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인터스텔라> 항성간 시공간마저 뛰어넘는 인간애

새 날 2014. 11. 9.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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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성과 항성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사실 우리의 시공간 개념을 훌쩍 뛰어넘을 만큼 엄청난 수치일 테다.  '광년'이란 빛의 속도를 이용한 거리 단위가 사용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인터스텔라'가 비교적 과학적 이론을 충실히 따른 작품이라 해도 시공간을 뛰어넘는다는 건 여전히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임에 틀림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장치 중 하나가 아마도 '웜홀'이란 개념 아니었을까 싶다.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연결하는 우주에서의 시공간 사이에 놓인 구멍이 바로 '웜홀'이다.  즉 일종의 축지법처럼 시공간을 압축하여 이동할 수 있는 통로를 의미하는데, 순전히 수학적 원리로서만 가능한 이론이란 사실은 엄연한 한계다.

 

어쨌든 '웜홀'의 등장은 이 영화의 주제 의식에 있어 절대 빠져선 안 될 성간 여행의 전제 조건이 아닐 수 없다.  과학적 이론에 충실한, 나름 진중한 영화에서 만화적 상상력을 동원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을 테니, 아마도 웜홀이 아니었더라면 과연 어떠한 원리를 통해 그 넓은 우주공간을 마구 휘젓게 할 수 있었을까 싶다. 

 

물론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블랙홀의 존재조차 실제 확인했다기보다 그곳 주변의 궤도를 돌던 별이 블랙홀 근처에서 특이한 패턴을 나타내자 무언가 엄청난 중력이 존재할 것이란 예측으로부터 만들어진, 일종의 상상 속 이론일 뿐이란 건 여전한 함정이지만 말이다. 

 

우주공간엔 은하의 수가 2천억개가 있으며, 각 은하마다 또 2천억개의 항성이 존재한단다.  그렇다면 우리 은하에도 태양과 같은 항성이 2천억개가 있다는 의미일 텐데, 알다시피 태양계만 해도 어마어마한 규모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태양계와 비슷한 무리가 우리 은하에만 무려 2천억개가 존재하고 있는 셈이니 과연 어느 정도의 크기일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까운 미래, 급격한 환경과 기후 변화를 겪어오면서 지구는 점차 녹색 행성으로부터 삭막한 행성으로 변모해가는 와중이다.  황사는 일상이며, 거대한 모래폭풍이 수시로 우리의 생활 공간을 덮쳐올 만큼 척박하기 그지없다.  환경의 변화는 삶의 터전에도 크게 영향을 미쳐와 다른 무엇보다 먹고 사는 일이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때 우주선을 타고 우주 개척에 몸담았던 고급 기술자 쿠퍼(매튜 매커너히)에게도 이러한 변화만큼은 피할 수 없었다. 

 

옥수수 농사에 몸 담고 있는 그다.  그의 딸 머피는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덕분에 영특한 데다 과학 영역에서의 호기심마저 왕성했다.  그녀의 방안에 가득 꽂혀있는 책장에선 언젠가부터 초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하고 있었다.  머피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유령이 나타난다는 식으로 표현했다.  가만히 꽂혀있던 책이 갑자기 저 혼자 떨어지거나 먼지가 쌓여가는 형태로부턴 규칙적인 현상이 발견되곤 한다.

 

 

그날도 그랬다.  모래폭풍이 불어닥쳤는데, 머피의 실수로 그만 자신의 방 창문을 닫지 않은 채였다.  뒤늦게 방을 확인했지만, 이미 모래폭풍으로 인해 엉망이 된 뒤다.  쿠퍼가 이를 확인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머피가 언젠가 자신에게 농담처럼 떠들던 방안에서의 유령 현상과 모래먼지가 쌓이는 묘한 패턴이 겹치면서 자리를 뜨지 못하게 만들었고, 머피가 했던 것처럼 그 역시 그 기이한 현상을 분석한 끝에 누군가가 보내온 신호임을 밝혀내게 된다.

 

이진법으로 확인해 보니 어딘가의 좌표였고, 그날 밤 차를 몰고 머피와 함께 그곳을 향해 무작정 달린다.  좌표가 표시된 곳은 망해가는 지구를 대신할 행성을 찾아 나서기 위한 NASA의 비밀 프로젝트가 수행되던 곳이다.  프로젝트 참여 제안을 뿌리치지 못한 쿠퍼는 머피의 극구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주로 향하는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기로 하는데...

 

 

이 영화 SF라기보다 드라마 장르로의 분류가 외려 적합해 보인다.  감독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인연은 광활한 우주 및 항성과 항성 사이의 엄청난 시공간을 뛰어넘는, 동양 철학으로부터 비롯됐음직한 그 무언가가 있음을 말하려는 듯싶다.  SF적 요소는 그러한 주제를 돕는 보조 역할만을 할 뿐이다. 

 

마치 현재의 과학기술로 실제 우주에서의 작업을 행하듯 제법 생생한 묘사는 영화의 완성도를 크게 높이고 있다.  발사 순간부터 연료통의 분리, 이윽고 대기권 밖에서의 우주적 고요함의 연출은 나사가 시도했던 유인 우주선의 발사 상황이 실제로 이렇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실감난다. 



아주 먼 미래에서나 가능할 법한, 아니 실은 만화에서나 가능할 법한, SF적 장르의 영화 속에서 흔히 봐오던 상상력이 동원된 기술에서 기반한 매우 안정되고 편안한 우주인들의 모습이 아닌, 헬멧과 우주복의 제대로 된 착용 없이는 단 한 순간조차 지낼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우주에서의 활동 공간이 이 영화에 고스란히 옮겨져 있다.  

 

쿠퍼의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특유의 몸 동작이 어디선가 분명 본 듯한 느낌이었는데, 후에 확인해 보니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서의 그였다.  그 영화에선 워낙 살을 빼고 등장했던 터라 쿠퍼가 그일 것이라 전혀 짐작 못했는데, 당시 그만의 독특한 동작을 떠올려 보니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만든다.  역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걸맞는 연기력이다.

 

 

우주 공간에서의 긴박감 넘치는 작업과 멸망해가는 지구 상황을 번갈아 비추며, 엄청난 시공간이 실은 종이 한 장 두께 차이일 것이란 사실을 웅장한 음향효과를 통해 암시하고 있다.  이성간 혹은 부모자식간의 사랑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광활한 물리적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우리에게 매우 소중하게 와닿는 인연이지만, 그에 반해 인간의 이기심은 지구 밖에서조차 여전하여 예상 외의 목숨을 건 암투가 벌어지곤 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부모는 자식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주면 그 역할을 다한 것이라는 쿠퍼와 머피간의 대사가 과연 유효한 것일까?  아이가 훌쩍 자라 성인이 된 이후엔 부모가 존재하든 그렇지 않든, 한 번 만들어진 인연은 광활한 우주의 시공간을 넘어 어떤 식으로든 닿기 마련인 걸까?

 

재미 여부를 떠나 영화적 완성도가 상당하다.  엄청난 공을 들였으리란 느낌이다.  3시간에 이르는 긴 러닝타임은 관람에 앞서 약간의 부담감을 느끼도록 하기에 충분하지만, 다행히 지루할 틈은 없다.  결론적으로 반나절 정도의 시간을 투자할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다만, SF 장르를 염두에 두고 감상한다면, 크게 실망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 영화에서의 SF는 단지 거들 뿐, SF적 볼거리로 승부를 건 영화가 아닌, 결국 인간애를 말하고자 했음이 틀림없기 때문일 테다.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 이미지 출처 : 다음(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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