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적당히 웃기고 감동적인 마요미표 영화 '부라더'

새 날 2018. 1. 21.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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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대 있는 가문의 이단아? 아니 여기서는 왠지 진상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석봉(마동석)과 주봉(이동휘) 형제는 부친의 장례 때문에 각자 고향 안동으로 향한다. 목적지에 거의 다다를 즈음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나게 되고 주봉의 승용차를 이용하여 집으로 향하게 되는데,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두 형제가 차 안에서 티격태격하는 사이 무언가가 차에 다가오더니 쿵하고 부딪힌다. 


깜짝 놀란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부딪힌 물건이 사람이 아니기만을 학수고대하면서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한다. 바로 그 때다. 풀섶에 한 여성(이하늬)이 쓰러져 있는 게 아닌가. 형제는 부리나케 그녀를 안고 차에 태운 뒤 병원으로 가려고 하는데, 정신을 문득 차린 여성은 횡설수설하기 시작한다. 교통사고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진 것으로 판단한 형제는 어떡하든 이 여성을 병원으로 데리고 가려 하나 끝내 만류하는 그녀다. 결국 고향집 부근에 여성을 내려주고 헤어지는데...



석봉은 유물 발굴을 통해 인생 역전을 노리는 인물로서 이에 전 재산을 쏟아부을 만큼 일종의 헛된 꿈을 좇고 있다. 인디아나존스로 불리기를 바라나 현실은 빚만 자꾸 늘어나는 악순환에 놓인 처지다. 석봉의 동생 주봉은 건설회사에서 승승장구하며 나름 잘 나가는 인물이지만, 중요한 프로젝트 입안 과정에서 조그만 실수로 절체절명의 궁지로 내몰리던 찰나다. 부친의 장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향집을 방문하지만 두 사람의 사이가 워낙 좋지 않듯 방문 속셈 역시 각기 다른 곳에 있었다. 



유교 문화로 가풍을 이어온 문중도 이들의 막돼먹은 행동에 일제히 혀를 내두르고 만다. 한편 정신이 반쯤 나간 듯한 그 이상한 여성은 자꾸만 형제 앞에 나타나 그들의 정신을 홀딱 빼놓기 일쑤다. 그날도 형제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번엔 그들의 처지를 뒤집어놓을 만한 놀라운 정보를 귀띔해준다. 부친의 장례를 치르는 자식들이 상주 노릇은커녕 상복조차 입지 않으려는 진상 짓을 톡톡히 하려던 순간, 급작스레 태도를 돌변하게 된 건 순전히 이 여성 덕분이다.



'부라더'는 2008년 초연을 했던 스테디셀러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흔히 전통이 깊다거나 뼈대가 있는 가문이라고 하면 여성이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당해야 했던 유교 문화를 기반으로 한다. 영화 속에서도 등장하지만, 종가에서 문중의 예가 치러질 때면 여성이 일로 혹사를 당하면서도 점잖은 척 폼만 잡고 앉은 남성들에 의해 늘 꾸지람을 당하는 처지였다. 


석봉과 주봉의 어머니(성병숙) 역시 이런 환경에서 어렵사리 살아오다가 결국 아버지(전무송)보다 세상을 일찍 등지게 된다. 형제는 어머니를 이러한 처지로 내몬 아버지며 몹쓸 전통, 그리고 그와 관련한 어른들이 너무도 미웠다. 형제가 진상이 된 건 순전히 이러한 아픈 과거 때문이다. 전통을 유지한답시며 한껏 예를 갖춘 어른들의 모습과 핏줄이면서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들더러 꼰대라 칭하며 제멋대로 행동하는 형제의 모습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일탈을 즐기듯 관객들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해준다. 



유교문화의 전통을 이어가는 일은 꽤나 번거롭고 귀찮다. 이치에 맞지 않는 일도 더러 있다. 어차피 문중에서 거의 내놓다시피 한 석봉과 주봉은 자신들의 지극히 사사로운 목적 때문에 잠시 예를 갖추는 척한다. 그 틈바구니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미봉(조우진)의 처(송상은)다. 미봉의 애매한 처신으로 인해 자칫 종부가 될 운명에 놓였기 때문이다. 


정신은 요즘 사람의 것으로 박혀 있음이 분명한데, 몸은 옛 전통을 따르다 보니 무언가 엇박자이기 일쑤다. 미봉의 처를 지탱시키는 유일한 힘은 다름 아닌 부엌 뒤켠에서 몰래 피우는 말보로 담배 한 개비다. 그녀가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가치관의 혼란을 느끼며 내뱉는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는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완곡한 거부의 몸짓 하나 하나는 안쓰러우면서도 때로는 웃음을 유발해 온다. 



전통을 지키려는 어른들과 이들을 벌레 쳐다보듯 콧방귀도 안 뀌는 후손들, 어쩌면 이러한 광경은 우리 사회가 현재 겪고 있는 가치관의 급격한 변화 과정 및 그로 인한 간극을 나타내는 게 아닌가 싶다. 형제가 꼰대라고 부르는 어르신들이 사자성어를 사용해가며 점잖게 이들을 훈계하다가도 형제들의 막나가는 꼴을 도저히 눈 뜨고 못봐주겠는지 종국엔 육두문자를 사용해가며 성을 내는 모습은 절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아울러 마동석의 덩치를 활용한 몸개그, 그리고 애드립처럼 와닿는 배우들의 맞받아치는 깨알 같은 대사로부터는 예기치 않은 웃음보가 터져나오곤 한다. 때로는 천륜의 애틋함 따위의 정서도 느낄 수 있다. 각본이 탄탄하다는 점은 이 작품이 갖춘 미덕으로 여겨진다. 아마도 인기 뮤지컬을 영화화한 덕분이 아닐까 싶다. 적당히 웃기고 적당히 감동도 선사해주는, 시간 때우기에 그만인 마요미표 영화다.



감독  장유정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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