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클래식한 영상미가 돋보이는 영화 '프란츠'

새 날 2018. 4. 21.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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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목숨을 잃은 독일인 프란츠(안톤 폰 루카), 그에게는 결혼을 앞둔 안나(폴라 비어)라 불리는 약혼녀가 있었다. 약혼자의 죽음으로 인해 실의에 빠진 그녀는 독일의 한적한 마을에 위치한 프란츠의 집에서 그의 아버지 한스(에른스트 스퇴츠너) 그리고 어머니 마그다(마리 그루버)와 함께 살고 있었다. 서로를 위로하며 상실감을 추스리고 있던 참이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란츠의 무덤에 누군가 찾아와 꽃을 놓고 간다. 수소문 해보니 프란츠의 프랑스 친구 아드리앵(피에르 니네이)이라고 한다. 독일과 프랑스는 서로 적대 관계에 놓여있던 참이라 프란츠의 부모는 자신들을 찾아온 아드리앵이 영 마뜩지 않았다. 때문에 한스는 처음엔 그를 매몰차게 보내버린다. 하지만 아드리앵이 프란츠와 절친이었으며, 프랑스에서 프란츠와 지냈던 이야기를 풀어놓자 이내 마음을 열어놓기 시작한다. 



안나와 프란츠의 부모는 매일 그의 집에 찾아와 프란츠의 이야기를 하며 죽은 그의 흔적을 돌아보게 해준 아드리앵이 너무도 고마웠다. 안나 역시 아드리앵에게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딘가 어두운 기색이 역력한 아드리앵에게는 차마 말 못할 비밀 하나가 있었다. 그는 안나에게 이를 모두 실토하고 프랑스로 훌쩍 떠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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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한 영상에 걸맞게 시종일관 흑백톤의 화면이 스크린 위로 펼쳐진다. 하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운 것 같다. 특이하게도 프란츠의 생전 이야기나 아드리앵의 거짓 등 몇몇의 신에는 컬러를 입혀놓아 유독 눈에 띄던 참이다. 프란츠를 많이 사랑한 안나는 슬픔과 상실감도 그에 정확히 비례했다. 그런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온 프란츠의 절친 아드리앵은 어느덧 프란츠의 부재로 인해 발생한 공허함을 메워주고 있었다. 


안나와 아드리앵 모두 프란츠로 인해 고통을 겪었으며, 또한 여전히 상실감을 안고 있지만, 프란츠의 또 다른 흔적인 아드리앵은 안나에겐 분명 치유를 넘어선 그 이상의 대상으로 다가오게 하고 있었다. 조용한 독일 마을, 바람이 불면 나뭇잎들이 서로 부딪히며 서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안나와 아드리앵은 과거 안나와 프란츠가 그랬던 것처럼 이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 앉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를 함께 경청한다. 



아드리앵은 프랑스로 떠나고, 허전함에 몸둘 바를 몰라해 하던 안나는 그와 함께 경험하던 그 바람과 나뭇잎 소리를 우연히 접하고선 소식이 끊긴 그를 찾아 무작정 프랑스로 떠나는데... 



전쟁은 사람들을 광기로 몰아넣곤 한다. 독일과 프랑스도 그랬다. 이들 국가는 종식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을 제대로 앓고 있었다. 독일로 찾아온 프랑스인 아드리앵은 독일인들에게 환대를 받을 리 만무했다. 마찬가지로 아드리앵을 찾으러 프랑스로 간 독일인 안나 역시 프랑스인들의 따가운 눈총을 피해갈 수 없었다. 아들을 전장에서 잃은 수많은 부모들은 상대 국가를 향한 적대 감정을 결코 감추지 않았다. 


대중들이 모여있는 곳에서는 으레 전투 의지와 애국심을 북돋는 노래가 울려퍼지곤 한다. 이렇듯 전쟁은 국가주의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며, 사람들을 광기로 몰아가는 주범이다. 아울러 희생자 양산은 필연이었다. 전사자와 부상자만이 희생의 전부는 아니다. 숨진 프란츠가 전쟁의 직접 희생자였다면, 안나와 아드리앵 그리고 프란츠의 부모 등은 간접 희생자다. 



누군가를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았다고 하여 결코 기뻐할 일도 아니다. 그로 인한 후유증은 더 많은 사람들을 극한의 고통 속으로 몰아넣곤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약혼자를 전쟁에서 잃은 뒤, 같은 전쟁에 참여했다가 기어코 살아남은 한 남자를 만나 감정의 변화를 겪게 되는 안나의 모습은 안쓰럽기 짝이 없다. 안나의 행적을 좇으며 그녀의 감정을 헤아리다 보면 너무 씁쓸하고 안타까워 몸둘 바를 모르겠다. 



감정의 기복을 밖으로 잘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내면의 복잡한 심리 상태를 섬세하게 묘사한 폴라 비어의 연기는 단연 돋보인다. 개인적으로는 프란츠의 아버지로 등장한 에른스트 스퇴츠너의 그 묵직한 외모와 연기가 좋았다. 무엇보다 영상미가 돋보였던 작품이다. 전쟁을 다루는 스토리라 밝은 내용은 아니지만, 클래식한 그 흑백톤의 영상을 바라보며 귓가를 은은히 맴도는 배경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절로 위안이 된다.



감독  프랑소와 오종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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