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우린 왜 <명량>에 열광하는가?

새 날 2014. 8. 6.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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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는 다음과 같이 바뀌어야 할 듯싶다.  난세영웅(亂世英雄)이 아닌 난세영화(亂世映畵)로.. 

 

왜 아니겠는가?  영화 '명량'이 지난달 30일 개봉 이후 파죽지세의 기세로 내달리며 일주일만에 600만명을 가볍게 돌파했다.  개봉 첫날 68만명을 동원하며 역대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수립한 이래 최단 기간 600만명 돌파라는 대기록을 수립한 채 전무후무한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나 역시 이번 기록에 일조한 셈이 됐다.

 

 

때는 1597년으로 거슬러 올라 임진왜란 6년차, 조선은 왜구의 침략으로 인해 혼란이 극에 달해 있고, 서민들의 삶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최악의 상황이다.  반면, 왜구는 쉼없이 조선 정복을 꿈꾸며 한반도를 향해 무서운 기세로 진격해 들어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순신(최민식) 장군은 누명을 쓴 채 파면되어 고문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다 재차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다.  물론 당시의 후유증으로 인해 몸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뒤다.

 

 

그에게 남은 건 단 12척의 배, 그리고 거북선 한 척, 임금은 이러한 절망적인 현실 상황을 인식한 듯 이순신 장군에게 모든 휘하의 군인들과 함께 육군에 합류할 것을 종용하지만, 그는 바다의 포기는 결국 조선을 포기하는 것과 진배없노라 항변하며 끝끝내 수군을 사수한다. 

 

그러던 어느날 한 척만이 남은 거북선마저 불에 타버리는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고, 이를 간파한 왜구가 무려 300척이 넘는 배를 이끌며 명량해를 향해 총력전을 펼쳐 오는데...

 

 

출연진이 호화롭다.  왜군 수장과 해적 대장 역을 각각 맡아 색깔있는 연기력을 펼친 중견배우 조진웅과 류승룡을 비롯 기타 젊은 배우들의 연기력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적어도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나 맞지 않는 배역 때문에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이 영화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비장감 넘치는 이순신 장군의 연기는 최민식 그가 아니었더라면 결코 소화하기 쉽지 않은 역할이었을 테니, 결국 최민식의 무게감과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들의 찰떡 호흡이 맞아떨어지며 훌륭한 작품 하나가 탄생하게 된 게 아닐까 싶다.



어쩌면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 너무도 뻔한 역사적 사실을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시킨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테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 영화는 제법 잘 만들어진 셈이다.  해상에서의 전투씬이 쉽지 않았을 법한데, 이를 상당히 실감나면서도 긴장감 넘치게 연출하였으니 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비장감이 흐르는 극의 전개 특성상 정통 역사극으로 분류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듯싶다. 

 

다만, 두 시간 남짓의 상영시간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진 점은 옥에 티다.  줄일 수 있는 분량만큼 조금 축약해 긴장감을 더욱 높였더라면 보다 훌륭한 작품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면 오락적인 요소라곤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고, 시종일관 진지함만으로 가득한 이런 류의 영화가 어떻게 한국적 영화시장의 토대에서 이렇듯 신기록 행진을 거듭하며,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뜨릴 수 있었을까?  난 그게 너무 궁금했다.  과연 어떤 요소들이 이런 결과를 이끌어낸 것일까?

 

우린 가끔 영화를 통해 현실로부터의 일탈을 대신하기도 한다.  갑갑한 현실을 영화를 통해 잠시나마 벗어나 희열을 맛보고 싶은 열망 따위 말이다.  대한민국 사회의 현 주소는 그야말로 회색빛 일색이다.  칙칙함으로부터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나를 포함한 모두가 허우적거리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강하고 바르게 잡아줄 리더가 대한민국엔 존재하지 않는다.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가 없다.

 

 

리더십 부재 사회다.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인물 부재로 인해 이에 대한 갈증을 느껴오던 터, 이런 상황에서 진중하며 비장미가 돋보이는 '명량'이 주목을 받는 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  더군다나 세월호 참사 이래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는 정치권의 지리멸렬한 다툼과 책임 회피는 국민들을 충분히 지치게 만들었으며, 오로지 자신들 정파의 잇권에만 모든 역량을 집중한 채 선거에 임하고, 또 국민들을 기만하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정치에 환멸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른바 정치 실종이다.  미니총선이라 불린 7.30 재보궐선거에서의 낮은 투표율이 이를 극명하게 대변해 준다.  물론 각 정당들은 이마저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며 국민들은 아랑곳없이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만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양새다.

 

지도자인 대통령은 또 어떤가?  불통으로 일관한 채 사회적 갈등 해소와 통합엔 도무지 관심을 안 보이고 있고, 매 사안마다 유체이탈 화법을 통해 현실과 멀찌감치 떨어져 자신의 책임 따위 전혀 없노라며 남탓 신공만을 펼쳐 보이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며 책임자 처벌과 진상 규명을 약속했지만, 100일이 훌쩍 넘어선 현재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모르쇠로 일관하며 발뼘하기 바쁘다.  그 사이 세월호의 진상 규명은 산으로 가고 있다.

 

 

국민들은 이들에게 환멸을 느낀다.  국정최고책임자는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방기한 채 해외 순방길에 올라 패션쇼 펼치기에 바쁘고,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정서와는 상관없이 오롯이 자신들의 권력 유지와 이득에만 눈이 멀어 있다. 

 

국민 전체를 이끌어갈 진정한 리더십을 갖춘 인물은 던언컨대 현재 대한민국 하늘 아래엔 없다.  존경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적어도 국정 운영에 책임질 줄 알며, 자신들의 권리와 이익보다는 국민들의 권리를 먼저 헤아려줄 줄 아는 대통령 그리고 정치인들의 존재가 우리에게 절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비록 영화에 불과하지만, 백성이 존재해야 나라가 존재하고, 또 지도자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을 지닌 지도자가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며 스크린에서 등장하니, 현실 속에선 절대 존재할 수 없는 가상의 인물을 잠시나마 만나 심적 위안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그 누가 이를 마다하겠는가?

 

우린 이순신 장군의 국가와 백성에 대한 헌신적인 충성심을 바라보며 그에게 열광하고 또 무한 박수를 보낸다.  이쯤되면 영화의 재미나 완성도는 둘째 문제인 셈이다.  결론적으로 이순신과 같은 불세출의 영웅이 대한민국에 떡하니 나타나 현재의 어지럽고 힘든 세태를 보듬어주고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음 더 없이 좋겠다는 열망이 사람들을 자꾸만 자꾸만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도록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감독  김한민

 

* 이미지 출처 : 다음(Daum) 영화 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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