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애견인의 관점으로 본 애묘 영화 '고양이는 불러도 오지 않는다'

새 날 2018. 1. 3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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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서인 미츠오 스키타(카자마 슌스케)는 한 경기만 승리해도 챔피언인 A급으로 올라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와 맞닥뜨렸으나 부상 때문에 결국 턱밑에서 좌절하고 만다. 그는 만화가인 형(츠루노 타케시)과 함께 살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으나, 언젠간 복서로서의 큰 성공을 꿈꾸는 청년이다. 그러던 어느날 형이 집 앞에 버려진 새끼 고양이 두 마리를 무작정 집으로 데리고 온다. 


과거 반려견 '록키'를 그렇게 했던 것처럼 고양이 뒷바라지마저 결국 자신의 몫이 될 것임을 직감한 스키타는 입양을 완강히 거부한다. 하지만 거두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길바닥에 나앉게 된 새끼 고양이들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 보내기엔 스키타의 마음이 지나치게 여리다. 결국 그가 우려하던 대로 고양이의 돌봄은 오롯이 스키타의 몫이 되고 만다. 그는 제일 먼저 남매 사이인 아기 고양이에 이름을 부여하는 작업부터 진행한다. 온통 검은색 털로 덮인 수컷은 '쿠로', 알록달록한 암컷은 '친'이다. 



그러나 스키타가 잠을 청하려고 하면 무작정 이불 속으로 달려드는 고양이들이 그에겐 너무나 귀찮은 존재였다. 시도 때도 없이 집안 곳곳을 대소변으로 어지럽히는 녀석들이 그는 미웠다. 이름을 부르면 모른 척 딴전을 피우다가도 정작 필요 없을 때면 나타나는 녀석들이 한없이 밉살스러웠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얼마 후 형마저 스키타 곁을 떠나고 만 것이다. 스키타는 과연 이 말썽꾸러기 새끼 고양이 두 마리와 잘 지낼 수 있을까?



30만 부의 판매 부수를 기록하며 일본 아마존 베스트셀러로 급부상한 동명 만화 "고양이는 불러도 오지 않는다"가 이 영화의 원작이다. 개과에 속하는 한 청년이 우연히 고양이 두 마리와 동거를 시작하면서 겪게 되는 에피소드와 자신도 모르게 고양이에 빠져들어 결국 서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까지 발전하는 과정 그리고 이를 통해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감정과 따스한 위안을 얻게 된다는 스토리다.



고양이라는 동물은 이 영화속 스키타가 처음 접하자마자 지니게 되는 감정처럼 어떻게 보면 참 얄밉다. 반려견처럼 주인의 말귀를 알아듣고 충직하게 잘 따르지도 않거니와 적어도 이름을 부르며 오라고 하면 달려오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텐데 모른 척하면서 외면하기 바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귀엽다고 쓰다듬으면 되레 할퀴기까지 한다. 이쯤 되고 보니 개과인 스키타가 질색할 법도 하다. 


하지만 백수인 스키타가 고양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자신도 모르게 점차 그에 빠져 들기 시작한다. 참 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복싱 시합에 나가 흠씬 두들겨 맞고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어 나타났을 때도 가장 먼저 그를 반겨준 건 고양이들이었다. 애견인들의 반려견을 향한 애정 표현의 절정은 아마도 '우리 아기'라 호칭하며 의인화에 나섰을 때 아닐까 싶다. 



스키타가 고양이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음을 상징하는 장치도 다름 아닌 '쿠로'와 '친'을 향한 의인화다. 고양이들이 아프면 자신이 아픈 것보다 더 안쓰러워 동물병원을 전전하며 극진히 돌보고,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쿠로를 통해 발현시키는, 결코 웃지 못할 일들이 그의 주변에서 일어난다. 스키타는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대부분의 애묘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고양이 집사로 길러지고 있었다. 



애지중지 키우던 반려동물의 사망은 동물의 종류와 관계없이 그 주인에겐 커다란 상실감으로 다가온다. 얼마 전 반려견을 먼저 떠나보내야 했던 나 역시 그로 인한 상실감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를 익히 아는 바다. 스키타가 그랬던 것처럼 나 또한 최근 꿈을 통해 수 차례 먼저 떠나버린 반려견을 만난 적이 있다. 왜 먼저 떠난 녀석이 자꾸만 꿈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인지 나로선 알 방도가 없다. 



이렇듯 새로운 만남이란 예정된 이별을 의미하기도 한다. 반려동물과 새로운 인연을 맺었다면, 반드시 이별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한 과정을 마냥 슬프다며 절망에 빠져 있을 게 아니라 함께하는 동안 충분한 행복감을 누리고 서로가 상대를 통해 위로를 얻었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사람과 동물 사이의 인연은 그 역할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스키타는 고양이들 덕분에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으며, 고양이를 매개로 새로운 사람과의 인연도 맺게 되었고, 더구나 이러한 과정을 토대로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기회를 온전히 누렸다. 


영화에서는 애묘인으로 하여금 집사를 자처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고양이 특유의 매력이 아주 생생하게 그려진다. 나 역시 스키타처럼 애초 개과에 속하지만, 덕분에 왜 애묘인들이 고양이에 빠져 꼼짝없이 집사를 자처하는 것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특히 새끼 고양이들의 모습은 너무도 앙증맞고 귀여워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완전히 '귀욤 뿜뿜'이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동시에 화면에 뿌려지는 극 중 고양이 신과 말풍선을 섞어놓은 장면은 매우 익살스럽다. 애묘인들이 열광할 만한 작품이다.



감독  야마모토 토루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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