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소외된 이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 '꿈의 제인'

새 날 2018. 1. 28.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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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이민지)은 가출 청소년이다. 또래가 각자 일을 하며 일정한 장소에 모여 함께사는, 이른바 가출팸이라 불리는 곳을 여러 군데 전전하게 되지만, 소현은 그 어느 곳에서도 환대를 받지 못한다. 그녀를 받아준 유일한 사람은 정호(이학주) 오빠였다. 하지만 그런 정호도 어느날 소현이 자고 있는 틈을 이용해 그녀 곁을 홀연히 떠나고 만다. 또 다시 혼자가 된 소현이다. 이때 그녀 앞에 구세주처럼 나타난 건 제인(구교환)이라 불리는 트랜스젠더였다. 


제인은 뉴월드 클럽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즐거움과 위안을 주는 일을 하고 있다. 아울러 소현과 같은 가출 청소년들을 돌보는 가출팸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제인은 이들에게 엄마라 불린다. 소현은 자신을 받아준 제인과 함께 지내면서 한동안 자신에게 굳게 닫혀 있던 세상을 향해 아주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보는데...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까칠하다. 왠지 소현을 잘 받아주지 않는다. 그녀가 접근하면 되레 멀어지기를 수 차례, 소현은 자신이 도대체 어떻게 해야 세상이 그녀를 받아들여줄지 막막하기 만하다. 그녀의 몸짓과 어투에서는 그동안 그로 인해 생긴 상처가 고스란히 묻어나오고 있다. 세상과 가까이 하고 싶지만, 어느 누구 하나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다정하게 접근해오는 사람이 없다. 


덕분에 소현은 자신의 의사 표현을 또렷이 내비친 적이 없으며, 그저 옆사람의 눈치만 살필 뿐 언제나 위축돼 있기 일쑤다. 또래들은 또래 대로 무언가 투명한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그녀의 태도가 영 거슬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쯤 되면 악순환이라고 할 법하다. 무슨 연유인지 몰라도 가출을 감행하였고, 이후 같은 처지의 또래끼리 함께 어울리려 노력해 보지만, 주변 사람들뿐 아니라 세상 사람 모두가 그녀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트랜스젠더인 제인은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여성을 성 정체성으로 받아들인 인물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녀를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뿐더러 가만히 놔두지도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데, 세상은 눈에 비치는 것만으로 쉽게 예단하고 일정한 틀 안에 가두려 하기 때문이다. 불행의 단초였다. 제인은 이러한 사회의 편견과 주변의 차가운 시선에 의해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왔다. 



그녀의 고단한 얼굴에는 그동안의 녹록치 않았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가출팸을 이끌며 거리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을 따스하게 보살펴 왔고, 소현을 비롯한 또래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주고 있었다. 삶은 불행의 연속이고, 중간중간에 짧은 행복이 잠시 머물다 가는 형태라 생각하는 그녀다. 그러니까 어차피 불행한 삶, 혼자 살기보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과 함께 살아가자는 게 그녀가 지향하는 삶의 목표다. 


그녀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은 삐딱하고, 일은 고되기 짝이 없으며. 때문에 살아가는 일 자체가 매우 버겁지만, 그래도 자신의 역할이 누군가에게는 즐거움으로 다가오게 하고, 위안을 얻는 사람이 있기에 세상은 살아갈 만하다는 제인이다. 제인의 소현을 향한 접근은 외톨이이던 그녀에게는 사실상 큰 힘으로 작용한다. 제인이 내민 손은 어느새 소현의 지친 영혼을 달래고, 세상 모든 이들로부터 소외 당한 아픔까지 일정 부분 씻겨주기 때문이다.



소현은 다른 팸으로 거처를 옮겨보지만, 이곳에서도 또래와 잘 어울리지 못한 채 또 다시 겉돈다. 또래들에게 잘 보이고 싶고 그래서 어떡하든 어울리려 노력해 보지만, 그럴수록 무언가 일이 더 꼬이기 일쑤다. 자신도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고, 그녀를 반겨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으나 이 세상에는 소현에게 그런 호의를 베풀 만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이 즈음 소현이 소속된 팸에 새로운 가족이 들어오게 된다. 지수(이주영)였다. 지수는 외모뿐 아니라 성격도 좋았고, 똘똘해 보이기까지 했다.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아 곧 독립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소현은 자신과는 다른 그녀로부터 왠지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때문에 그녀에게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본다. 제인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그녀처럼 의지가 될 만한 사람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지수는 여느 또래와는 확실히 달랐다. 당찬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와 제42회 서울독립영화제를 통해 무수한 화제를 낳았던 작품이다. 영화는 가출 청소년들의 거처인 가출팸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 그리고 제인과 제인의 일터인 뉴월드 클럽 등 꿈과 현실의 불분명한 경계를 오가며 소현이 바라보는 세상을 불안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아무도 함께하려 하지 않아 늘 외톨이인 소현은 말투며 행동이며 몸짓마저 관객으로 하여금 답답함을 자아내게 할 정도로 모든 게 의기소침해 있다. 



겉으로는 아무 말이나 거침없이 내뱉고 세상을 다 산 사람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듯보이지만, 속내는 어느 누구보다 따뜻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지닌 캐릭터가 바로 제인이다. 소현을 연기한 이민지와 제인을 연기한 구교환은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여자배우상과 남자배우상을 각각 수상했다. 그만큼 이 작품을 통해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 받은 셈이다. 



가출팸들의 실상은 왠지 영화속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을 듯싶다. 안타깝다. 따뜻한 보살핌과 관심이 배제된 여건 그리고 냉혹하고 차디찬 환경 속으로 내처진 채 자란 아이들이 이 다음에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를 생각하면 더욱 암담하기 만하다.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주변을 배회하는 일종의 외톨이이자 왕따인 소현과 성 정체성에서 비롯된 사회적 편견 및 차가운 시선 속에서 어렵게 살아온 제인은 서로 비슷한 처지다. 혼자 남는 것이 두려웠던 소현이 제인의 삶을 꿈꾸었던 건 아마도 행복해지고 싶다는 간절함의 발현이었을 테다. 사회적 약자, 소수자, 그리고 아웃사이더들을 향한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영화다.



감독  조현훈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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