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대국민담화, 책임은 인정하되 부담은 '해경'에게로

새 날 2014. 5. 20.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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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티저광고에 예고편까지 띄워가며 분위기 조성을 위해 온갖 심혈을 기울여온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19일 드디어 그 전모를 드러냈다.  지난달 29일 국무회의를 통해 이뤄진 어정쩡한 사과는 오히려 안 하니만 못할 만큼 혹평을 불러오자 또 다른 사과를 준비하고 있노라며 그동안 사과 리허설에, 본편의 예고편까지 진작부터 선보여왔던 터다.  얼마나 가슴 설레게(?) 했던 일인가.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 담화 발표

 

이날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정확히 34일째 되는 날이자 사전투표제를 감안할 때 6.4 지방선거로부터 대략 2주 남짓 남은 시점이기도 하다.  사전 홍보 덕분에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또한 대통령의 사과 수위가 과연 어느 정도가 될지, 국민들의 관심은 근래 보기 드물 만큼 폭발적이었다.  대통령의 인기가 급전직하를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토록 높은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다는 사실은 예사롭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서울신문

 

그렇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담화, 형식적인 측면에서 볼 때 대국민 사과로서의 모양새를 어느 정도 갖췄다고 볼 수 있겠다.  사과의 필요충분조건인 자신의 잘못과 책임을 분명하게 인정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개선 의지가 담겨 있어야 하는데, 일견 이러한 조건들을 두루 갖춘 듯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깨알 같았던 개선책에 대한 언급은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이미 많이 늦은 데다가 방식 또한 수 차례의 리허설 끝에 얻어진 결과라 영 마뜩지가 않다.  더군다나 충격요법이랍시고 들고 나온 '해경 헤체' 대목에선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세월호가 침몰할 즈음 해경의 초동 대처가 미흡해 오늘날의 참사로 이어진 부분은 엄연한 사실이고, 이를 철저하게 수사하여 죗값을 치르게 하거나 유사한 참사 예방을 위해 노력해야 함은 분명 맞는 말일 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해경 조직 자체를 날려버린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민간 기업이 특정 사업부문을 완전히 철수하면서 해당 부서를 없애는 경우는 봤지만, 사적 영역이 아닌, 공무를 담당해오던 조직을 통째로 날리겠다는 발상은 과연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해경 해체' 카드 과연 적절한가?

 

해경의 업무는 어떤 조직이 되었건 누군가는 떠맡아야 할 테고, 다른 조직이 별도로 만들어지거나 업무가 이관된다 해도 결국 기존 해경 조직에 몸담고 있던 조직원들이 새로운 부서로 옮겨가야 하는 게 수순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이 또한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게 아닌, 어차피 여러 술을 한데 섞어 새 부대에 담는 셈 아니겠는가.

 

ⓒJTBC 뉴스화면 캡쳐

 

세월호 참사는 해경이란 단일 조직만의 문제가 아닌, 이러한 조직들을 관리 운영하고 총체적인 책임을 부여받은 행정부에 있어 그들 내 만연된 무능과 부정부패가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이거늘, 이를 감추기 위한 해법으로 '해경 해체'라는 일종의 꼬리 자르기 신공을 선보이며 생뚱맞은 칼을 휘두른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싶다.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으로부터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공직 사회에 다소 간의 충격 요법이 될 수 있을지언정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님은 명백하다.

 

이는 마치 병의 원인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기보다 당장 눈에 보이는 대증요법을 이용한 치료 방식과 뭐가 다를까.  지금으로선 병을 완치한 것처럼 보이지만, 병의 근원을 없애지 못했기에 언제든 재발 가능하며, 그럴 경우 내성이 생겨 근본적인 치유가 갈수록 어려워지기 마련일 테다.

 

'해경 해체'라는 극약처방은 대통령의 문제 많던 평소 소통 방식을 여실히 드러낸 셈이기도 하다.  갈등이 발생할 때면 그의 원인을 찾아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 없이, 아예 갈등의 대상과 주체를 없애버리려는 행위와 진배없잖은가.  이는 세월호 참사 직후 일선 학교에 내려진 수학여행과 각종 체험학습 그리고 수련회 금지령이라는, 단순무식한 사고방식과 뭐가 다를까 싶다.



