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진정한 소통이란 '목소리의 형태'

새 날 2018. 1. 24.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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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년생인 이시다의 학급에 새로운 학생이 전학을 온다. 니시미야였다. 그녀는 청각 장애가 있어 다른 아이들과 의사소통을 하려면 반드시 노트를 이용해야 했다. 아이들은 처음엔 자신들과 다른 니시미야를 적극적으로 도우며 호의를 베풀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함을 토로하더니 점차 그녀를 외면하기 시작한다. 개구지기로 소문난 이시다가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다. 그는 니시미야에게 다가가 괜시리 해코지를 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시미야가 미안하다며 먼저 사과를 해오자 오히려 그의 괴롭힘은 더욱 심해진다. 


그녀의 유일한 소통 도구였던 노트를 물에 빠뜨리며 니시미야를 곤혹스럽게 하고, 그녀에겐 둘도 없이 소중한 보청기를 빼낸 뒤 갖다 버리거나 망가뜨리기를 수 차례 반복, 그녀는 결국 이들의 따돌림과 괴롭힘 때문에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이시다는 이번 사건의 핵심 가해자로 지목되고, 그로 인해 학교 공동체 내 또래 아이들로부터 손가락질과 외면을 당하게 된다. 



6년의 세월이 흘렀다. 고등학생이 된 이시다(이리노 미유)는 과거 니시미야(하야미 사오리)와 얽힌 사건으로 인해 낙인이 찍힌 채 동료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사들로부터도 집단 따돌림을 당하며 외톨이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결국 삶의 의미를 잃은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작정하고 자신과 악연을 맺게 된 과거 사건의 주인공 니시미야를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 생각한 끝에 찾아가는데...



이시다는 니시미야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학교에서는 여전히 왕따인 터라 걸을 때조차 정면을 바라보지 못하고 바닥만 보며 다녀야 하는 처지였으나 그녀에게 접근을 시도하고 만남이 성사된 뒤로는 이시다 역시 조금씩 변모해가기 시작한다. 이시다와 니시미야의 중간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터주는 등 인연을 더욱 끈끈하게 맺도록 촉매 역할을 담당하는 건 언제나 니시미야의 동생 유즈르(유우키 아오이)였다. 



그녀는 언니 니시미야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학교도 포기한 채 니시미야의 주변을 맴돌면서 부족함을 메워주고 있던 터다. 변화의 징후는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외톨이 신세인 이시다에게도 드디어 친구가 생긴 것이다. 이시다의 도움을 받은 같은 반 친구 나가츠카(오노 켄쇼)가 가장 먼저 이시다의 친구를 자처하고 나섰다. 친구란 무엇인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던 이시다에게도 드디어 진정한 친구가 생긴 셈이다.



따돌림을 가한 가해자가 외톨이가 된 뒤로 자신을 옭아매던 족쇄로부터 헤어나지 못한 채 방황하다가 피해자와 재차 연이 닿게 되고 이후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가면서 점차 변화를 겪게 되는 과정을 섬세한 연출과 아름다운 그림 그리고 감성적인 영상미로 스크린에 옮긴 애니메이션이다. 이 영화는 2017년 도쿄 애니메이션 어워드 페스티벌 각본상 및 작품상과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 애니오브더이어 작품상을 수상하였으며, 제40회 일본 아카데미 우수 애니메이션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된 바 있다. 아울러 원작은 일본에서만 300만 부 이상이 팔린 오이마 요시토키 작가의 동명 만화 '목소리의 형태'다. 



등장 인물의 감정 변화 등 세세한 부분까지 마치 실사를 보듯 섬세하게 터치한 감독의 연출력은 놀라움 그 자체다. 불꽃놀이 장면은 정교하기 이를 데 없으며, 물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잉어 등 공간적 배경이 된 사물과 주변의 생물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생동감이 넘치고 아름다웠다. 이시다의 진정성을 간파한 니시미야가 그에게 비록 힘이 들고 어눌한 목소리로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애써 표현해보지만 이시다는 끝내 이를 헤아리지 못한다. 이를 이해했다면 극의 방향과 전개는 전혀 달라졌을 테다. 



감독은 듣지 못하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한 소녀를 매개로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서로 다른 처지의 사람들이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이해를 구하려는 노력이 공동체 내에서 얼마나 절실한가를 비록 조용하고 어눌하지만 힘있는 목소리의 형태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진정한 소통이란 가능한 모든 감각과 도구를 활용, 서로를 향해 조금씩 다가서려는 몸짓임을 관객들에게 설파하고 있는 셈이다. 잔잔한 이야기, 아울러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그림이 함께 어우러지며 짙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감독  야마다 나오코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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