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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으로 인해 힘들 때 읽으면 도움 되는 책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새 날 2018. 4. 10.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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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어떤 존재일까? 아니, 어떤 존재여야 할까? 유일한 내편?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기댈 수 있는 편안한 쉼터? 물론 어느 누가 됐든,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 적어도 가족 구성원만큼은 자신들에게 안식처 같은 역할을 해주길 기대할 테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는 달리 그 연결고리가 그렇게 단단하지 만은 않은 것 같다. 근래 들어 더욱 그렇다. 가족을 성립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절차인 혼인이란 게 부모 자식 간의 관계와는 달리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서 성립된, 일종의 계약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성립된 계약은 언제든 파기될 수 있다. 


이렇듯 일견 인력이 강하게 작용할 듯싶은 가족 관계조차도 계약의 파기와 동시에 일대 혼돈의 세계로 접어들기 십상이다. 어린 자녀를 둔 경우라면 더더욱 예측 불허의 상황으로 치닫기 마련이다. 물론 천륜지간이라고 하여 그 관계가 특별히 더 좋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남들과의 관계보다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영화 '레이디 버드'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이름을 지어준 부모가 싫다며 스스로에게 이름을 부여한 뒤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 불러달라고 간청한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끈끈할 것 같은 이 가족 관계가 오히려 더 부담으로 다가오게 하거나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대상으로 전락하곤 하는 셈이다. 그래서 그런 걸까? 혹자는 가족을 이렇게도 표현한다. 누가 보고 있지 않을 때 몰래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이쯤 되면 오히려 남보다 더 못한 게 가족 아닐까? 이렇듯 가족이란 가장 편안하면서도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복잡미묘한 관계인지도 모른다. 



이 책에는 가족 간에 형성될 법한 갈등과 회한, 아픔 그리고 상실감 따위가 잔잔하면서도 우리의 감성을 후벼파는 부드러운 필체로 묘사되어 있다. '성인식' '언젠가 왔던 길' 등 각기 다른 가족 관계를 이야기하는 6편의 단편 소설이 차례로 실려 있다. 이들 단편 가운데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는 지난 2016년 일본 문학상인 제155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비단 이러한 이력 때문이 아니더라도 그의 섬세한 필치는 이를 읽는 이로 하여금 추억과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게 하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다. 


불과 5세에 불과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외동딸을 교통사고로 잃은 뒤 부부는 상실감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줄 알았건만, 일상 속에서 문득문득 죽은 아이가 떠오르는 일이 다반사이고, 덕분에 배우자 몰래 새벽에 일어나 과거 아이의 활동을 저장해놓은 영상을 반복 시청하면서 눈시울을 적시곤 한다. 여전히 아이를 가슴에 묻지 못한 것이다. 얼마나 그립고 고통스러울지, 그 절절함이 책자를 뚫고 내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이다. 아이가 생존해 있다면 어느덧 성인이 되었을 터, 우연한 기회에 부부는 아이의 성인식에 대신 참석하기로 결정, 상실 치유에 나서는데..  <성인식>


자존심 강하고 어떤 일이든 완벽을 기해야 성에 차던 까탈스러운 어머니, 덕분에 그녀의 딸은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결국 그런 어머니가 싫어 집을 뛰쳐나간다. 어느덧 16년이란 세월히 흘렀다. 급작스런 동생의 연락을 받고 돌아온 어머니의 집,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할 뿐 아니라 그렇게 완고하고 철두철미하던 과거의 이미지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이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양 다리를 통해 간신히 자존심의 흔적만 남겨 놓은 채다. 세월에 의해 무너져버린 어머니의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딸은 과거의 상처가 모두 아물 줄로만 알았는데...  <언젠가 왔던 길>



