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프랜차이즈 거리제한 폐지, 경제적 약자는 어디로?

새 날 2014. 5. 22.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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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 위치한 대형 상권이야 두 말할 나위 없고, 심지어 도심 외곽의 조그만 상권에 위치한 점포들마저도 근래엔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에 가맹하지 않은 업소를 만나기란 무척 힘이 드는 일이 돼버렸다.  설사 개인이 운영하는 점포가 우연히 들어온다한들 몇 개월을 버티지 못한 채 다른 업종으로 바뀌기 일쑤다.

 

ⓒ연합뉴스

 

요새 자영업자들, 사방에서 먹고 살기 힘들다며 아우성이다.  대규모 기업들의 소매업 진출로 자영업자들이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쉽게 도태될 수밖에 없는 구조 탓이다.  프랜차이즈 업체의 도움을 받지 않을 시 브랜드 열세와 운영 노하우 부재로 인해 영업이 신통치 않은 경우가 허다하고, 상대적으로 영업이 잘되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경우 그 만큼 가맹본부에 기본적으로 뜯기는 비용이 많아 자신에게 돌아오는 몫은 그리 크지 않다.  결국 자신보다는 프랜차이즈 업체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자괴감마저 들게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더군다나 조금 잘 된다 싶으면 상 도의는 어디에 팔아먹은 것인지 한 블록 건너, 심지어 길 하나를 놓고 마주보는 위치에 같은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또 들어서며 최악의 경우 같은 브랜드의 가맹점주들끼리 경쟁을 하거나 나눠먹기 해야 하는 사례가 많아 가뜩이나 먹고 살기 힘든 경제적 약자들의 고혈을 자본들이 집중적으로 짜내고 있는 형국이다.

 

공정위, 프랜차이즈 신규 출점 제한 폐지

 

이렇듯 상권 보호에 취약한 가맹점주들의 피해가 속출하면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012년 이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관련 모범거래기준과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바 있다.  제과점 및 커피전문점 500m, 치킨 800m, 피자 1500m 등의 거리제한 규정을 두고, 그 안의 범위에 동일 브랜드 점포를 낼 수 없도록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특정 업종의 거래에 있어 약자를 배려하기 위한 차원에서 제시된 기준이며, 법적인 강제성은 없지만 그동안 경제적 약자의 권익 보호에 중요한 역할을 해오던 터다.

 

 

그러나 공정위가 해당 모범거래기준과 가이드라인을 제정한 지 불과 2년만인 올 3분기부터 이를 전면 폐지하기로 했단다.  박근혜 정부가 화두로 꺼내든 규제완화의 일환으로서 8월 시행예정인 개정 가맹거래법에 핵심 내용이 포괄돼 있기 때문에 해당 기준이 없어도 큰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프랜차이즈 업계가 크게 환영의 뜻을 표해온 건 너무도 당연한 결과일 테고, 문제는 기존 가맹점주들과 동네빵집 등 소상공인들일 텐데, 이들은 또 다시 무한경쟁으로 내몰리는 처지가 되지 않을까 하여 벌써부터 불안해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동반성장위원회 역시 지난해 2월 제과업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면서 대형 프랜차이즈 제과점의 경우 동네빵집에서 도보로 500m 이내에는 출점하지 못하도록 하는 권고안을 제시한 바 있는데, 공정위의 이번 폐지 조치로 인해 이와 충돌하는 형국이라 결국 이마저도 유명무실화되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를 낳게 한다.

 

아울러 한국휴게음식업중앙회가 추진하던 스타벅스, 카페베네 등의 대형 커피전문점들에 대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계획 또한 물거품이 될 전망이다.  박근혜 정부의 규제완화 기조에 그동안 두 차례의 신청이 모두 연기된 데다가 공정위의 이번 모범거래기준 폐지 발표 때문에 그 가능성이 더욱 낮아진 것이다.  결국 프랜차이즈 업체들만 신바람이 난 셈이다.

