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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를 곱씹어보게 하는 작품 '가족시네마 - E.D. 571'

새 날 2018. 3. 3.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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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족시네마'는 네 편의 각기 다른 스토리로 이뤄진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다. 'E.D. 571'은 그 가운데 세 번째 작품으로, 이수연 감독이 연출했다. 


가까운 미래, 2030년의 일이다. 인아(선우선)는 요즘말로 표현하자면 골드미스다. 그녀는 국내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 한 기업체에 입사,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집과 회사만을 오가며 철저하게 회사인간화된 인물이다.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일에 치여 지내느라 결혼은 언감생심이다. 아니 어쩌면 애초 결혼 따위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다른 사람들의 시각으로 볼 땐 일 중독 환자임이 분명하다. 덕분에 회사 내에서는 승승장구다. 부장이라는 직책도 달았다. 이렇게 되기까지 그녀가 기울인 노력과 열정에 대한 스스로의 자부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여느 때와 같이 야근을 끝내고 밤 늦은 시각 집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집 앞에서 서성거리는 게 아닌가. 꼬마 아이였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와 함께 집으로 들어선다. 그런데 이 아이는 인아를 엄마라 부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생물학적으로는 이 꼬마가 엄연히 인아의 딸(지우)이라며 우기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결혼조차 하지 않은 그녀에겐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너무도 황당한 나머지 도대체 무슨 영문인가 하고 일단 아이로부터 자초지종을 듣는데...


사건의 발단은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니까 2018년의 일이다. 당시 인아는 대학생이었으며, 지방 소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덕분에 서울에서의 생활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동시에 여러 개의 아르바이트를 뛰어도 생활비며 비싼 대학 등록금의 마련은 쉽지 않은 노릇이었다. 그 때 그녀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다름 아닌 불법 난자 기증이었다. 이를 통해 밀린 등록금이며 생활비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시 그녀가 기증한 난자에 붙여진 분류명이 다름 아닌 'E.D. 571'이다. 



이 난자는 어떤 불임부부의 인공수정을 시도하는 데 활용됐고, 그렇게 하여 탄생한 아이가 바로 인아 앞에 떡하니 등장한 꼬마 녀석이었다. 이 아이의 법적 부모는 최근 정식으로 이혼, 아이의 양육권마저 포기한 상황이었으며, 이로 인해 아이는 보호시설에 들어가야 할 처지였다. 하지만 절대로 보호시설 같은 곳에 들어가기를 원치 않았던 아이는 결국 자신의 생물학적 엄마인 인아에게 찾아와 법정후견인이 되어줄 것을 요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생명윤리법에 따르면 난자 매매는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현행 생명윤리법 제13조에 따르면 누구든지 금전 또는 재산상의 이익 그 밖에 반대급부를 조건으로 정자와 난자를 제공 또는 이용하거나 이를 유인 혹은 알선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금전적인 거래 등을 통해 불임부부 등의 의뢰자와 정자 및 난자 제공자가 직접 거래를 하거나 혹은 브로커를 통해 거래를 하는 행위 역시 엄연히 불법이다. 



인아가 기증한 난자는 불법적인 경로로 이뤄졌으며, 그녀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난자를 매매한 의료회사 역시 불법적인 방식으로 인아의 난자를 불임부부에게 제공한 셈이 된다. 얼마 전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임신을 원하는 난임 혹은 불임부부들은 생식세포 매매나 대리모 등의 불법 경로를 찾아 법의 사각지대로 내몰리는 실정이라고 한다. 


인아 앞에 뜬금없이 등장한 그녀의 생물학적 딸 역시 이러한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 탄생했다. 더구나 아이의 법적 부모는 이혼과 동시에 아이의 양육권마저 포기한 상태다. 이러한 선택과 또 다른 선택이 거듭되면서 'E.D. 571'에 의해 탄생한 인아의 생물학적 딸은 결국 지금처럼 인아 앞에 뜻밖의 모습을 드러내게 된 셈이다. 



생명공학의 발전과 그에 따른 윤리 문제는 궤를 같이하는 사안이다. 이 작품에서처럼 금전을 목적으로 했든 아니면 다른 목적으로 했든 어딘가에 그리고 누군가에게 특별한 의심 없이 제공한 생식세포로 인해 결혼을 하지 않는 등 자식을 낳을 만한 행위가 일절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2세가 떡하니 나타나는 기막힌 현상과 맞닥뜨리게 되는 일이 결코 먼 미래의 모습이 아닐는지도 모른다. 생명윤리를 곱씹어보게 하는 작품이다.



감독  이수연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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