량에 탑승해 있던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가해진다. 원영 역시 교통사고를 당할 당시 차창 밖으로 튕겨져나가는 바람에 크게 다쳤다. 



작가는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 또한 이와 흡사하다고 본다. 비록 각본으로 짜여진 일정한 틀 내에서 흘러가지는 않더라도 세상 역시 나름의 질서에 의해 움직이고 있음이 명백하거늘, 타인의 남은 수명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이에 개입, 인위적으로 생명 연장을 시도하거나 미래에 벌어질 특정 사건을 다른 형태로 바꿔놓을 경우 암묵적인 질서가 깨지면서 반드시 다른 형태로, 이를테면 엉뚱한 사람들이 그로 인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경고한다. 때문에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삶과 죽음을 비롯, 적어도 불가항력적 영역만큼은 자연의 섭리에 순응토록, 있는 그대로를 놓아두자는 얘기다. 


타인의 남은 수명이 등 뒤에 새겨지고, 이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이 발칙한 발상은 비단 소설 속에서 언급된 에피소드가 아니더라도 무수한 이야기거리들을 만들어내는 게 가능할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를 영화나 드라마로 옮기더라도 꽤나 흥미 있는 작품으로 탄생할 듯싶다.



저자 임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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