 

사회적 불평등 해소엔 인색한 프랜차이즈 기업들

 

그렇다면 규제완화라는 명목으로 공정위까지 나서 프랜차이즈 업체들의 기 살리기에 총대를 맨 상황에서 골목상권을 거의 싹쓸이하다시피하며 견조한 매출 성장세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이들 프랜차이즈 기업들, 과연 사회적 불평등 해소엔 어느 정도 기여를 하고 있을까. 

 

때마침 서울경제신문이 국내 대표 15개 프랜차이즈 기업들의 지난해 감사보고서를 분석하여 21일 그 결과를 내놓았는데, 우리의 기대를 크게 저버리는 수준이다.  매출이 수백억 내지 수천억원에 달하면서도 1억원 이상을 기부한 기업은 고작 4개사에 불과했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994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던 놀부는 기부금액이 5,071만원에 불과해 매출액 대비 0.05%, '원할머니보쌈' 등을 운영하는 원앤원은 659억원 매출에 4,204만원의 기부로 매출액 대비 0.06%에 머무르고 있었다.  가맹점주들로부터 막대한 이익을 취하며 급성장하고 있는 추세이지만, 정작 그에 따른 사회적 나눔엔 무척 인색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정부 경제적 약자 보호 등한시, 또다시 무한경쟁으로 내몰아

 

박근혜 정부가 규제완화를 내세운 명분은 일자리 창출을 통해 전국민에게 혜택을 고루 나눠주겠다는 것이다.  이번 공정위의 가맹점간 거리제한 기준 폐지 결정 또한 이러한 취지에서 나온 결과물일 테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이러한 규제완화가 모든 국민들에게 고른 혜택을 주고 있을까?  

 

ⓒ한겨레신문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았다.  기업들의 배만 불리고 있을 뿐, 전 국민에 대한 혜택으로까지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국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1975년에서 1997년까지 국민총소득 연평균 증가율은 8.9%, 가계소득의 연평균 증가율은 8.1%, 기업소득의 증가율은 8.2%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IMF 환란을 기점으로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던 2000년에서 2010년 사이 국민총소득 증가율은 3.4%, 가계소득 증가율은 2.4%, 기업소득 증가율은 16.4%로 변화한다. 

 

해당 기간동안 가계소득은 크게 낮아진 반면, 기업소득은 급증한 것이다.  무조건적인 기업 일변도의 규제완화가 어떠한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실제로 대다수의 국민들은 우리 경제가 지속적인 성장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지갑만은 외려 얇아지거나 더 이상 두꺼워지지 않아 가계 살림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점 노정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의 규제완화 기조는 여전히 기업의 이익만을 고려한 정책에 방점을 찍고 있는 모양새다.  이번 공정위의 거리제한 규정 폐지는 경제적 강자와 약자의 동반성장 및 상생이라는 기본 취지를 크게 훼손시키고 자칫 약자 보호 의무에 공백을 만들어 골목상권 자체를 붕괴시키고, 이들을 또 다시 자본과의 무한경쟁이라는 힘겨운 싸움터에 내몰아 악순환의 가속페달을 밟게 만드는 셈 아닌가 싶다.

 

박근혜 정부의 규제완화는 고사 위기에 처한 소상공인들의 그나마 남은 영역마저 모두 기업에게 몰아주겠다는 발상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앞서도 살펴봤듯 그동안 기업 위주의 규제완화는 국민들의 지갑을 가볍게 만들어온 반면 기업들의 배만 불리는 꼴이 돼왔다.  경제성장이란 허울에만 집착한 결과가 부른 참화다.  이를 알면서도 오히려 갑의 횡포를 막고 공정한 거래와 상생을 추구해야 할 공정위 및 동반위가 이를 등한시하는 것은 경제적 약자 보호라는 본래의 취지를 망각하는 일일 테다.

 

작금의 상황에서 올바른 방향의 규제완화가 이뤄지려면, 무엇보다 기업 부문에만 쏠림 현상을 보이고 있는 소득이 가계 부문에까지 고르게 확산될 수 있도록 하는 착한 정책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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