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퓨리> 전쟁의 참상과 광기의 근원을 말하다

새 날 2014. 11. 20.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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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타이틀 'FURY'란, 다름아닌 다섯 명의 연합군 전사가 생사고락을 함께 해 온 탱크 포열에 쓰인 글귀다.  즉 탱크 이름이다.  이 탱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실전에 투입됐던 M4 '셔먼'이라 불리는 기종인데,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퓨리'는 실제 현역으로 활약했던 녀석이란 이유로 숱한 화제를 뿌리고 있다.

 

관람에 앞서 나의 최대 관심은 역시나 너무도 정형화되거나 뻔한 전쟁 영화들 틈바구니 속에서 이 영화만이 갖는 특징과 감독이 얘기하려 했던 건 과연 무엇일까 하는 점이었다.  주제는 여타의 전쟁 장르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국 전쟁의 참상과 그에 따른 인간성 상실의 아픔을 얘기하고자 했을 테다.

 

 

때는 바야흐로 2차 세계대전이 한창 막바지에 이른 지점, 다섯 명의 전사를 태운 전차 퓨리는 연합군 소속의 미군 일원으로서 독일 최전선에서 막중한 임무를 수행 중이다.  워 대디(브래드 피트)가 퓨리를 이끄는 대장이며, 어느날 동료 레드가 죽자 곧이어 새로운 신병 한 명이 퓨리에 배속된다.  다름아닌 노먼(로건 레먼)이었다. 

 

노먼은 입대한 지 불과 몇 주차에 지나지 않은 신출내기인 데다 총도 쏠 줄 모르는 행정병 출신이다.  그의 합류와 동시에 쉴 틈조차 없이 또 다른 임무가 그들에게 떨어지고, 노먼은 얼떨결에 전차 퓨리에 올라탄 채 소총수로서의 실전 임무에 배치되는데..

 

 

영화는 갓 입대한 범생이 같은 신출내기 행정병 노먼이 실제 전투에 투입되어 상대방을 죽이지 않을 경우 자신이 죽어야만 하는 살벌한 전투 현장을 몸소 겪으며, 점차 변모해가는 과정을 그려 나가고 있다.  잔혹하기 그지없는 데다 비이성적이기까지 한 전쟁의 참상을, 그의 눈과 성장해가는 노먼 자신의 모습을 통해 말하려는 듯싶다.



시체가 즐비한 전장 한 가운데에서 또 다른 시체들이 한 가득 실려오는 트럭을 바라보며 막연한 불안감에 쌓인 채 넋이 나간 노먼에겐 실전조차 실전으로 다가오지 못하는 상황이라 적을 향해 총부리를 겨눠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마저 놓치게 된다.  전쟁에 있어 단 한 차례의 실수는 곧 자신 내지 또 다른 이의 죽음을 의미한다.  결국 자신 때문에 동료의 죽음을 목도하게 된 그는 심한 자책감에 빠져들며 더욱 의기소침해진다.  이러한 노먼의 전쟁 초짜 티를 벗기기 위한 대장의 대처 방식은 가히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이어지는 전투 상황에서의 끔찍한 경험들은, 다른 이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노먼을 광기로 이끈다.  한 마을을 습격 후 대장과 우연히 빈집을 방문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만나게 된 한 처자와 애틋한 사랑을 나누게 된 노먼이다.  숫기조차 없는 범생이 노먼에게 그녀가 먼저 다가왔다.   

 

마냥 쑥스러워 하는 노먼과 피아노 치는 그에게 한 눈에 반한 그녀와의 관계를 묘사하며 영화에선 마치 아름다운 사랑이라도 이뤄진 양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행위를 과연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실상은 점령군이 점령 지역의 처자를 겁탈하는 행위가 비일비재한 상황에서 주인공의 시점으로 보기 좋게 포장한, 영화적 상상력이 빚어낸 산물일 테다.  전장에서의 사랑이란 또 다른 방식의 폭력 행위일 뿐, 피아를 떠나 결국 인간성 말살이란 처절한 아픔만을 남긴다.

 

노먼이 배속될 당시 베테랑인 대장이 그에게 신신당부한 사항 하나가 있다.  그게 누가 됐든 어느 누구에게도 정 따위 절대 주지 말라는 교훈이다.  노먼이 이후 겪게 될 충격적인 경험으로부터 대장의 당부가 왜 절실했던 것인지 여실히 증명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이상 잔인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해져갈 것이란 동료의 스치듯 던지던 말 한 도막이 노먼에겐 점차 또렷히 살아나는 순간이다.  그 역시 동료들의 죽음과 살벌한 교전 상황을 몸소 겪게 되며 나치에 대해 광적일 정도의 독기를 품게 된다.  처음엔 군인에게조차 총을 겨누지 못했던 그의 새가슴은 어느덧 아이이건 여자이건 노인이건 간에 적이라 간주되기만 하면 무수한 총알 세례를 퍼부으며, 동료들과 입버릇처럼 노래하던 '이 일은 정말 좋은 직업'이란 가삿말을 흥얼거리며 자위하는 경지에 이른다.  노먼의 성장이 곧 전쟁 참상의 정점이었던 셈이다.

 

 

퓨리와 같은 기종인 '셔먼'은 1942년도부터 전선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독일군의 중전차 '티거'를 상대하기 위해 무려 3대의 셔먼이 희생돼야 할 정도로 독일군 전차의 성능이 막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티거를 없애는데 3대 정도의 셔먼이 박살났던 영화 속 상황을 보니 어느 정도 역사적 고증이 제대로 반영된 느낌이긴 하다.

 

가장 궁금해할 사항 하나가 남았다.  다른 전쟁 영화와는 다른, 이 영화만의 차별화 포인트 말이다.  탱크를 이용한 실감나는 전투 장면이 압권이다.  퓨리 내부에서의 전투 장면과 또한 외부에서의 교전 모습 등이 제법 생생하게 와닿는다.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의 긴장감 유발 덕분에 두 시간을 훌쩍 넘는 러닝타임이 지루할 틈 없다.  

 

그러나 여전한 브래드 피트의 멋진 모습과 신예 로건 레먼의 참신함을 느끼기에 앞서 우린 참혹한 전쟁 앞에 한없이 무너져내리는 인간성 상실의 모습을 바라보며 일찌감치 질려야만 했다. 

 

 

감독  데이비드 에이어

 

* 이미지 출처 : 다음(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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