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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 경험의 즐거움 539

소통 부재가 낳은 파문 '비거 스플래쉬'

전설적인 록 뮤지션 마리안(틸다 스윈튼)과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폴(마티아스 쇼에나에츠)은 이탈리아의 한 섬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있던 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음악 프로듀서인 해리(랄프 파인즈)가 그의 딸 페넬로페(다코타 존슨)와 함께 로마로부터 그들을 다짜고짜 찾아온다. 마리안과 해리는 과거 한때 연인이었던 사이다. 두 사람의 관계를 어느 누구보다 잘 알던 폴의 입장에서는 해리의 방문이 영 마뜩지가 않은데.. 마리안은 성대가 망가져 얼마 전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상태였다. 덕분에 목소리를 온전히 낼 수가 없는 처지다. 해리는 자신의 기분에 따라 멋대로 행동하는 자유분방한 성향의 인물이다. 그가 폴과 마리안의 휴식처를 찾아온 건 오로지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마리안과의 관계를 과거의 상태로 복원하..

보통사람의 전쟁 공포감을 극적으로 묘사한 영화 '이 세상의 한구석에'

1930년대 히로시마 바닷가의 한 작은 마을, 이 곳이 삶의 터전인 스즈(노넨 레나)는 그림 그리는 일을 무척 좋아하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소녀다. 그런데 그녀에겐 맹한 구석이 있었다. 그녀 스스로도 이를 잘 알고 있던 터다. 단점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인간미가 느껴져 오히려 그녀만의 매력으로 다가오게 한다. 부모님의 부족한 일손을 거들고 삼남매와 늘 부대끼며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던 그녀는 18세가 되던 해에 쿠레 지역의 슈사쿠(호소야 요시마사)와 결혼하게 된다. 남편이 될 사람의 얼굴조차 모른 채 결혼한 그녀는 아는 사람이라고는 하나 없는 쿠레의 시댁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 모든 사람이 낯 설었으며 일 또한 고되게 다가왔지만 유난히 착실했던 그녀는 이러한 어려움을 잘 극복하면서 차츰 슈사쿠의 집..

클래식한 영상미가 돋보이는 영화 '프란츠'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목숨을 잃은 독일인 프란츠(안톤 폰 루카), 그에게는 결혼을 앞둔 안나(폴라 비어)라 불리는 약혼녀가 있었다. 약혼자의 죽음으로 인해 실의에 빠진 그녀는 독일의 한적한 마을에 위치한 프란츠의 집에서 그의 아버지 한스(에른스트 스퇴츠너) 그리고 어머니 마그다(마리 그루버)와 함께 살고 있었다. 서로를 위로하며 상실감을 추스리고 있던 참이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란츠의 무덤에 누군가 찾아와 꽃을 놓고 간다. 수소문 해보니 프란츠의 프랑스 친구 아드리앵(피에르 니네이)이라고 한다. 독일과 프랑스는 서로 적대 관계에 놓여있던 참이라 프란츠의 부모는 자신들을 찾아온 아드리앵이 영 마뜩지 않았다. 때문에 한스는 처음엔 그를 매몰차게 보내버린다. 하지만 아드리앵이 프란츠와 절친이었으며, 프랑..

삶이란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푸른노을'

남우(박인환)는 평생 동안 사진을 찍어온 사진사이자 작가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에 밀려 어느덧 그 자리를 누군가에게 내줘야 할 판이다. 어느 날 무려 3년 만에 빵가게를 차리고 싶다며 다짜고짜 아버지의 사진관을 접었으면 좋겠다고 나타난 아들 내외가 남우를 고민에 빠뜨리게 한다. 평생 절친인 항만(한태일)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의견을 서로 주고 받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다. 오히려 고민만 더욱 깊어갈 뿐이다. 결국 가게를 정리하기로 마음을 굳힌 그는 과거 손님의 사진을 우편으로 보냈다가 수취인 불명으로 되돌아온 것들을 별도로 추려 이의 주인을 찾아주기로 작정하고 길 위로 나선다. 수취인 불명 사진의 첫 주인은 거리에서 악기 연주 등 잡기를 선보이며 약을 팔아 생활하는, 찰리 황이라 불리는 황달주(남경읍)였다..

규격화된 삶만이 정답일까? '편의점 인간'

후루쿠라 게이코는 어릴 적부터 남들과는 조금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이를 행위로 옮길 때에는 늘 부모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제지가 뒤따랐다. 비슷한 결과가 수 차례 반복되자 마침내 그녀는 차라리 가만히 있자고 마음 먹은 뒤 조용히 지내기로 작정한다. 이후의 학창시절은 언제나 이런 방식이었다. 특별히 눈에 띄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다 보니 친구는 거의 없었으며, 그렇다고 하여 따돌림을 당하는 일도 딱히 발생하지 않았다. 그저 쥐 죽은 듯 조용히 학창시절을 보낸 게이코는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다만 대학 신입생 때 우연히 편의점에 매료되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 이래로 편의점 내에서 톱니바퀴 돌아가듯 완벽하게 그의 일원이 된 자신이 비로소 한 사람의 역할을 하고..

