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아련한 감성, 삶의 긍정 에너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새 날 2018. 3. 6.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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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키타무라 타쿠미)는 우리 반에서 가장 인기가 없는 학생이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두고 있지 않으며, 나 또한 그들과 관계를 맺고 싶은 생각이 딱히 없다. 복잡한 건 딱 질색이며, 단순하게 살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우리 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학생 가운데 하나인 사쿠라(하마베 미나미)가 내게 접근해온다. 이건 분명 놀랍고 뜬금없는 일이다.


당시 난 학교 도서관의 장서를 정리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런데 사쿠라도 도서위원에 가입, 나의 도서 정리 작업 프로젝트를 도우려 나선 것이다. 그러나 티없이 맑은 성품을 지닌 데다가 성격까지 좋아 모든 이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던 그녀는 어느 누구에게도 공개할 수 없는 비밀 하나를 간직하고 있었다. 난 그녀가 일기장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해나가던 '공병문고'를 통해 우연히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이다. 



알고 보면 꽤나 놀라운 내용이다. 그녀는 췌장이 아파 나나 다른 사람들처럼 긴 수명을 누리지 못한단다. 정확히는 1년도 채 살지 못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쿠라는 늘 씩씩하게, 아울러 밝은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나 같으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은데, 사쿠라는 무언가 특별한 사람이었는가 보다. 당시 그녀는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들을 리스트로 정리, 하나 둘 이를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무표정하고 속내를 잘 비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익숙치 않던 내게 신기하게도 사쿠라는 여행을 함께 가자며 제안해오거나 패스트푸드점이 새로 생기면 가장 먼저 내게 쪼르르 와서는 같이 맛있는 것을 먹자고 재촉한다. 주변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마음을 열어놓는 일이 내겐 여전히 어렵고 힘들었지만, 사쿠라가 다가온 이후부터는 내게도 무언가 조금씩 변화가 시작되는데...



스미노 요루의 동명 소설이 이 영화의 원작이다. 소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2015년 일본에서의 출시 이래 누적 발행 250만 부를 넘어섰으며, 2016 서점 대상 2위, 그리고 연간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한 바 있다. 시한부 삶을 선고 받은 사쿠라는 그녀 자신의 딱한 처지와는 별개로 긍정 에너지가 철철 넘치는 매력적인 소녀였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괜시리 그 사람의 기분을 좋아지게 만드는 그러한 소녀였다. 이 작품은 신파극이라면 으레 따라다닐 법한 뻔한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그러나 실제 극의 흐름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어쩌면 이 작품만이 지니고 있는 매력 포인트일지도 모른다. 



사회적 메시지도 담겨 있다. 영화속 주인공인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기피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왕따에다가 히키코모리적 성향마저 띠고 있다. 타인과의 관계를 거부한 채 오로지 자기 자신에 의해 갇혀 지내오던 그에게 먼저 넌지시 손을 건네면서 마음에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게 하는 건 이름 그대로 벚꽃처럼 화사하면서도 깨끗한 영혼의 소유자 사쿠라였다. 



그녀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도 초연할 수 있었던 건 삶을 대하는 남다른 태도 때문이다.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곳은, 지금 당장 사고로 죽었다고 해도 딱히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갈수록 불확실성이 커져가는 세상이다. 삶이란 결국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나 길고 짧은가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알차게 사느냐가 관건이라는 의미다. 사쿠라는 비록 짧은 여생이었지만, 밝은 에너지를 주변 사람들에게 전파시키는 등 꽉찬 삶을 살아간다. 이러한 에너지는 나와 쿄코 등에게도 전달되는 등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촉매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일본은 우리보다 묻지마 범죄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편이다. 그만큼 사회가 복잡하다는 의미일 테다. 묻지마 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아무런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거나 범죄 자체가 특별한 이유없이 불특정대상에게 행해지는 살인 및 폭행 등의 범죄를 일컫는다. 이의 원인은 다양하게 알려져 있다. 미성숙한 인격과 반사회적 성격 그리고 치열한 경쟁에서 도태된 이들의 상실감 따위로부터 비롯되는 경향이 크다. 



사람은 서로 관계를 맺고, 그 관계 속에서 성장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최근엔 이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거나 관계를 거부하는 이들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으며, 왕따 등으로 본의 아니게 외딴섬에 고립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영화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10대 청춘들의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를 통해 한동안 잊고 지내오던 아련한 감성을 소환하고 있다. 아울러 사쿠라를 매개로 삶의 긍정 에너지를 불어넣어줌과 동시에 공동체 내 주류로부터 이탈해 있거나 소외된 이들을 찾아 따스하게 보듬어주는 등 사회적 메시지도 담고 있다.



감독  츠키카와 쇼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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