요즘엔 이발소를 찾기가 참 쉽지 않다. 덕분에 몸소 손품 발품을 팔아 이를 찾아야 했던 한 청년, 이발소엔 주인장인 노인 한 분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며, 그의 정성스런 손길에 의해 청년의 머리카락이 조심스레 잘려 나간다. 이발 과정은 매우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너무 사실적이라 어릴 적 동네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던 그 아스라한 추억이 자동적으로 소환된다. 이발소를 상징하는 그 삼색등하며 운영 방식은 결국 일본의 것을 그대로 답습한 게 아닐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게 한다. 푸른 바다가 보이는 이 이발소는 긴 시간의 흐름만큼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과 추억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곳이자 노인의 인생이 오롯이 담긴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청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속속들이 털어놓는 노인과 청년 사이엔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 같은 게 조용히 흐르는데...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사소한 부부싸움 끝에 친정에 온 아내, 친정 부모님은 이런 딸을 탐탁지 않아 하는 눈치다. 남편이 미워 무작정 떠나오긴 했으나 그렇다고 하여 그녀 역시 이혼까지 바라는 눈치는 아니다. 남편을 향한 일종의 시위였던 셈이다. 전화나 문자가 오면 일부러 무시하기를 수 차례,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내심 지금 당장이라도 자신을 데리러 온다면 모른 척하며 함께 가줄 의향은 있다. 그런데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던가. 처음엔 남편 편을 들어주던 친정 부모님마저도 시간이 조금 지나자 어느덧 자신을 옹호하며 남편을 비난하고 있는 게 아닌가. 헐.. 이런 결과를 바랐던 건 아닌데.. 남편을 두둔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두 사람의 애정 전선엔 아직 이상이 없는 듯싶은데..  <멀리서 온 편지>


한글을 처음 배울 때 거리의 간판을 가리키며 무작정 글자를 읽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마찬가지로 이제 영어를 한창 배우는 중인 이 소년은 길 위의 사물을 영단어로 바꿔 말하며 다니는 재미를 붙이고 있던 참이다. 집을 뛰쳐나온 그날도 그랬다. 하늘은 온통 블루했으며, 화이트 색상의 구름이 두둥실 떠 있었고, 산에는 그린 색상의 온갖 풀과 나무들이 즐비했다. 눈이 부실 만큼 파란, 블루 색상의 바다로 향하던 소년은 쓰레기봉투를 뒤집어쓴 채 돌아다니던 또 다른 또래를 만나 여정을 함께하기로 한다. 바다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고 험했다. 어른들의 보호막 없이 해가 질 때까지 바닷가를 서성거리던 이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반반씩 뒤섞여 혼란스럽기 만했다. 가족 해체 및 아동 학대로 이어지는 관계, 이로인한 상처와 아픔은 과연 누가 보듬을 것이며 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건 또 누가 해야 하는 것인지..  <하늘은 오늘도 스카이>



돌아가신 아버지가 차고 다니던 시계라며 느닷없이 오래된 손목시계 하나를 내게 건네주시던 어머니, 누구나 알 법한 스위스 브랜드 제품이라 당시 값이 꽤 나갔을 것이라는 부연 설명까지 덧붙인다. 하지만 시계는 고장이 나는 바람에 당장 수리가 필요했다. 물론 이를 수리해야 할지 말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일조차도 쉽지는 않았다.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까 싶어서다. 게다가 이렇게나 오래된 시계를 수리할 만한 가게가 과연 존재하는가 하는 사실 또한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없게 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수소문 끝에 시계만큼이나 오래돼 보이는 수리점을 발견하긴 했다. 이곳에 걸린 시계에는 각기 다른 추억과 삶의 흔적 그리고 온갖 사연들이 차곡차곡 쌓인 채 배어 있는데..   <때가 없는 시계>


가족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경우가 있는 건 엄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누군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가족이란 유일한 행복이자 가장 소중한 가치 가운데 하나이며, 든든한 버팀목 같은 게 아닐까? 


이 책은 비록 세상에서 가장 작지만 소중한 커뮤니티인 가족을 소재로 한다. 부모와 자식, 부부 등 다양한 가족 관계를 이야기한다. 가족 역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이기에 갈등을 피해갈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다. 가족 간에도 얼마든 틈이 벌어질 수 있다. 이 틈으로 인해 생긴 상처 일부를 작가가 부드럽고 섬세한 필치로 메우려 시도한다. 나머지는 여백으로 남겨놓았으니 결국 독자들의 몫이다. 온통 자극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때로는 추억을 소환하고, 때로는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우리에게 잔잔한 쉼을 선사해준다. 



저자  오기와라 히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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