이로 인해 당장 해경 수험생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입게 됐다.  '해경'을 평생직장으로 여기며 꿈을 이루기 위해 준비해오던 지망생들은 집단 허탈감에 빠져들었다.  20일 치러질 예정이었던 실기시험이 무기 연기됐으며, 해경은 정부의 조직개편 방향이 잡히고 난 뒤 채용 일정 진행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혀 정부의 급작스런 결정이 해경 수험을 준비하던 취준생들에게 애꿎은 불똥으로 튀게 된 셈이다.  이렇듯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예단할 수 없는 정부를 과연 누가, 어떻게 신뢰할 수 있으며, 혹여 전형 일정 변경으로 인해 뒤틀리게 될지도 모르는 그들의 삶, 과연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하는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이 흘린 눈물의 의미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는 도중 눈물을 비쳤다.  집중 배치된 카메라가 이를 놓칠 리 없었으며, 줌인 기능을 통해 그녀의 눈물을 한껏 부각시킨 듯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직후 팽목항을 찾아 피해자 가족들과의 만남을 가졌을 때 보인 박 대통령의 그 차가웠던 모습과 남 탓만을 하며 엄벌하겠노라고 높인 목소리는 이미 그녀에 대한 이미지를 정확히 눈에 보이는 그 만큼의 수준으로 굳혀 놓은 지 오래다.  이후 국무회의에서 이뤄진 형식적인 사과와 조문 연출 논란마저 빚으며 그녀의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정성은 거의 없는 것이라 여겨져왔던 터다.  

 

대통령 눈물의 이면 - 침묵시위 중인 시민 연행하는 경찰

 

이런 상황에서 이뤄진 '대국민 담화', 그동안의 미흡했던 부분을 한꺼번에 만회할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를 맞이한 대통령, 이를 절대 놓칠 수 없었을 테다.  박 대통령의 이날 눈물이 진정 북받치는 감정에 의한 그것이었는지, 아니면 억지 연출에 의한 가짜 눈물이었는지는 본인이 아닌 이상 알 길이 없다. 

 

다만, 월요일 아침 TV 속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읊으며 분명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그 뒤에선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기 위해 침묵 행진하던 시민들을 향해 무자비한 공권력을 휘두르며 불법 연행토록 묵인하는, 냉혹하기 그지없는 이중적인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들은 도로를 막은 적도 없단다.  대통령의 눈물 뒤 숨겨진 진면목이 아닐까 싶다.

 

책임은 인정하되 정작 핵심 빠진 대국민담화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이 스스로에게 있다고 밝혔다.  책임을 인정하는 자세, 무척 바람직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그뿐이다.  이미 개혁의 대상이 된 대통령과 청와대가 자신들 스스로에 대한 개혁 없이 국가 개조의 주체가 되어 이를 논한다는 건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정작 '해경 해체'란 극적인 아이템을 통해 갈등 요소가 될 주체를 미연에 잘라버려 입막음과 희생양 삼기를 시도하고 있지만, 무능과 부정부패, 그리고 무책임의 주체이자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책임에 대해선 단 한 마디의 언급조차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친 대통령의 눈물은 결국 2주 앞으로 다가온 6.4 지방선거와 자신의 지지율 제고라는 정치적 셈법에 의한 고도의 전략이자 연출에서 비롯됐으리란 의심의 눈길을 거둘 수가 없게 한다.  여성 대통령의 눈물이라는, 이른바 '감성팔이' 기법을 동원, 그동안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크게 잃었던 대통령에 대한 신망을 한껏 끌어올리고 보수 지지층의 세몰이를 통한 결집을 꾀해 선거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함일 테다.  '선거의 여왕' 재림이라는 냉혹한 뒷계산이 깔려있는 셈이다.

 

결국 무한 책임을 져야 할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과 국정 컨트롤타워 청와대의 책임이 빠져있는 이번 대국민 담화는 단팥 빠진 찐빵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뤄진 대통령의 눈물은 눈물샘 자극을 통해 나온 화학적 결과물이 분명하기에 물리적으로는 촉촉했겠지만, 국민들의 아픈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진정성이란 습도 측면에선 턱없이 부족하여 무척이나 메마르게 와닿는 느낌이다.  게다가 여론이 좋지 않을 때면 늘 해외순방길에 오르던 예의 그 모습으로부터 전혀 달라지지 않은 대통령의 빤한 행태는 우리를 더욱 답답하게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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