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삶이 머물다 가는 공간 '더 테이블'

새 날 2018. 1. 27.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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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언덕길에 위치한 이름을 알 수 없는 아주 조그만 카페, 이곳의 창가쪽 테이블에는 푹신해 보이는 의자와 쿠션이 양쪽으로 놓여져 있다. 손님들은 주로 이 테이블을 애용한다. 테이블에서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오늘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 연인 관계였으나 지금은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유명 연예인 유진(정유미)과 그의 연인이던 창석(정준원), 세 번의 짧은 만남 뒤 남성이 급작스레 해외여행을 다녀오느라 수 개월 만에 끊겼던 인연을 이어가게 된 경진(정은채)과 민호(전성우), 사기 결혼 전문가로서 또 다른 사기 결혼 프로젝트의 미션 수행을 위해 만난 숙희(김혜옥)와 은희(한예리), 마지막으로 가을에 결혼을 앞두고 있으나 여전히 옛 연인 앞에서 몸과 마음이 흔들리는 혜경(임수정)과 그의 옛 연인 봉희(연우진), 이 네 팀이 카페의 창가 테이블을 오늘 하룻동안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유진은 유명 연예인이라 얼굴을 드러내놓고 다닐 수 없는 처지다. 한때 그녀의 연인이었던 창석은 그러한 유진의 변화가 마냥 신기하게 다가온다. 두 사람은 모처럼 만나 대화를 진행하지만, 그럴수록 무언가 거리감이 느껴지며 어색해질 뿐이다. 두 사람 사이의 간극은 유명 연예인과 일반인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멀어져 예전의 편했던 관계로 돌아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왠지 씁쓸하다. 그 둘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과 미묘한 감정의 흐름은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민호가 세계여행을 다녀오기까지 수 개월 동안 경진에게 아무런 연락을 취하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연이 닿아 만나게 됐다. 두 사람의 사이는 남녀가 마치 첫 만남을 가진 뒤 서로를 향해 탐색전을 벌이거나 의중을 살피듯 살얼음을 걷는 느낌이다. 각기 바라는 바가 무언지 명확하지만, 상대방이 품고 있는 감정의 진위를 파악하느라 계속해서 엇박자를 드러내며 아슬아슬 감정의 줄타기가 시작된다. 이런 살벌함 속에서 분위기를 극적으로 반전시키는 건 결국 민호다. 물론 경진도 중요한 찰나 양념을 적절하게 뿌리며 호응해 온다. 첫 연애시절 간직했을 법한 설렘 따위가 느껴지는 에피소드다.



사기 결혼 전문가인 은희와 숙희는 이쪽 업계에서는 프로페셔널이다. 은희가 부여하는 미션에 대해 숙희는 척척 알아들으며, 노련미를 뽐낸다. 이렇게 서로 다음 프로젝트에 대해 주고 받는 도중 무언가 평상시와는 다른 느낌을 받게 되는 숙희, 알고 보니 은희의 이번 결혼 미션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경우였다. 은희에겐 숙희 같은 어머니가 있었고, 마찬가지로 숙희에겐 은희 같은 딸이 있었다. 그 때문일까? 숙희는 진심을 담아 은희의 이번 결혼 프로젝트를 돕는다. 속 깊은 숙희의 감정은 왠지 우리네 어머니의 그것을 닮아있다. 



한때 봉희와 연인 사이였으나 결혼은 결국 다른 남자와 하게 되는 혜경은 봉희를 만나 흔들리는 자신의 속내를 가감없이 드러낸다. 마음이 가는 길과 사람이 가는 길이 서로 다르다며, 아직 봉희에게 끌리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스스럼 없이 밝히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혜경의 적극적인 성격에 비하면 봉희는 어딘가 모르게 소극적이다. 진짜 속내 드러내기를 꺼려하는 눈치다. 하지만 사실은 그 역시 혜경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감성과 이성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두 청춘의 흔들림은 아주 미세한 진동을 일으킨다. 



모두 네 가지의 에피소드가 카페의 한 테이블을 매개로 진행된다. 공간은 한결 같지만, 상이한 사람들 및 이야기들이 그곳에 일정 시간 머물다 간다. 사람이 바뀌고 이야기가 변할 때마다 시간도 그만큼 자연스럽게 흘러가기 마련이다. 감독은 각기 다른 소재의 이야기와 다양한 배우들을 통해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맛보게 되는 애틋함, 설렘, 아쉬움, 현실감 따위를 특정 시공간을 통해 얘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자극적이거나 과장 없이 오로지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 및 대화를 통해 떨리는 듯 아주 미묘한 감정의 변화까지 세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카페, 거기에다 특정 테이블이라는 공간적 배경 위에 다양한 군상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번갈아 풀어놓으며, 우리의 삶을 섬세하면서도 감성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감독  김종관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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