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삶이란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푸른노을'

새 날 2018. 4. 19.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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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박인환)는 평생 동안 사진을 찍어온 사진사이자 작가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에 밀려 어느덧 그 자리를 누군가에게 내줘야 할 판이다. 어느 날 무려 3년 만에 빵가게를 차리고 싶다며 다짜고짜 아버지의 사진관을 접었으면 좋겠다고 나타난 아들 내외가 남우를 고민에 빠뜨리게 한다. 평생 절친인 항만(한태일)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의견을 서로 주고 받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다. 오히려 고민만 더욱 깊어갈 뿐이다. 



결국 가게를 정리하기로 마음을 굳힌 그는 과거 손님의 사진을 우편으로 보냈다가 수취인 불명으로 되돌아온 것들을 별도로 추려 이의 주인을 찾아주기로 작정하고 길 위로 나선다. 수취인 불명 사진의 첫 주인은 거리에서 악기 연주 등 잡기를 선보이며 약을 팔아 생활하는, 찰리 황이라 불리는 황달주(남경읍)였다. 남우는 달주 그리고 달주와의 인연으로 연줄이 닿게 된 은녀(오미희)와 함께 나머지 수취인 불명 사진의 주인을 찾아 투어에 나서는데...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의 노랫말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것처럼 다가올 법한 연령대에 이르면 사실 상처로 남은 사연 하나쯤 갖고 있지 않거나, 질곡으로 다가오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줄로 안다. 길흉화복은 우리 삶의 여정에 있어 반드시 한 번은 겪게 되는 과정 가운데 하나다. 수취인 불명 사진으로 연이 닿아 의기투합하게 된 남우, 은녀, 달주 이 세 사람 역시 지나온 세월이 남아있는 시간보다 훨씬 길었던 만큼 각자 말 못할 사연들을 가슴에 살포시 품고 있는 터였다. 


사람들이 왜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것 같냐는 은녀의 질문에 사진작가 남우는 이렇게 답한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가기만 하는데, 그나마 사진은 순간을 붙들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그 과거의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행복했던 시간일 수 있겠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 같은 기억으로 남아있을 수도 있다. 이들이 투어를 다니며 수취인 불명 사진의 주인을 찾아 직접 건넬 때마다 그들의 반응 역시 이처럼 극명하게 갈린다. 어떤 이는 버럭 화부터 내며 결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이 사진 한 장으로 인해 재차 들췄다면서 그 자리에서 찢어버리기도 하고, 또 다른 어떤 이는 과거의 행복했던 추억이 떠올랐는지 함박웃음을 지어보이기도 한다. 


이렇듯 사진은 과거 어느 시점의 순간을 한 장의 이미지로 포착해놓은, 흡사 마법을 부리는 도구와도 같다. 이들 세 사람의 투어가 본격 궤도에 오르면서 각자 내면에 안고 있던 고통과 상처가 표피 밖으로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과거의 상처로 인해 눈물을 훔치고 가슴을 연신 쥐어뜯어 보아도 밀려드는 회한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 이들은 여행을 함께하면서 혼자라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법한 아픔을 나누고 상처를 치유한다. 



주로 TV 드라마를 통해 아버지 역할로 많이 등장했던 박인환 씨가 모처럼 스크린에 얼굴을 비쳐 반가왔으며, 그의 연륜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다. 여기에 남경읍 씨의 다재다능한 재능 및 끼와 오미희 씨의 관록 있는 연기가 더해지니 감동은 배가 된다. 



인생을 살다 보면 어느 누구에게든 굴곡이 있기 마련이다. 아픔과 상처는 통과의례이며, 사연 없는 삶은 단언컨대 없다. 태어난 이상 반드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것처럼 삶이란 결국 고통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이다. 다만 과거의 삶이 질곡으로 다가온다 해도 결국 살아가다 보면 어떡하든 살아지기 마련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남우, 달주, 그리고 은녀와의 결코 달달하지 만은 않은 투어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감독  박규식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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