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의 날선 설렘

대구읍성의 흔적은 어디로 간 걸까?

새 날 2013. 3. 1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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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초는 계절적으로 겨울과 봄이 애매하게 걸쳐진 시기이기에 여전히 겨울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밖은 영하의 차가운 기온, 두꺼운 옷으로 칭칭 싸매고 다녀야 할 정도였지요. 대도시 대구, 이제껏 두세번 정도 가봤을까 싶을 정도로 낯선 곳, 아울러 대구 분들껜 죄송스런 말씀이지만 사실 제 기억 속엔 특별히 저장되어 있는 대구의 이미지가 별로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 거대한 도심 한 가운데에 우리 근대 역사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어요. 1922년 발표된 "동무생각"이란 가곡의 무대가 되었던 곳, 청라언덕에 가장 먼저 발길이 닿았습니다. 언덕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야트막한 곳이라 의아해 했었는데, 뒤쪽으로 가보니 제법 경사 급한 곳이 나타나더군요. 

 

 

대구 중심지에 읍성이 있었다더군요. 임진왜란 시기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축조된 성인데, 일제강점기인 1906년 친일 관료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허물어졌다는... 안타까운 건 그 당시 허물어진 이 대구읍성 유적들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사실.. 그런데 일부 흔적들은 바로 이곳 청라언덕에서 볼 수 있었어요. 대구읍성의 훼손을 안타까워하던 서양 선교사들이 청라언덕에 자신들이 직접 지은 건물의 주춧돌과 계단 등에 이 대구읍성에 쓰였던 축조물의 일부를 사용한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하는 걸까요.

 

 

당시 선교사들의 거처로 활용되었던 집의 형태가 아직 보존되고 있었습니다.

 

 

죽어서도 이곳에 묻히길 원했던 선교사들...

 

 

1919년 3월 1일 당시 이 거리에서도 만세운동이 벌어졌답니다. 

 

 

그래서 삼일만세거리로 불리고 있지요.

 

 

너른 잔디밭이 보이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밟고 다녀 지금은 들어가지 못하도록 보호조치가 취해져 있었어요.

 

 

대구하면 사과지요. 바로 이 나무가 지금처럼 대구를 사과로 유명하게 만든 장본인이라 하는군요. 지금은 병이 들어 보호수로 지정되어 관리를 받고 있는 처지이긴 하지만, 자식도 만들어 그 옆에서 함께 자라고 있었어요.

 

 

선교사의 집인데, 마찬가지 주춧돌 일부는 대구읍성의 축조물을 사용했다는...

 

 

등나무입니다. 갈등이란 단어가 바로 이 등나무와 칡넝쿨에서 비롯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감고 올라가는 성향 때문에 만들어진 단어라는..

 

 

근대의 서양식 건물들이라 나름 운치있어 뵙니다.

 

 

청라언덕 뒤쪽의 가파른 길을 내려오다 보면 길 건너편에 있는 성당 하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계산성당입니다.

 

 

한쪽엔 이 성당을 설계하고 직접 지휘한 프랑스의 로베르 신부 흉상이 모셔져 있군요.

 

 

웅장한 쌍탑이 눈길을 끕니다.

 

 

안의 모습은 더욱 장관이더군요. 100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했어요.

 

 

지은 죄가 많아 그런지 절로 숙연해지는...

 

 

성당의 옆모습입니다.

 

 

성당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길에 접어드니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시인 고택이 있었습니다.

 

 

위 이상화 시인과 나란히 붙어있는 사진은 부인되시는 분...

 

 

주변은 높은 아파트들이 에워 싸고 있었습니다. 묘한 대비를 이루는 듯...

 

 

바로 옆엔 국채보상운동을 펼쳤던 서상돈 선생의 고택도 있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없어 이곳은 패스합니다.

 

 

콧바람 넣어주기 위해 대구수목원에 들렀습니다. 하지만 을씨년스런 겨울바람만...

 

 

꽤나 넓고 잘 가꿔진 듯하지만, 역시 이런 곳은 신록이 우거진 계절이 제격일 듯하군요.

 

 

약간은 신비한 형태의 나무인지라.. 규화목이라 하는데, 땅속에 묻힌 나무 조직에 이산화규소가 침투하여 굳어진 화석이라 합니다. 만져보니 딱딱한 돌처럼 굳어졌더군요.

 

 

휑한 수목원을 뒤로 하고 서울로 향합니다. 내려올 땐 힘든 줄 몰랐었는데 올라가는 길은 차가 막혀 지루하기도 하고 힘도 들더군요. 아차 빠뜨릴 뻔한 건데, 계산성당은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결혼했던 곳이라 또 다른 유명세를 타고 있었어요. 당시 육군 중령이었던 박대통령이 이곳 계산성당에 주둔 중이었고, 때문에 카톨릭 신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 계산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었어요.

대구가 근현대사의 흔적을 이용한 관광상품화에 자신감이 붙은 모양입니다. 이 코스 외에 또 다른 코스를 개발 중에 있다더군요. 평소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이었기에 나름 흥미로웠던 여행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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