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주체할 수 없는 강한 열정 '노마: 뉴 노르딕 퀴진의 비밀'

새 날 2018. 1. 2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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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 '노마'에서 취급하는 음식은 한결같다. 오로지 북유럽 스타일뿐이다. '노마(noma)'라는 레스토랑의 이름을 통해서도 이는 감지된다. 북유럽을 뜻하는 ‘노르디시’와 음식을 뜻하는 ‘마드’라는 의미가 각각 담겨 있기 때문이다. 노마 설립자가 어떤 생각 및 의지를 갖고 레스토랑을 설립하였으며, 운영하고 있는지 그 일단이 읽히는 대목이다. 


셰프이자 레스토랑 노마의 설립자 르네 레드제피는 어느날 대자연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그린란드로 여행을 다녀온 뒤 그곳의 시간과 공간에 매료되었고, 이로부터 영감을 얻어 자신이 살고 있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오로지 북유럽 스타일의 음식을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노마를 창립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음식은 주로 프랑스 영국 등의 서유럽 국가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남유럽 국가들이었기에 오롯이 북유럽 스타일의 음식을 주 메뉴로 하는 레스토랑이 과연 시장에서 승산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반신반의했다. 개중엔 냉소를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르네의 음식에 관한 철학은 확고했다. 음식엔 시간과 공간을 담아야 하며, 특정 계절에는 그 시즌에 걸맞는 맛을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로지 북유럽에서 생산되는 제철 식재료만으로 음식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식재료에 사활을 걸었던 그다. 



이러한 노력은 결국 빛을 발한다. 미식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에 당당히 1위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이후 노마는 승승장구한다. 예약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노마 때문에 덴마크 코펜하겐의 여행객이 급증했다는 후문이 들려올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이다. 뜻하지 않은 복병이 나타났다. 노마에서 음식을 먹은 손님 수십 명이 노로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다. 노마가 받은 타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여론이 극도로 악화된 건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다. 어렵게 쌓은 명성이 와르르 무너질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르네 레드제피가 창업한 노마가 대단한 건 적어도 미식계에서는 변방으로 치부되어 오던 북유럽 스타일의 음식을 통해 성공을 거뒀다는 사실 뿐 아니라 그가 스칸디나비아와는 애초 관련이 없는 마케도니아 출신인 데다가 이슬람교 신봉자라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마케도니아에서 덴마크로 이민을 온 이후 르네는 그의 출신 성분 때문에 무수한 편견과 차별에 시달려야 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일궈낸 값진 성공인 까닭에 그를 향해 혁신적인 셰프라 불러도 전혀 어색한 느낌 따위는 없다. 


다큐멘터리 장르인 이 작품의 초반은 다소 지루하다. 르네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어떻게 노마의 성공을 일궈냈는지 그의 주변 사람들을 출연시킨 뒤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해 나간다. 그를 둘러싼 녹록치 않은 환경을 비추고, 그의 지난한 노력들을 차츰차츰 부각시키면서 노마가 왜 북유럽 스타일로 성공을 거둘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관객들을 설득시킨다. 노마에서 식사한 손님의 다수가 동시다발적으로 노로바이러스에 노출된 이후 겪게 되는 에피소드에 이르면서 극은 점차 정점을 향해 치달아간다. 



신선한 제철 및 스칸디나비아 현지의 식재료만을 주로 사용한다는 게 노마의 운영 철학이었기에 앞서의 사건으로 인한 충격의 여파는 컸다. 카메라는 이러한 장면을 좇으며 여과 없이 담아낸다. 르네를 비롯, 그의 휘하에서 최고의 손맛을 선보이던 셰프들은 충격에 빠진 채 우왕좌왕하고 만다. 르네의 고심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셰프들과 이번 사건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 고뇌하고, 때로는 그들을 다독이면서 노마를 다시금 변화의 장으로 이끌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르네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르네는 혁신가다운 면모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영화의 긴장감은 이 즈음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한다.  



르네는 어렵사리 획득한 세계 1위의 명성을 잃었다가 다시금 탈환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실패할 것입니다" 그는 실패를 거듭하면서 노마가 이 자리까지 왔다고 단언한다. 실패가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공은 결코 맛보지 못했을 것이고, 실패가 지속되더라도 염려하지 않는 건 퍼펙트스톰이 지나가면 모호해진 경계가 다시 뚜렷해지듯이 언젠간 반드시 이겨낼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라며 담담히 말한다. 



그의 사고는 자유분방하며 유연하다. 그리고 젊다. 적어도 음식 앞에서 만큼은 누구보다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크다. 이제껏 존재하지 않던 북유럽 스타일의 요리를 창조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바로 이러한 것들이다. 르네가 생각하는 요리의 정체성은 단순히 시각과 미각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자연에 존재하는 수많은 식재료 본연의 향과 질감 그리고 색감까지 이를 식탁에 고스란히 옮겨 시간과 공간만이 제공 가능한 유일무이한 감각을 느끼게 하는 데 있다. 



그의 혁신이 성공을 거두고 여전히 사랑을 받는 건 이렇듯 개방적인 사고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신념을 끝까지 지켰던 그의 진지한 삶의 태도에 있다. 그러나 우리가 르네에게 끌리는 건 단순히 그가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 아니다. 단언컨대 그의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열정 때문이다.



감독  피에르 데샹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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