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쉼과 위안으로 다가오는 공간 '심야식당'

새 날 2018. 1. 18.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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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번화가 뒷골목에 자리한 아주 조그만 식당, 이곳의 운영 방식은 조금 특이하다. 밤 12시에 문을 열고 아침 7시가 되면 닫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야식당이라 불린다. 주인장인 마스터(코바야시 카오루)는 손님이 요구해 올 때마다 자신이 조리 가능한 음식이라면 무엇이든 묵묵히 만들어 제공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 식당에서 판매하고 있는 메뉴는 매우 단촐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야식당에는 단골 손님들로 늘 북적인다. 왜 그럴까? 무언가 편안해 보이는 분위기, 마스터의 출중한 요리 솜씨 등이 일과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의 발길을 이곳으로 자꾸만 잡아끄는 건 아닐까? 야심한 시각, 그것도 도심 뒷골목이다 보니 주로 허기를 달래며 술을 곁들이려는 손님들이 태반이다. 마스터는 조용히 손님들 이야기를 들어주고, 맛깔스런 요리로 분위기를 띄운다. 따스한 정감이 흐르는, 정말 멋진 곳이다. 



이 작품의 원작은 일본에서만 누적판매 240만 부를 기록한 동명의 베스트셀러 만화 ‘심야식당’이다. 뿐만 아니다. 드라마로도 제작된 바 있다. 덕분에 일본의 국민 드라마로 등극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한국, 대만, 홍콩 등 아시아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다. 영화는 도쿄 신주쿠 골든가를 배경으로 그려진다. 도심 번화가 뒤의 좁다란 골목길과 낡은 점포들로 얼기설기 얽혀 있는 모습은 서울의 종로나 서촌 뒷골목을 연상시킨다. 세련된 분위기 일색의 도심 이면은 이처럼 세월이 눅진하게 포개어진 채 켜켜이 쌓인 듯 정겹기 그지없다. 심야식당은 바로 이러한 곳에 위치해 수많은 사람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줄 뿐 아니라 지친 마음까지 어루만져준다.



극은 '나폴리탄', '마밥', '카레라이스' 등 모두 세 종류의 음식과 그에 얽힌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서로 다른 인물과 주제로 다뤄지지만, 큰 줄기는 결국 하나다. 심야식당을 매개로 다양한 손님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와 그들의 면면을 담고 있다. '나폴리탄'은 부동산 회사를 운영할 정도로 돈이 많은 기둥서방이 급작스레 죽으면서 모든 것을 잃고 만 여인 타마코(타카오카 사키)와 가진 것은 비록 많지 않지만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물 만큼 순수함을 지닌 청년 하지메(에모토 토키오) 사이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마밥'은 고아 출신으로서 시골에서 상경, 모진 고초를 겪다가 우연한 기회에 심야식당에서 마스터와 인연을 맺게 된 여성 미치루(타베 미카코)와 관련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카레라이스'는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남성 켄조(츠츠이 미치타카), 그리고 직장 상사와 좋지 않은 관계로 또 다른 상처를 입은 여성 아케미(키쿠치 아키코)가 카레라이스를 매개로 펼치는 에피소드다.



미각과 후각이 침샘을 연신 자극해 오는 상황에서 어딘가 낯익은 듯힌 공간이 베푸는 편안함은 자연스레 사람들의 말문을 열기 마련이다. 여기에 마스터의 조용하면서도 몸에 밴 배려와 존중은 한 번 이곳에 들른 고객들로 하여금 단골이 되도록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손님과 손님 사이의 관계가 마스터를 매개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소통이 이뤄질 수 있었던 배경 역시 그가 갖춘 인간 됨됨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마스터가 선보이는 음식들은 값비싸고 화려하며 진귀한 것들이 결코 아니다.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아주 소박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음식을 통해 일상에 지친 손님들은 위안을 얻고 간다. 심야식당만이 갖출 법한 매력 아닐까 싶다. 이는 근래 비록 작지만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소확행' 트렌드와 맞닿아 있다. 온갖 자극적이고 화려함 일색인 일상 속에서 매우 낡고 좁은 가게, 손때 가득할 것 같은 각종 주방 집기들,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골목 풍경 등의 요소는 오히려 편안함과 위안으로 다가오기에 꼭 알맞은 셈이다. 



여기에 맛깔스럽게 빚어내는 조리 장면과 불에 달구어질 때마다 음식들이 내지르는 각종 맛있는 소리들, 아울러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장면들로부터는 온갖 번잡스런 일상과 일로부터 잠시잠깐 동안만이라도 해방감을 만끽하게 해준다. 심야식당이라는 작은 공간은 세상사에 지친 사람들의 편안한 소통 공간이 되어주기도 하며, 음식을 매개로 삶을 이야기하는 곳이기도 하다. 마스터의 묵직하지만 편안한 표정, 금손임이 틀림없는 빠른 손놀림, 그리고 그가 빚어낸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 편안한 공간에서 이를 즐기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아울러 이들의 희노애락을 들으면서 우리는 느릿느릿 쉼과 위안을 얻는다.



감독  마츠오카 조지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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