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안녕, 헤이즐> 부족하기에 더욱 간절했던 사랑

새 날 2014. 8. 13.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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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참 불공평하다.  적어도 아직 10대에 불과한 꽃다운 이팔청춘들에게 던져진 가혹하리 만치 잔인한 시한부 삶 앞에선 말이다.  아니다.  틀렸다.  삶은 참 공평하다.  온전하게 천수를 살아도 제대로된 사랑 한 번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반면, 비록 짧은 시한부 삶 속에서도 진정하며 영원한 사랑과 자아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헤이즐(쉐일린 우들리)은 13세에 이미 갑상선암 말기 진단을 받은 17세 소녀다.  다행히 당시에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암세포는 이미 폐까지 전이되어 인공 호흡기에 의지한 채 숨을 쉬어야만 하고 그나마도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때문에 그녀는 주변의 것들이 온통 심드렁하기만 하다.  우울증마저 앓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다 못한 엄마는 어느날 그녀를 암 환자 커뮤니티에 강제로 참석시킨다.  등 떠밀려 나온 헤이즐 앞엔 오만 종류의 암 환자들이 모여 앉아 자신의 고충을 털어 놓으며 희망 찾기를 시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헤이즐에겐 이마저도 시큰둥하다.

 

 

그러던 와중에 그녀 앞에 떡하니 나타난 백만불 짜리 미소를 간직한 매력남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어거스터스(앤설 에거트)였다.  물론 그도 암 환자 커뮤니티의 일원이다.  암세포로 인해 한쪽 다리의 무릎 아래를 절단하고 의족으로 생활하고 있는 그였지만, 정상인보다 외려 더 씩씩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갖춘 청년이었다.  헤이즐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런 어거스터스에게 빠져들기 시작한다.  물론 어거스터스 또한 마찬가지다.



헤이즐은 감명 깊게 읽었던 소설을 어거스터스와 함께 공유하며, 네덜란드에 살고 있을 작가를 한 번 만나는 게 소원이라고 고백한다.  어거스터스는 작가를 만날 수 있도록 물밑 작업을 통해 이를 주선하고, 사전 준비를 마친 뒤 헤이즐에게 암스테르담 여행에 함께할 것을 제안한다. 

 

 

헤이즐은 뛸 듯이 기뻤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산소통을 늘 끼고 살아야 하는 문제점과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의사와 가족은 그녀의 여행을 극구 만류한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여행이 성사되고 헤이즐과 어거스터스 그리고 헤이즐의 엄마 이 세사람은 드디어 암스테르담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는데..

 

언제나 해맑은 웃음과 재치있는 입담 그리고 때로는 허세마저 부릴 줄 아는 귀엽거나 의젓한 어거스터스, 그는 자신의 치명적인 몸 상태를 숨긴 채 헤이즐의 암 투병을 곁에서 도와주곤 해 누구보다 의연하고 긍정적일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그 역시 죽음 앞에선 어쩔 수 없었는가 보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그 앞에서 그는 헤이즐에 대한 위로를 잊지 않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하여 공포를 완전히 떨쳐내진 못하고 있었다.  이는 얼마전 관람했던 '그사람 추기경'에서의 김수환 추기경의 마지막 떠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 영화, 단순 로맨스가 아니었던 셈이다.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에 대한 깊은 울림을 우리에게 선사해 주노라 감히 표현하고 싶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건, 10대 청춘들의 시한부 삶, 사랑 그리고 죽음을 그려내고 있는 상황에서도 단순히 우리의 눈물샘만을 자극하는 신파극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없이 밝고 경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일례로 어거스터스는 생이 다하기 전 자신의 장례식 때 읽을 추도사를 헤이즐에게 미리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이 대목에서 웬만하면 관객들의 눈물을 짜내고 싶은 유혹이 생길 법도 한데, 슬픈 구석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담담하게 그려지고 있다.  장례를 치르는 건 죽은 자들을 위함이 아닌, 오로지 산 자들을 위한 의식이란 대사가 새삼 귓가를 맴돌게 한다.

 

 

천상병 시인은 우리의 삶을 소풍으로 비유한 바 있다.  잠시 잠깐의 소풍이었지만,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는 진정한 사랑을 얻었노라 이 세상에 자신있게 외치고 있다.  

 

시한부 삶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영원하며 빛나는 사랑을 나눌 수 있었던 그들이었기에 비록 불공평하게 주어진 삶인 듯하지만 때문에 난 외려 공평한 삶으로 종결지었노라 표현하고 싶다.  아울러 모든 것이 부족했기에 오히려 더욱 간절하게 다가왔던 사랑과 삶이었노라 말하고 싶기도 하다.

 

 

감독 조쉬 분

 

* 이미지 출처 : 다음(Daum) 영화 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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