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그대가 지향하는 삶의 방식을 응원합니다 '스타박'스 다방'

새 날 2018. 1. 12.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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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박성두(백성현)는 커피에 흠뻑 빠져 있는 청년이다. 성두의 어머니(김경미)는 그런 그의 뒷바라지와 성공을 위해 열심히 담금질 및 채찍질을 번갈아가며 하는 와중이다. 하지만 성두는 왠지 관심이 다른 곳에 가 있는 듯싶다. 성두는 어머니 몰래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에 한 발을 걸쳐놓은 상태였다. 아르바이트를 하다가도 시간이 임박해 부리나케 고시 학원으로 달려가기를 수 차례,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커피숍 사장은 아르바이트 시간마저 빼먹고 학원에 다녀오는 성두를 탐탁치 않게 여겼고, 어머니는 어머니 대로 무언가 공부를 소홀히 하는 듯 보이는 아들의 행동이 영 못마땅하던 찰나, 성두가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실이 발각되고 만다. 진퇴양난이었다. 성두는 공부에 매진하라며 닥달하는 어머니에게 적어도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는 시간만큼은 건드리지 말아달라며 부탁해보지만, 그를 옥죄어오는 현실 앞에서 그만 숨이 턱턱 막혀온다. 어머니에게 며칠만 쉬고 오겠다는 메모를 남기고선 이모(이상아)가 살고 있는 강원도 삼척으로 훌쩍 떠나는데... 



성두 이모는 삼척에서 조그만 다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시골 다방 대부분이 그렇듯이 커피보다는 웃음을 판다고 봐야 함이 맞겠다. 성두가 삼척에 도착, 그곳으로 향한 그날도 그랬다. 이미 불콰하게 취한 어떤 낯선 사내와 엉켜 소주를 들이키는 모습을 목격하고 만다. 성두는 이모를 설득, 허름한 다방을 리모델링하여 카페 형태로 바꾸고 다방커피가 아닌 원두커피를 판매하자고 한다. 



삼척의 명물 '스타박'스 다방'은 이렇게 탄생했다. 자신의 모든 걸 내려놓고 바리스타로 변신, 그가 좋아하는 커피를 내리며 달달한 맛의 커피에 익숙한 지역 주민들에게 사심 없이 다가가려는 성두, 그의 소박한 꿈은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 부분과 제3회 가톨릭영화제 CaFF 초청 장편 부분에 공식 초청된 작품으로, 오로지 앞만 보고 내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작은 쉼과 위안으로 다가오게 한다. 성두의 엄마와 이모는 핏줄을 나눈 사이임에도 성두의 진로를 두고 엄마가 바라는 고시 합격이냐 아니면 성두 스스로가 진정으로 원하는 방향이냐의 차이만큼이나 그 성향은 극과 극이다. 


그 대척점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던 성두는 함께 고시를 준비하던 친구 동팔이의 폭탄선언이 기폭제가 되어 결국 엄마의 인생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비록 느리지만 뚜벅뚜벅 걷기 시작한다. 카페 형태로 운영한다며 거창하게 스타박'스 다방을 열기는 했으나, 사실 한적한 바닷가 시골 마을에서 제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원두커피가 생각만큼 잘 팔릴 리 만무하다. 



결국 그가 선택한 건 타협이었다. 그래서 '카페' 대신 시골 사람들에게 익숙한 '다방'이라는 이름을 내걸었고, 배달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기꺼이 자전거를 이용, 바리스타가 손수 갖다주는 서비스까지 제공키로 한 것이다. 한적한 시골 마을은 정신 없는 도시에 비하면 시간이 멈춘 듯 느릿느릿 흘러간다. 성두의 동생 차두(신원호)와 그의 절친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동네를 휘저으며 노는 모습과 동네 할머니들이 쉬엄쉬엄 마실 다니는 장면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연서(서신애)는 성두가 아르바이트할 때도 그가 좋다며 한 시간 간격으로 커피를 주문하면서 커피숍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소일했는데, 성두가 삼척에 스타박'스 다방을 연 뒤에도 어떻게 안 것인지 그를 보기 위해 먼 길을 마다 않고 찾아와 성두와 그녀에게 허락된 짧은 시간을 함께한다. 그밖에 성두가 삼척으로 온 뒤 다양한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함께하게 되면서, 이를테면 기묘한 분위기의 청년경찰(이정구)과 돼지미용실의 그녀 등 많은 에피소드들이 만들어진다. 



때로는 웃기고 때로는 어이 없기도 한 장면들 하나하나로부터는 어설프면서도 왠지 시골 풍경처럼 정겹게 다가온다. 이상아 씨는 TV나 스크린을 통해 접한 지 오래된 배우라 특히 반가웠다. 성두 역을 맡은 백성현, 이모 역의 이상아, 그리고 연서 역의 서신애 이 세 명의 배우는 아역 배우라는 공통점을 지닌 사실도 이채롭다.   



원두커피의 향은 향긋하지만 그 첫맛은 씁쓸하다. 입에 어느 정도 머금고 있어야 원두의 고유한 향과 맛이 입안을 맴돈다. 반면 인스탄트인 다방커피는 처음도 달고 마지막도 달다. 한결같다. 성두의 이모가 소주의 맛을 달콤하다며 연서에게 권해보지만, 아직 첫키스조차 경험해보지 못한 어린 연서로서는 그 쓴맛을 감당해내기가 쉽지 않다. 우리의 삶은 바로 원두커피를 빼닮았다. 항상 좋고 재미있는 일만 있을 수 없으며, 괴롭고 슬픈 일, 때로는 정말로 견디기 어려울 만큼 힘든 역경도 겪기 마련이다. 감독은 이러한 삶의 보편적 양태를 향긋하지만 씁쓸하면서도 고소하고 달콤한 커피에 비유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편견으로 가득 들어찬 세상과 고정관념으로부터 과감히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려는 젊은이들의 꿈틀거림이 최근 늘고 있다.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을 만큼 말이다. 진정한 행복을 꿈꾸는 이들에게 있어 어쩌면 스타박'스 다방은 성지와도 같은 존재로 다가올지 모르겠다. 내가 성두의 삶을 응원하는 이유다.



감독  이상우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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