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반값등록금 내면 '미개한 국민'이 되는 건가요?

새 날 2014. 5. 21.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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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을 앞두고 진행된 토론회에서 비스 기본 요금이 얼마인지 아느냐는 질문에 당시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이 70원이라고 답해 많은 이들의 실소를 터뜨리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물론 이 에피소드는 지금도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를 거듭할 만큼 커다란 반향을 불러온 바 있다.  

 

ⓒ헤럴드경제

 

워낙 굴지의 자산가인 그에게 있어 평소 서민의 발이라 일컫는 시내버스를 이용할 일이 거의 없기에 벌어진 단순 해프닝이었을 테다.  물론 이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집권당의 당 대표를 하겠다며 나선 사람인데, 서민의 고충을 전혀 이해 못 하는 상황으로 비춰져 당시 세인들은 씁쓸한 입맛을 다지고 또 다져야만 했다.

 

그로부터 6년이란 시간의 흐름이 있었다.  제법 긴 시간이었고, 학습 효과도 분명 있었을 법한데,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정몽준 씨, 돈에 대한 관념은 여전히 일반 서민들의 그것을 훌쩍 뛰어넘는, 4차원 이상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었다. 

 

20일 숙명여대에서 열린 서울권 대학 언론 연합회 주최 간담회에 참석한 정몽준 후보, 반값등록금에 대한 질문에 대해 "취지는 이해하지만 최고 교육기관으로서의 대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떨어뜨리고 대학 졸업생에 대한 사회적 존경심을 훼손시킨다. 반값 등록금은 학생들 입장에선 부담이 줄어드니 좋겠지만, 우리나라 대학이 최고의 지성이라는데 '반값'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단다. 

 

이분의 돈에 대한 인식이 남다르다는 사실만은 확실히 인정해 주고 싶다.  재벌 2세라는 특수한 환경을 그저 드라마 같은 곳에서나 간접 경험해 본 일이 전부인 우리네에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상이 아닐 수 없다.  한 하늘 아래 살면서도 같은 사안을 놓고 이토록 서로 다른 인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정후보 막내아들 페이스북 캡쳐

 

한편으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과 국민 전체를 '미개한 국민'이라고 지칭했다가 물의를 빚었던 정 후보의 막내 아들이 19일 희생자 가족에게 피소를 당하는 일이 벌어지자 아버지인 그가 그만 정신줄을 놓아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그의 발언 중 반값등록금이 어째서 해당 대학의 사회적 인식을 떨어뜨릴 수 있는 거며, 해당 대학 졸업생에 대한 사회적 존경심마저 훼손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대학이 최고의 지성이자 교육기관이란 그의 표현은 분명 맞지만, 그렇다고 하여 대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등록금의 액수와 정비례하고, 더군다나 '반값'이란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그렇다면 명품의 경우 제값을 모두 치러야만 제대로된 명품일 테고, 같은 제품이라 해도 세일해서 구입한 경우 명품 반열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는, 그런 류의 인식인 셈인가?  아무리 자본이 다른 가치들을 앞서는 세상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 천박한 의식 아닌가?



학문에 대한 업적과 사회 기여 그리고 졸업생들의 사회 활동 등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진 형태가 일반적인 대학 평가의 기준일 테고, 거기에 등록금마저 저렴하다면 그야 말로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정 후보가 졸업한 서울대학교 역시 국내 최고라는 평가 뒤엔 엄연히 위에서 언급한 요소들이 모두 결합된 탓이 클 테다.  정 후보의 취지 대로라면 서울대학교의 사회적 인식은 벌써부터 하위권에서 맴돌아야 할 테고, 졸업생들은 전혀 존경을 받지 못 해야 할 텐데, 과연 그럴까?

 

아울러 '존경심'이란 타인의 인격이나 사상 그리고 행위 따위를 받들어 공경하는 마음을 일컫는다.  정 후보의 인식처럼 자산의 많고 적음이 한 사람의 인격이나 사상을 좌우할 수 있는 요소가 된다면, 그동안 사회적 존경을 받아온 인물 중 다수는 모두 엉터리였음이 틀림없을 테다. 

 

졸업한 학교의 등록금 수준을 기준으로 졸업생들의 평판을 삼는 사례는 이제껏 본 기억이 없다.  아울러 앞으로도 이런 사례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게 틀림없다.  물론 정몽준 후보만의 평가 방식에 따른, 그의 개인적 존경심을 드러낸 것이라면 혹여 모를까, 여기에 사회적 존경심이란 표현을 갖다 붙이기에는 아무래도 부적절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뉴시스

 

대학생들에게 있어 과도한 등록금 문제는 아직 사회 진출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지는 이미 치열한 삶의 한 양태이자 연장선이다.  오죽하면 대통령 공약으로까지 등장할 정도였겠는가.  이러한 등록금이 정 후보처럼 자산이 많아 평생 돈 걱정 한 번 해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있어선 껌값 수준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일반 서민들 입장에선 그야말로 허리가 절로 휘고 목이 조여올 만큼의 부담스러운 수준이 아닐 수 없다.  이쯤되면 흔히 사용하는 상대적 박탈감이란 표현마저도 사치로 여겨질 정도다.

 

정 후보의 의식 흐름 속엔 돈을 많이 내거나 쓸수록 존경심도 함께 커져가는가 보다.  '자산과 존경심의 정비례 법칙'이라도 개발해야 하는 게 아닐까?  때문에 정 후보의 인식과 그만의 법칙에 따르자면, 일반인들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자산가인 그이기에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그는 사회적 존경을 한 몸에 받을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춘 셈이다.  그의 비논리적인 언행 속에서 그러한 의식의 단면이 슬쩍 엿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반값 등록금을 낸다고 하여 우린 그들에게 '미개한 국민'이라며 절대 손가락질하거나 받지 않는다.  정 후보가 진정 서울시장이 되고 싶다면, 대중교통요금이나 장바구니 물가, 그리고 최저임금과 같은 형식적인 숫자만을 기계적으로 줄줄이 암기할 것이 아니라 돈에 대한 기본 관념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울러 정 후보 같은 분이 서울 시정을 떠맡게 되는 날엔 서울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자가 아닌 이유만으로 존경심(?)은 고사하고 자칫 미개인 내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을 것 같아 부쩍 불안해지는 게 보다 솔직한 속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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