가슴에만 품고 입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말 '퇴사하겠습니다'

나이 50이 되어 회사를 그만두고 과감히 아프로헤어(흑인처럼 모발을 곱슬곱슬하게 만든 뒤 이를 빗으로 세워 크게 둥근 모양으로 다듬은 헤어스타일)를 한 채 주변 사람들로부터 전에 없던 인기를 누린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전직 아사히신문사 기자 이나가키 에미코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물론 여기서의 아프로헤어는 그녀의 실재 머리 모양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상징적인 표현에 가깝다. 회사를 벗어난 덕분에 그만큼 홀가분해졌으며 자립의 만족스러움을 빗댄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회사라는 조직에 적을 두고 있을 때엔 결코 볼 수 없거나 알 수 없었던 사실들을 회사의 문을 박차고 나선 뒤 비로소 깨닫게 된다는 그녀의 이야기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게 한다. 일본 사회가 그동안 걸어온 길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

가족으로 인해 힘들 때 읽으면 도움 되는 책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가족이란 어떤 존재일까? 아니, 어떤 존재여야 할까? 유일한 내편?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기댈 수 있는 편안한 쉼터? 물론 어느 누가 됐든,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 적어도 가족 구성원만큼은 자신들에게 안식처 같은 역할을 해주길 기대할 테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는 달리 그 연결고리가 그렇게 단단하지 만은 않은 것 같다. 근래 들어 더욱 그렇다. 가족을 성립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절차인 혼인이란 게 부모 자식 간의 관계와는 달리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서 성립된, 일종의 계약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성립된 계약은 언제든 파기될 수 있다. 이렇듯 일견 인력이 강하게 작용할 듯싶은 가족 관계조차도 계약의 파기와 동시에 일대 혼돈의 세계로 접어들기 십상이다. 어린 자녀를 둔 경우..

픽션 같은 논픽션, 배낭여행 '3류들의 납치'

누구에게나 여행은 즐거움과 설렘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비록 당시에 힘들거나 곤란한 일을 겪게 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일정 시간이 흐른 뒤 돌이켜 보면 대부분 좋은 추억으로 남기 마련이다. 아마도 새로운 곳에서 낯 선 이들과 함께 비정형적이며 불가측적인 경험을 가능케 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렇듯 여행은, 그것도 배낭 하나 달랑 멘 채 낯 선 지역을 돌아다니는 여행이라면 더더욱, 뜻하지 않은 일들을 무수히 겪게 해준다. 아마도 이런 점이 여행이 주는 묘미이자 매력 아닐까? 우리의 삶이 갈수록 팍팍해지다 보니 자유로운 여행을 떠나보는 게 꿈이자 로망인 시대다. 버킷 리스트엔 으레 어딘가로의 여행 목록 하나쯤은 반드시 포함돼 있기 마련이다. '3류들의 납치'는 여행 작가 츠지 카즈마가 보통사람들처럼 대학..

엄마와 딸의 로맨스는 달달할 리 없어 '레이디 버드'

크리스틴 맥퍼슨(시얼샤 로넌)은 대학 진학을 앞둔 고교 졸업반 소녀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레이디 버드'라 불러 달란다. 이유 같은 건 딱히 없다. 어느 누가 그녀에게 이름을 물어봐도 한결같이 '레이디 버드'라 대답한다. 이렇듯 정체성이 뚜렷한 그녀는 자신의 삶에 자꾸만 태클을 걸어오는 엄마(로리 멧칼프)의 간섭이 마냥 못마땅했다. 사사건건 의견 충돌을 빚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세상 모든 게 못마땅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른 집 아이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그다지 형편이 좋지 않다는 현실과 현재 거주지인 새크라멘토를 향한 불만이 늘 그녀의 내면 한쪽에 토아리를 틀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떡하든 새크라멘토를 탈출하여 멋진 인생을 꿈꾸며 살고 싶었다. 정체성과 자립심이 강하고 호기심이 왕성했던 그녀는 자신이..

연대와 헌신의 나비효과 '벤딩 디 아크: 세상을 바꾸는 힘'

하버드 의대생 폴 파머는 아프리카 아이티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펼치던 도중 결핵에 감염되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사람들의 참상을 목도하게 된다. 결핵은 치료만으로도 충분히 완치가 가능한 질병임에도 불구하고 아이티 현지인들의 현실은 완전히 딴판이었다. 무엇보다 가난이 죄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호소하다가 맥없이 숨져갔다. 오직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이러한 고통을 겪고 있는 현실이 그에겐 너무도 불합리하게 와닿았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과 비슷한 신념과 생각을 갖고 있던, 곧 그의 삶을 일정한 방향으로 인도하고 함께하게 될 사회운동가 오필리아 달, 그리고 의대생인 김용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고 의기투합 끝에 비영리 의료단체인 '파트너스 인 헬스'를 설립한다. 이들은 가난으로 인해 질병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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