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가슴에만 품고 입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말 '퇴사하겠습니다'

새 날 2018. 4. 14.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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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50이 되어 회사를 그만두고 과감히 아프로헤어(흑인처럼 모발을 곱슬곱슬하게 만든 뒤 이를 빗으로 세워 크게 둥근 모양으로 다듬은 헤어스타일)를 한 채 주변 사람들로부터 전에 없던 인기를 누린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전직 아사히신문사 기자 이나가키 에미코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물론 여기서의 아프로헤어는 그녀의 실재 머리 모양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상징적인 표현에 가깝다. 회사를 벗어난 덕분에 그만큼 홀가분해졌으며 자립의 만족스러움을 빗댄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회사라는 조직에 적을 두고 있을 때엔 결코 볼 수 없거나 알 수 없었던 사실들을 회사의 문을 박차고 나선 뒤 비로소 깨닫게 된다는 그녀의 이야기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게 한다. 일본 사회가 그동안 걸어온 길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앞으로 밟고 가야 하는 또 다른 경로일지도 모른다. 일본 사회는 버블경제로 불리는 고도성장기를 거쳐 극도의 경기 침체기를 관통해왔다. 고도성장기에는 누구나 조금만 노력해도 그 과실을 쉽게 취할 수 있었으며, 덕분에 회사 조직에 몸담고 있던 회사원들 역시 그에 따른 혜택을 비교적 공평하게 누려왔다. 


하지만 버블이 본격적으로 꺼지고 성장이 정점을 찍으며 내리막길로 돌아선 뒤에는 소비마저도 크게 둔화하고 있다. 필요한 것들은 거의 모두 생산되고 소비되다시피한 끝에 어느덧 한계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인구가 줄어든 데다가 고령화사회로의 진입은 이러한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일종의 가속 페달 역할을 한다. 회사가 유지되고 그 조직원인 회사원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는 소비가 활성화돼야 하는데, 이미 정점을 찍은 소비는 더 이상 증가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덕분에 회사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인 이익 실현조차도 쉽지가 않다. 



회사는 이익을 더욱 늘리기 위해 혈안이 될 수밖에 없고, 사람을 값싸게 고용하여 쉽게 버리거나 고객을 속이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탕발림의 거짓 선전과 사기성 판매로 소비자들을 현혹시키기 일쑤이며 심지어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저자가 언급한 대표적인 사례가 휴대폰 판매 방식이다. 우리 사회 역시 고도성장기를 지나 저성장기로 본격 진입했다. 세계 최저 수준의 초저출산율은 생산가능인구마저도 꺾이게 할 만큼 위협적인 존재로 다가온다. 조만간 일본처럼 인구가 줄고 빈집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점쳐지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일본이 앞서 경험한 이러한 현상들은 곧 우리의 미래가 될 공산이 크다는 의미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국가가 그동안 경제를 부양시키기 위해 이 회사라는 조직을 암암리에 이용해왔다는 데 있다.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 그리고 실업보험과 같은 사회안전망도 회사에 적을 두고 있을 때에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심지어 신용카드 발급과 대출 등과 같은 빚을 얻을 때 요구되는 신용조차도 회사를 벗어나게 되면, 즉 개인 신분으로는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가 없다. 이는 회사원이 아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비애 아닌 비애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회사원이 되기 위해 그토록 모진 경쟁도 마다않으며, 정부 또한 취업률에 목을 메고 있는 실정인지도 모르겠다.


회사를 퇴직하는 순간 퇴직자에게 가장 먼저 피부로 와닿는 건 바로 이러한 사회보장서비스의 부재 내지 부실일 테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 나라는 회사원이 아니면 할 수 있는 게 도대체 뭐냐고.' 이렇듯 회사 안과 밖의 온도차는 극명하다. 



비단 일본만의 문제일까? '회사원이세요? 그렇다면 언제든 대출이 가능합니다' 근래 TV를 통해 흘러나오는 대출회사 광고 문구 가운데 하나다. 일개인으로서의 신용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회사라는 조직에 속해 있을 때에만 그 회사의 권위를 빌려 신용이 인정되는, 그런 사회를 우린 살아간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를 이른바 '회사사회'라 일컫는다. 


회사에 목을 멘 채 퇴사할 때까지 충성하고 퇴사 이후에도 회사의 권위가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일컬어 '회사인간'이라 표현한 데서 한 단계 더 나간 개념이다. 그러니까 회사인간들이 한데 모인 조직, 즉 하나의 시스템이 바로 '회사사회'인 셈이다. 저자는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시대는 당분간 다시 도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전망한다. 때문에 그 시대에 적합했던 '회사사회'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본다. 


아울러 회사사회 체계에서의 개인은 어쩔 수 없이 회사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데,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이 끔찍한 체계로부터의 탈출은 오로지 개인의 자립밖에 없다며 힘주어 주장한다. 이는 근래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분위기와 엇비슷하다. 최근 퇴준생이 늘고 있고, 워라밸을 중시하는 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현상은 비슷한 맥락으로 받아들여진다. 일이 가능한 건 비단 회사원만이 아니다. 자영업자도 할 수 있고, 프리랜서, 주부, 심지어 무직자도 할 수 있음에도, 세상은 지나치게 회사에만 관대하며 때문에 특정 영역으로의 쏠림 현상을 심화시킨다. 



회사에 소속되어 상사와 동료로부터 인정 받고 더 높은 직위로의 승진을 꿈꾸며 보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평생을 눈치와 긴장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회사원들, 오르는 급여 수준에 걸맞게 소비를 늘려가지만, 만족을 모르고 끊임없이 달려야만 하는 인간 본연의 욕망이 꿈틀거리는 이상 결국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워버려야 하는 삶, 우리는 혹시 이러한 방식을 진정한 행복으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바야흐로 물질 풍요의 시대다. 없는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굳이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편리한 것'을 대량생산하는 세상이 됐다. 그러나 이의 소비도 어느덧 한계에 다다랐다. 마트에 가면 계절에 상관 없이 모든 채소와 과일을 언제든 구입할 수 있다. 저자가 지방으로 발령을 받아 현지 시장을 돌아다니다가 제철에만 구할 수 있는 채소를 소비하면서 오히려 부족함과 불편함이 진짜 행복을 누리게 해준다는 사실을 터득한 경험은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만든다. 


물론 저자는 홀몸이다. 가족 부양도 필요 없으며, 교육비, 주거비 등 모든 속박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그런 그녀가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돌아선 행위는, 어쩌면 같은 나이인 50에 대학에 다니는 자녀가 있거나 아니면 곧 대학 입학을 앞둔 자녀가 있으며, 부모님을 봉양해야 하는 등 무한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의 그것과는 무게감이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회사를 사랑하지 말란 말도 설득력이 있고, 의존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그녀의 주장도 충분히 납득이 된다. 하지만 '퇴사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입밖으로 꺼내기엔, 평범한 사람이 나이 50이 되어 짊어져야 하는 짐이나 우리 사회의 현실로 비춰볼 때 아직은 두려운 일일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을 졸업한 뒤 좋은 직장에 입사, 그렇게 한평생을 살아야 비교적 성공한 삶이라며 치켜세우기 바쁜 우리에게 있어 '회사사회'가 갖는 함의와 그녀의 주장은 한번쯤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다. 



저자  이나가키 에미코

역자  김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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