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서로를 향해 수렴해가는 '두 개의 빛: 릴루미노'

새 날 2018. 2. 18.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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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망막색소변성증) 환자인 인수(박형식)는 시각 장애인들로 구성된 사진 동호회에 가입, 회원들과 첫인사를 나눈 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이곳 동호회에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 시각 이외의 감각을 활용, 사진을 찍는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동호회 회원인 수영(한지민)은 인수와 우연히 만나게 된 이래 자연스럽게 그로부터 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 두 사람은 더욱 가까워지는데...



피아노 조율사인 인수의 시신경은 미약하나마 아직은 살아 있다. 시력을 온전히 잃은 건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되어 결국 시력을 잃게 되는 건 기정사실이다. 아로마 테라피스트 수영의 한 쪽 눈은 완전히 실명된 상태이고, 나머지 눈을 이용하여 어렵사리 물체를 감지해오던 터다. 두 사람은 시각장애인인 까닭에 평소 상대방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두 사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뒤 이미지를 크게 확대하여 인수의 얼굴을 확인하던 수영의 행동은 그래서 안쓰럽기 짝이 없다. 



왠지 모르게 서로에게 끌리던 인수와 수영, 부족함을 채우며 의지하고 상대에게 서서히 다가가기 시작한다. 그들의 감정은 비록 아주 느리지만, 조심스럽게 서로를 향해 수렴해간다. 이를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 꿈이란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표현된다는 과학적인 근거는 이번 작품을 통해 입증된다. 시각장애인들은 꿈을 꿀 때조차 비시각장애인들과는 달리 영상이 배제된다고 하니 말이다. 



비시각장애인의 시각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통상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홀로 서지 못하는, 어딘가 부족한 사람으로 인식하기 일쑤인 데다가 안 됐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심지어 불쌍하다며 돈까지 쥐어주는 사람도 있다. 그냥 정안인과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아울러 그들과 동일하게 대우해주길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일까? 



비시각장애인들의 이러한 시선에 지친 시각장애인들은 그들 스스로 편견에 갇혀있기 일쑤다. 이제는 현실에 제법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수영과 인수 역시 비슷한 이유로 갈등을 야기하고 힘들어한다. 영화는 시각장애인들이 실제로 겪고 있을 법한 고충을 비시각장애인들이 쉽게 이해 가능하도록 묘사하고 있다. 



사물을 보지는 못해도 다른 감각을 이용하여 사진 촬영을 하는 시각장애인들의 모습은 자못 진지하다. 삶에 대한 그들의 긍정적인 태도가 읽히는 대목이다. 



정안인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 그리고 시각장애인의 눈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이렇듯 두 개의 빛이 존재한다. 릴루미노는 저시력 장애인이 사물을 더욱 또렷하게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각보조 솔루션이자 앞서 언급한 두 개의 빛을 하나로 연결해주는 매개이기도 하다. 시각장애인에게 미처 닿지 않던 빛을 그들이 느낄 수 있도록, 아울러 비시각장애인들이 느낄 수 없던 또 다른 빛을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서로를 연결해준다.



감독  허진호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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