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규격화된 삶만이 정답일까? '편의점 인간'

새 날 2018. 4. 1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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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쿠라 게이코는 어릴 적부터 남들과는 조금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이를 행위로 옮길 때에는 늘 부모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제지가 뒤따랐다. 비슷한 결과가 수 차례 반복되자 마침내 그녀는 차라리 가만히 있자고 마음 먹은 뒤 조용히 지내기로 작정한다. 이후의 학창시절은 언제나 이런 방식이었다. 특별히 눈에 띄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다 보니 친구는 거의 없었으며, 그렇다고 하여 따돌림을 당하는 일도 딱히 발생하지 않았다. 


그저 쥐 죽은 듯 조용히 학창시절을 보낸 게이코는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다만 대학 신입생 때 우연히 편의점에 매료되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 이래로 편의점 내에서 톱니바퀴 돌아가듯 완벽하게 그의 일원이 된 자신이 비로소 한 사람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 때문에 이후 18년 동안이나 계속해서 같은 일을 해오고 있을 뿐이다. 


그녀는 편의점 내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공기의 흐름만으로도 상황을 낱낱이 파악할 정도로 모든 것이, 심지어 잠자리나 꿈속에서조차도, 편의점의 시스템에 맞춰져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을 때에만이 마음의 평화를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 그녀의 말투는 함께 일하는 동료의 그것을 닮아가고 있었으며, 화를 낼 줄조차 몰라해 하던 그녀는 이 역시 동료의 것을 고스란히 흉내내면서 점차 완벽한 편의점의 일부가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신입 아르바이트생 시라하가 합류하는데...  



게이코는 정상인의 기준으로 보자면 결코 정상인이 아니었다. 30이 넘어서도 뚜렷한 직장을 구하지 않고 오로지 편의점 아르바이트만 하고 있으며, 친구들은 대부분 결혼하여 애를 낳고 잘 살고 있는데 그녀는 아직까지 연애조차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보통사람이 아닌, 조금은 특별한 사람을 향한 보통사람들의 관심은 도가 지나칠 정도다. 자신들과 조금 다르게 살 뿐인데, 사는 방식에 마치 정답이라도 있는 양 사사건건 미주알고주알 참견에 훈장질하기 일쑤이니 말이다. 


그녀는 편의점 시스템 내에서 있을 때 가장 자신답고 사람다운 감정을 느끼며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데, 되레 그녀의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더 걱정해주는 척하며 참견하는 등 오지랖이었다. 연애를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 일을 시작했다는 게이코 또래의 시라하 역시 정상인의 기준으로 보자면 그 범주로부터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다. 게다가 불성실한 주제에 세상을 향한 불신과 불만만큼은 초일류급이었다.


그는 무슨 연유에서인지, 아니 남성다움을 강요하는 이 세상이 못마땅했던 탓인지, 평생 일을 하지 않고 살아가길 원했으며, 어느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은 채 조용히 혼자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편의점 시스템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 게이코와 반대로, 그는 절대로 편의점 시스템 내에 들어와서는 안 될 존재였다. 이러한 이질적인 성향처럼 두 사람 사이에는 접점 따위는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여겨졌다. 정말이다.



그러나 자신도 왠지 보통사람인 척하며 살고 싶어 했던 게이코와 평생 일을 하지 않아도 누군가 의식주를 해결해주고 혼자 내버려두기를 간절히 바랐던 시라하 두 사람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동거에 들어가기로 의기투합할 땐 정말로 놀라워 입이 떡 하고 벌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본격적으로 흥미를 유발하는 지점이다. 


18년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자신의 실제 경험을 이야기하는 듯한 무라타 사야카의 자전적 소설이다. 지난 2016년 일본에서 제155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키워드는 '보통사람'과 '정상적'이란 낱말이다. 삶과 관련하여 정상적이란 건 과연 어떤 수준을 말하는 것이며, 보통사람이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러한 잣대는 도대체 누가, 그리고 왜 만든 것일까? 게이코가 정상적이지 못하며 보통사람이 아닌 이유는, 30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고, 연애는커녕 결혼할 생각조차 없기 때문일까? 아울러 시라하 역시 서른살이 넘은 남성임에도 뚜렷한 직장 없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빈둥빈둥 살아가고 있고, 인간관계를 모두 끊은 채 혼자서만 지내려 하기 때문일까?


두 사람의 동거가 성립된 건 앞서도 언급했듯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거북하게 다가오던 차에 오직 보통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하던 게이코의 사사로운 욕망과 먹이(이 소설 속에서는 실제로 먹이에 해당한다. 절대로 식사라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이다)를 받아 먹으며 혼자만의 안식처를 제공 받을 수 있노라는 시라하의 얄팍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게이코는 왜 보통사람처럼 보여야 했던 걸까? 주변 사람들의 삐딱한 시선이 그녀를 그렇게 하도록 종용하고 옭아맸던 건 아닐까? 왜 이른바 보통사람들은 그녀의 삶에 대해 그토록 민감할 정도로 관심을 갖고 참견해야 했던 걸까? 자신들과 조금이라도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꼴을 아예 못 보겠다는 건가?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빈틈없이 돌아가는 편의점 시스템에 묻힌 채 그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게 편하고 가장 사람답게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편의점 인간'이란 무얼까? 자의에 의하든 타의에 의하든 주류에 편입되지 않은, 비주류에 속하는 이들을 상징하는 것일 테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을 한 번 살펴보자. 이 소설에 빗대어보자면, 여성은 여자다워야 하며 남성은 남자다워야 하고, 마찬가지로 서른이 넘으면 당연히 취업을 해야 보통사람으로서의 기본 요건을 일정 부분 충족시키는 것으로 간주될 테다. 


그렇다면 대학 졸업 후 번듯한 회사에 들어가 결혼을 하고 내집 장만에 아이를 낳아 잘 사는 모습을 규격화된 보통사람들의 삶이라고 본다면, 그로부터 조금이라도 이탈하고 있는 삶이 또 다른 양태의 '편의점 인간'으로 낙인 찍히게 되는 현상은 결국 시간 문제에 불과할 듯싶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보통사람들처럼 어쩌면 우리 역시 주류를 벗어난 이들에게, 당신의 삶은 틀렸다며 지금 이 시각에도 끊임없이 정서적 린치를 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저자  무라타 사야카

역자  김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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