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어른을 위한 동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새 날 2018. 2. 23.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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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 진영 사이에 이념 전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 미국과 소련은 어느덧 패권 경쟁의 보폭을 우주라는 외연으로까지 넓혀가던 와중이다. 말을 못하는 엘라이자(샐리 호킨스)는 미 항공우주 연구센터에서 청소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의 일이다. 연구센터 실험실에 괴생명체 한 마리가 실험 대상으로 들어온다. 흉측하게 생긴 녀석은 아마존에서 서식 중인 수중생물이었으며, 그곳 원주민들로부터는 신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던 터다. 


항공우주 연구센터의 보안 책임자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는 괴생명체를 완력으로 제압하고, 소련과의 우주개발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괴생명체를 해부, 이를 이용해야 한다며 윗선을 설득시킨다. 한편 스트릭랜드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는 괴생명체가 몹시도 안쓰러웠던 엘라이자는 그에게 조심스레 접근, 교감을 나누기 시작한다. 달걀을 함께 나눠 먹기도 하고, 음악을 틀어놓은 채 감성을 공유하면서 조금씩 소통의 폭을 넓혀가는 그녀다. 



이 즈음, 우연히 스트릭랜드가 꾸미고 있는 끔찍한 계획을 알게 된 엘라이자는 자신과 소통하면서 교감을 넓혀가던 괴생명체에게 절체절명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한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위험,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엘라이자, 결국 그녀와 함께 동거하던 화가 자일스(리차드 젠킨스)와 동료 청소 직원인 젤다(옥타비아 스펜서)의 도움으로 괴생명체 구조에 나서는데... 



엘라이자는 말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말을 할 줄 아는 다른 많은 사람들로부터 이른바 '벙어리'라며 놀림을 당하고, 외모마저 뛰어나지 않은 까닭에 늘 멸시를 받으면서 살아온 인물이다. 주변에서는 그런 그녀를 짓누르거나 괴롭힐 줄만 알았지, 진정성 있게 바라보고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이 하나 없다. 즉, 강자에겐 한없이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면모를 드러내기 일쑤다. 



아마존에서 잡혀와 자칫 우주개발의 희생양이 될지도 모를 괴생명체 또한 엘라이자와 여러모로 비슷한 처지다. 사람과 소통이 가능하고 감정을 지녔으며, 지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엘라이자처럼 말을 하지 못하는 데다가 외모마저 흉측한 바람에 스트릭랜드 같은 부류의 사람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엘라이자의 주변 인물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젤다는 피부색이 검었으며, 자일스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힘없는 늙은 화가에 불과했다. 주변에 만연한 차별과 편견은 그들의 삶을 늘 짓누르기 일쑤다. 한편 항공우주 연구센터 내에서 연구 활동을 벌이던 호프스테틀러(마이클 스털버그) 박사는 엘라이자 등과는 전혀 다른 성향의 인물이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그의 신분과는 별개로 생명에 위협을 느낄 만큼 곤란한 상황 속에서도 괴생명체와 엘라이자 일행을 돕는 따스함을 지녔다.



반면 스트릭랜드는 보안 책임자라는 감투 덕분에 적어도 항공우주 연구센터 실험실 내에서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인물이다. 그의 굳은 표정과 말 한 마디에 의해 엘라이자나 젤다처럼 상대적으로 보잘 것 없는 인물은 벌벌 떨어야 할 정도다. 심기가 불편하거나 무언가 중대한 사안을 접할 때마다 입안에 사탕을 문 채 특유의 거북한 표정을 짓던 그는 진짜 괴물이란 어떤 형태여야 하는가를 제대로 묘사하는 듯싶다. 



영화는 소외된 약자를 상징하는 괴생명체를 매개로, 이를 없애려고 하는 스트릭랜드를 중심으로 한 강자와, 괴생명체를 필사적으로 구조하려고 하는 엘라이자를 중심으로 한 약자의 두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똑같은 괴생명체를 놓고도 한 쪽에서는 흉측하게 생겼으며 만만하다는 이유로 온갖 고문과 린치를 가하고, 다른 쪽에서는 소통을 시도하며 함께 교감을 나눈다. 같은 사물, 같은 사안을 놓고도 이렇듯 우리가 이를 바라보거나 받아들이는 시선은 천양지차다. 감독은 편견과 세속에 찌들어 순수함을 잃어가는 현대인들의 병든 마음을 아름다운 영상과 환상적인 이야기로 헤집어놓는다.



엘라이자 역을 맡은 샐리 호킨스는 얼마전 개봉한 영화 '내 사랑'에서도 이번 것과 비슷한 배역을 통해 강한 인상을 남긴 바 있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호연을 이어간다. 비록 말을 할 수는 없으나 괴생명체를 향한 그녀의 애틋한 심정이 어느 정도인가를 손짓과 몸짓 얼굴 표정 그리고 온몸으로 묘사될 땐 되레 말을 잘하는 이들의 그것보다 훨씬 호소력 짙게 다가온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대단한 연기력을 펼친 샐리 호킨스다. 특히 괴생명체를 향하던 그녀의 마음을 뮤지컬 무대로 옮겨 노래로 표현한 신은 이번 작품의 절정 부분이자 가장 뭉클하게 다가오는 장면 가운데 하나다. 



엘라이자가 베푼 사랑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세속적인 사랑과는 그 결이 다르다. 우린 외모와 재산 그리고 사회적 지위 등으로 한 사람을 평판하고, 사랑마저도 그러한 조건에 맞추곤 한다. 영화는 말을 하지 못하고 외모가 흉측하다고 하여 괴물이 아니라, 되레 겉은 멀쩡하며 가진 것은 많으면서도 순수함을 잃은 현대인이 진짜 괴물이 아닌가 되묻는다. 비록 가진 것 하나 없고, 갖춘 것 일절 없으나 서로를 이해하고 진정성 있게 다가서려는 사랑은 그래서 유난히 돋보인다. 더불어 소외된 이들을 향한 감독의 따뜻한 시선도 읽힌다. 세속에 찌들어 어느덧 순수함마저 잃은, 현대를 살아가는 어른들을 위한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다.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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