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초저출산 국가의 민낯 '가족시네마 - 인 굿 컴퍼니'

새 날 2018. 3. 4.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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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수가 10명도 채 안 되는 조그마한 출판사, 최근 사보 계약 건으로 비상이 걸렸다. 단기간 내 사보를 만들어야 하는 긴박한 상황, 이를 성공시킬 경우 회사는 앞으로 꽃길만 걷게 될 전망이다. 이쯤 되면 이 프로젝트에 회사의 명운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팀장을 비롯한 모든 직원들이 이에 사활을 걸고 매달리는 건 지극히 당연한 노릇이었다. 하지만 하필 이 중차대한 시기에 핵심 실무진인 지원(최희진) 대리가 출산에 나서며 대열로부터 이탈하고 만다. 


회사는 단 한 사람의 손길도 아쉬운 판국이다. 출산과 육아로 이어지는 긴 시간 동안 그녀의 사정을 헤아려줄 여력이 단언컨대 이 회사에는 없다. 결국 그녀를 내보내고 새 사람을 뽑아야 할 상황이다. 팀장인 철우(이명행)가 총대를 매기로 했다. 회사의 입장을 전달 받은 그는 지원 대리에게 사직서 제출을 종용한다. 회사의 부당한 조처를 바라보던 여직원들은 동요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하나로 똘똘 뭉친다. 회사가 지원 대리의 출산 휴가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파업도 불사하겠다며 배수진을 치고 나선 것이다. 팀장은 가뜩이나 바빠 죽겠는데 직원들마저 이렇게 나오니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지 않을 수가 없다. 출산 휴가를 연결 고리로 하나가 된 그들 가운데 가장 만만하고 상대적으로 느슨할 것으로 예상되는 직원에게 먼저 다가가 회유를 시도하는데...


영화는 출산을 앞둔 여직원을 향한 퇴직 종용, 그리고 그에 반발하는 직원들과 회사와의 갈등을 일종의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리고 있다.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등 일과 가정 생활의 양립을 지원하는 제도적 기반은 과거보다 크게 확대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제도와 현실의 온도차는 여전히 크다. 영화의 배경이 되고 있는 이 작은 출판사는 당장 한 사람이 빠질 경우 그 공백이 유난히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처지다. 



법과 제도가 나름 잘 적용되고 있는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등도 이런 상황에서는 곤혹스러울 텐데, 그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 놓인 조그만 회사의 입장에서는 뾰족한 묘수를 찾기란 더욱 쉽지 않은 노릇일 테다. 때문에 과거보다는 이와 관련한 사고의 틀이 전향적으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일반 사기업, 그것도 영화속 출판사처럼 규모가 작을수록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크게 벌어져있기 일쑤다. 


지원 대리의 선배 아름(장소연) 과장 역시 과거 출산 경험이 있어 누구보다 지원의 사정을 잘 알고 있지만, 자신도 당시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데다가 출산휴가가 됐든 육아휴직이 됐든 이로 인해 자신을 포함한 다른 직원들이 몇곱절의 일을 더 해야 했기 때문에 지원의 딱한 사정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알 만한 사람이 이렇게 나오니 더욱 야속할 따름이다. 퇴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던 그녀의 매몰찬 태도는 지원을 지원사격하기 위해 파업에 동참한 다른 직원들의 전투력을 더욱 배가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현재 지원 대리가 겪고 있는 아픔과 모순은 머지 않아 곧 자신들에게 닥칠 일이기에 그녀를 돕는다며 모든 여직원들이 일제히 팔을 걷어붙인 상황이었으나 각개격파에 나선 팀장의 회유에 점차 그 강력하던 단일대오의 틈이 벌어지면서 전열마저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동맹 파업에 나선 여직원들은 팀장의 회유가 들어오자 못이기는 척하며 지극히 사적인 이유를 들어 한 사람 한 사람 회사 편으로 돌아서기 시작한다. 일견 튼튼해 뵈던 연대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것이다.


고립무원의 처지로 내몰리게 된 지원 대리, 보는 나로서도 안쓰럽기 짝이 없다. 팀장은 출산을 앞둔 지원에게 입장 바꿔놓고 한 번 생각해 보라며 압박을 가한다. 빠른 시일 내에 사보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 직원들은 매일 야근을 밥먹듯 하고 있는데 출산을 앞둔 탓에 툭하면 회사에 나오지 않고 덕분에 다른 직원들의 짐이 더욱 무거워진 데다가 회사에도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회사의 입장, 아울러 직원들의 처지를 어느 누구보다 잘 헤아리던 지원 대리는 회사를 향해 근로기준법과 양성평등기본법 등을 아무리 읊어 봐도 법은 그냥 법전속 텍스트에 지나지 않을 뿐 현실은 그와는 영 딴판이었다. 2017년 상반기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14∼54살 기혼여성 905만3천 명 가운데 결혼, 임신 출산, 육아 등을 이유로 직장을 그만둔 경력단절여성은 181만2천 명으로 전체의 20%에 이른다고 한다. 오늘도 이 땅의 또 다른 지원 대리가 출산 때문에 자의반 타의반 회사를 그만두고 있다. 현실이 이러하다 보니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이 갈수록 증가, 초저출산 국가의 멍에를 뒤집어쓴 채 국가적 위기를 자초하고 있는 셈이다. 


2010~2015년에 결혼한 여성들 가운데 아예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비율은 8.2%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미래는 갈수록 암울해질 전망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영화는 법과 제도 그리고 현실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간극을 배우들의 열연을 통해 매우 실감나게 그리고 있으며, 작은 이익 앞에서 이중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우리의 민낯이 현실을 여전히 어렵게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되짚어보게 한다.  



감독  김성호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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