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상실 앞에 선 한 아이의 성장기 '몬스터 콜'

새 날 2018. 2. 5.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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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노도의 시기에 깊숙이 들어선 코너(루이스 맥도겔)는 요즘 많이 우울하다. 그의 엄마(펠리시티 존스) 때문이다. 그녀는 오래된 암 환자다. 병원에서 가능한 방법을 모두 동원, 치료에 나섰으나 딱히 효험이 없다. 실패를 거듭한 끝에 몸은 점차 쇠약해져 갔다. 코너는 누군가가 애써 말해주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엄마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런 걸까? 코너는 밤마다 정체 모를 악몽에 시달리는 와중이다. 엄마와 자신이 등장하는 꿈을 꾸던 도중 매번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나기 일쑤다. 하지만 현실은 꿈 이상으로 혼란스러우며 혹독하기만 하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주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탓에 짓궂은 아이들의 표적이 되곤 했다. 유약하기 짝이 없는 코너는 그때마다 이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 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날, 코너 앞에 느닷없이 괴이한 형상의 몬스터가 등장한다. 코너의 집 주변에는 커다란 주목나무가 심어진 언덕과 넓은 공동묘지가 펼쳐져 있는데, 몬스터는 바로 그 주목나무로부터 출몰했다. 엄마의 일로 인해 온통 혼돈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코너에게 몬스터는 세 가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마지막으로 코너 자신의 이야기를 듣겠다며 그를 거칠게 몰아세우는데... 



이 영화의 원작은 '패트릭 네스'의 동명소설로 알려져 있으며, 이 소설은 세계 최초로 영국 도서관 협회가 선정한 카네기상과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그림책에 수여되는 케이트 그리너웨이 상을 동시에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 역시 소설 못지 않게 아름다운 이미지의 향연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죽음을 앞둔 암 환자 엄마가 제발 자신의 곁에 남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과 빨리 현재의 상황이 종료됐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한데 뒤섞인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몬스터가 나타나 코너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도록 도움을 주고, 그의 상처를 치유함과 동시에 성장으로 이끈다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평범한 일상을 힘들게 할 정도로 코너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정체는 과연 무얼까? 엄마가 하루빨리 나았으면 하는 한결 같은 바람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던 코너, 희망과 현실의 간극이 지나치게 벌어지다 보니 되레 고통스럽기만 하다. 차라리 이 상황이 빨리 종식되었으면 하는 끔찍한 생각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음 한쪽 귀퉁이에서 또아리를 튼다. 그는 이러한 진실을 외면하려 애써 보지만 그럴수록 악몽으로 되살아나 매일밤 그를 괴롭힌다. 



학교에서는 아이들로부터 폭력과 괴롭힘을 당해야 하는 일상, 집에서는 엄마의 병 간호 및 그로 인한 부재 탓에 딱딱하기 이를 데 없는 데다가 뭐든지 통제하려고만 드는 보기 싫은 할머니(시고니 위버)와 함께 지내야 하는 처지, 그의 내면은 이내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수습이 불가능할 만큼 괴롭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코너 앞에 문득 나타나는 건 바로 주목나무 몬스터다. 몬스터는 코너가 필요할 때마다 등장, 그의 잠재돼 있던 내면을 깨우고 쌓인 분노를 외부로 거침없이 발현시켜주곤 한다. 몬스터를 만난 뒤부터 조금씩 변모해 가던 코너는 마침내 자신이 그토록 외면하려던 진실과 떡 하니 마주하게 되는데... 



그 사이 코너의 엄마 몸 상태는 몹시 안 좋아지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숭숭 뽑혀 나갔고, 육신은 살점 하나 없는 몰골로 점차 변모해 갔다. 우리는 누구나 인연을 맺은 이상 이별을 예약하고 있는 셈이다. 그 인연이 부모 자식 간의 천륜이라면 더욱 애틋하게 다가오는 게 인지상정일 테다. 하지만 한 차례 이상의 영원한 이별은 어느 누가 됐든 반드시 겪어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다. 그로 인한 상실감은 무척 크다. 특히 코너의 연령대라면 한창 성장하는 시기라 엄마의 부재가 더욱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곧 다가올 이별 앞에서 코너가 어쩔 줄 몰라해 하며 혼란을 겪게 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더구나 코너는 곧 맞닥뜨리게 될 진실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자신을 질책하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와중이다. 이랬던 그가 몬스터라는 또 다른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게 되면서 상실로부터 비롯된 아픔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키고 스스로 성장해 나간다. 그림 실력이 뛰어난 엄마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타고난 덕분에 코너 역시 엄마 못지 않은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수동 연필깎이로 살포시 깎은 연필을 이용, 도화지에 조심스럽게 펼쳐 나가는 그의 그림은 종이의 결을 고스란히 살릴 만큼 섬세했다. 붓으로 대충 슥슥 그어놓은 듯한 이미지를 묽은 수채화로 완성해 나가는 특수효과는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몬스터가 코너에게 해준 세 가지 이야기는 비록 그림이었으나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거렸으며, 실사와 CG의 결합은 어색함 없이 절묘하였고, 영상 전반은 그림 동화책 한 편을 읽어내려가듯 예뻤다. 누구나 한 번은 맞닥뜨려야 할 상실 앞에서 이를 극복해 나가며 성장하는 한 아이의 성장기를 섬세한 시선과 이미지로 구현, 관객의 안구를 정화시킴은 물론, 마음마저 따스하게 녹인다.



감독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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