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픽션 같은 논픽션, 배낭여행 '3류들의 납치'

새 날 2018. 4. 7.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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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여행은 즐거움과 설렘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비록 당시에 힘들거나 곤란한 일을 겪게 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일정 시간이 흐른 뒤 돌이켜 보면 대부분 좋은 추억으로 남기 마련이다. 아마도 새로운 곳에서 낯 선 이들과 함께 비정형적이며 불가측적인 경험을 가능케 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렇듯 여행은, 그것도 배낭 하나 달랑 멘 채 낯 선 지역을 돌아다니는 여행이라면 더더욱, 뜻하지 않은 일들을 무수히 겪게 해준다. 아마도 이런 점이 여행이 주는 묘미이자 매력 아닐까?


우리의 삶이 갈수록 팍팍해지다 보니 자유로운 여행을 떠나보는 게 꿈이자 로망인 시대다. 버킷 리스트엔 으레 어딘가로의 여행 목록 하나쯤은 반드시 포함돼 있기 마련이다. '3류들의 납치'는 여행 작가 츠지 카즈마가 보통사람들처럼 대학 졸업 후 회사에 취직하여 1년반 정도 다니다가 뻔한 생활에 염증을 느껴 과감히 회사를 때려치운 뒤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전 세계를 떠돌며 실제로 경험했던 12가지 에피소드를 풀어 놓은 책이다. 


논픽션이지만, 픽션처럼 드라마틱한 내용들 일색이다. 물론 저자가 내용을 쉽고 맛깔스럽게 각색한 덕분이라 짐작된다. 때문에 책을 한 번 손에 쥐게 되면 단숨에 읽어 내려가게 된다. '전율과 감동, 12개의 진짜 여행 이야기'라는 책의 부제처럼 그가 겪은 일들이 정말로 사실일까 싶을 만큼 극적인 내용들 일색이다. 



특히 베트남 동하로 가는 버스 안에서 운전기사를 비롯한 3인조 강도를 만나 극적으로 위기를 모면하게 되는 이야기와 치안이 좋지 않은 멕시코 시우다 후아레스의 숙소에서 밤새 총격전이 벌어지고 이로 인해 공포 속에서 떨어야 했던 에피소드, 아울러 남미의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 국경에서 밀입국하는 이들과 함께 버스에 올라 겪게 되는 아슬아슬한 사건들은 나의 심장마저 두근거리게 한다. 


기후 등 환경으로 인해 저자가 겪었을 어려움은 당사자에겐 무척 괴로웠겠으나 미안하게도 이를 바라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흥미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한겨울의 눈 쌓인 미국 네바다 주 사막 한복판에서 추위와 벌여야 했던 사투, 그리고 터키 트로이로 가는 길목에서 극도의 배고픔과 추위를 동시에 경험하면서 과연 어느 쪽이 더 괴로운 것인가 고민해야 했던 일들은 바로 그러한 사례 가운데 하나다. 



때로는 육체적으로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할 때도 있었다. 비가 억수로 내려 급류로 변한 라오스 메콩강에서 겪었던 스릴, 그리고 끝없는 습지로 이뤄진 브라질 판타날 초원을 지나면서 그 어느 때보다 고향 생각이 간절했던 경험들이 바로 그러하다. 아울러 여행지에서 낯 선 이들을 새롭게 알게 되는 경험은 여행이 주는 또 다른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 특히 라오스 시골 마을에서 인연을 맺게 된 '차'라고 불리는 어린 소년은 그에게 깊은 인상과 여운을 남긴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이스라엘에 의해 고통을 당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생활을 몸소 확인하고, 이스라엘군의 총탄이 날아드는 위험천만한 시위 현장을 직접 찾게 된다. 저자는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을 송두리째 빼앗고 그들의 삶을 파괴한 현실에 분노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이 시위에 나설 당시 위협적인 투석으로 선제 공격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비판하는 등 균형적인 시각도 잊지 않고 있다. 



그밖에 숙소 등에서 겪은 초자연적인 현상들도 언급하고 있다. 저자가 직접 그린 삽화는 가벼운 글의 내용과 찰떡궁합이 아닐 수 없다. 여행담이라고 하여 반드시 진지하고 감성적인 필치로 묘사할 필요는 없다. 이 책처럼 재미적인 요소를 가미, 논픽션을 픽션처럼 다가오게 하는 방식도 나름 매력 있게 다가오니 말이다. 서두에서도 언급했듯 여행 도중 괴롭고 힘들었던 에피소드들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훌륭한 추억거리로 남게 되듯이 장난기 가득한 저자의 필치는 당시의 끔찍했던 사건마저도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는 묘미로 다가오게 한다. 


이 책의 내용과 형식은 새털처럼 가볍다. 하지만 여행과 관련한 낭만을 북돋는 데는 상당 부분 기여할 것이라 짐작된다. 여행, 특히 해외 배낭여행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행위이다. 기회비용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이다. 아마도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선뜻 이에 나서지 못하는 건 현실적인 어려움과 더불어 이러한 연유가 한 몫 거들 줄로 짐작된다. 이 책이 이런 분들에게 일정 수준의 대리만족을 누리게 해줄 것으로 믿는다.


저자  츠지 카즈마

역자  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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