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분통 터지게 하는 행정관청의 민원처리 실태

새 날 2014. 5. 16.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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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주택들이 밀집해 있는 조용한 우리 동네에, 해가 어스름해질 무렵부터 야심한 밤 늦은 시각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무리들이 있다.  나이트클럽 홍보 차량들이다.  눈부실 만큼 강한 조명시설로 꾸며진 대형 광고판을 두른 트럭 한 대가 맨 앞에서 진두 지휘를 하고, 그 뒤로는 지붕 위에 풍선기둥(?)의 홍보물을 단 소형차량들이 서너대 줄을 잇는 형태다.  물론 그냥 조용히 지나갈 리 없다.  볼륨을 최대한 올린 채 요란한 음악소리를 울리며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한 곳으로 모은다.  

 

 

유흥시설이 밀집한 유흥가나 유동인구가 많은 대도심 한가운데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그러려니 할 일이지만, 조용한 주택 밀집 지역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매일 같은 시각에 벌어지는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그나마도 조용히 지나간다면, 그 또한 다양한 홍보 방법 중 하나이겠거니 하며 눈 감아 줄 수도 있는 문제다.  하지만 조용하던 동네에 갑작스런 소음과 함께 등장하는 나이트클럽 광고차량은 분명 민폐이자 우리의 생활 환경을 크게 해치는 행위 중 하나임에 틀림없을 테다.

 

지난 4월초였다.  해당 건 때문에 120 다산콜센터로 전화를 걸었더니 구청으로 연결해 준다.  처음 연결된 부서는 소음을 담당하는 부서란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불편함을 호소했더니 자기들 소관이 아니라며 다른 부서로 전화를 돌린다.  그렇지, 떠넘기기가 단 한 차례라도 없다면 우리의 행정관청이 아닐 테지. 

 

이번에 전화를 받은 분은 업무 담당자가 아니란다.  담당자가 들어오면 연락을 직접 주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행히 얼마 되지 않아 전화가 걸려왔다.  또 다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다산콜센터로부터 시작하여 같은 설명만 벌써 네번째다.  입이 아플 지경이다.

 

불법이 맞단다.  불법광고물에 해당되기에 민원이 접수될 경우 확인하여 조치를 취하겠단다.  아울러 소음 부분은 자신들 관할이 아닌, 최초 전화를 받았던 부서가 맞다는 답변도 들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걸 민원인이 일일이 구분하여 따로 따로 민원 접수하라는 얘기인가?  더군다나 해당 부서는 벌써부터 자기들 소관이 아니라며 한 차례 떠넘기지 않았던가.

 

더 웃긴건 힘들게 설명하고 불법임이 확인되어 조치의 필요성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화로는 민원을 받을 수가 없단다.  무조건 기록에 남아야 처리할 수 있다며 또 다시 다산콜센터를 거쳐 신고하란다.  그래서 재차 다산콜센터에 연락하여 민원을 접수시켰다.  에고.. 정말이지 이런 형식주의, 이젠 신물이 난다.

 

 

이후 해당 민원 건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슬픔에 빠져있는 국면에서도 이들 나이트클럽 홍보 차량의 광고 활동은 여전한 게 아닌가.  하루도 빠짐없이 같은 시각이면 어김없이 이들 차량이 나타나 요란한 음악소리와 함께 집 주변의 도로 위를 지나간다.  순간 잊고 있었던 민원 접수 건이 떠올랐다.

 

다산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처리 여부를 확인했더니, 기록이 없단다.  원래는 해당 건의 경우 규정상 신고 접수 후 3일 이내에 민원인에게 결과 회신을 하게 돼있단다.  난 못 받았는 걸?  그래서 또 다시 구청으로 연결해 주는 다산콜센터..  이번에도 소음 관련부서가 전화를 받는다.  광고부서로 1차 떠넘기기가 시도되고, 이번에 전화를 받은 사람은 자신이 담당자가 아니라며 또 전화를 넘긴다.  세번째 받은 사람도 담당자가 아니라는 황당한 답변을 듣고 네번째 가서야 담당자와 직접 연결이 닿았다.

 

그 사이 난 똑같은 설명을 다섯 차례 해야만 했다.  다행히 최초 다산콜센터를 거쳐 제기한 민원 건이 접수돼 있단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이분들 이 건에 대한 처리 의지가 전혀 없었다.  자신들이 저녁에 출동해도 해당 차량들을 만날 확률이 거의 없단다.  민원 접수시 정확한 등장 위치와 시각까지 알려주었는데도?  그렇다면 그 시각 그 장소에 가서 확인해 보았느냐고 물었다.  자신들이 정해놓은 시간에만 움직인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랬다.  아울러 처리 결과를 알고 싶다면, 해당 광고 차량들이 자신들의 눈에 띠어 사진으로 찍히든 아니면 그렇지 않든 결과 정도는 알려 줄 수 있단다.  말인즉슨 형식적으로 사진 몇 장 찍어 광고차량들이 없다는 결과라도 보내주겠다는 말이다.  이 또한 지나친 형식주의가 낳은 산물이다.

 

그나마도 지금 전화상으로는 아무리 얘기해 봐야 기록에 남지 않기에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단다.  정 처리 결과를 알고 싶다면 다산콜센터에 다시 민원을 접수하란다.  그렇다면 재차 접수할 경우 어떻게 처리하겠냐고 물었더니, 기존 업무도 있고 해서 같은 방식으로밖에 못 하겠단다.  결국 해결 못 해주겠다는 의미다. -_-;; 

 

최초 신고했던 기록을 날려먹은 다산콜센터도 어이없는 일이지만, 구청의 민원 처리 자세는 분통을 터뜨리게 한다.  떠넘기기 관행이야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니 그럴 수 있다 치자.  그보다는 불법임이 확인된 상황에서도 민원인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의지가 전혀 없다는 점이 황당하다.  물론 인력 부족 등의 문제점들이 있을 수는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런 부분을 솔직히 인정하고 처리가 어렵다는 답변을 해주었어야 함이 옳지 않을까. 

 

민원을 처리해야 할 우리 행정 관청들의 무사안일한 행태는 여전하다.  최근 경기 지역 여고 교사들이 제자들과 수차례 성관계를 맺어 왔다는 사실 때문에 충격을 던져주었던 사건만 해도 피해 학생들이 애초 청소년상담복지센터와 논의를 거쳐 해당 학교장에게 관련 사실을 통보했지만, 학교 측에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단다. 

 

 

그래서 이번엔 총동문회가 나섰다.  학교를 찾아가 해당 교사에 대한 처분을 요구하고, 국민권익위의 국민신문고,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도움을 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하였으나 해당 관청들이 모두 교육청이나 경찰서로 재차 떠넘기기만 했을 뿐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그 와중에 인권위는 "피해자가 누군지 알아낼 수도 없고 인권위가 해결할 사항도 아니므로 학교를 찾아가서 해결하라"는 형식적인 답변으로 일관하여 이를 진정했던 이들 모두를 분통 터지게 만들었단다. 

 

 

자신의 권리가 침해를 받았거나 기타 고충이 있다면 누구든지 정부에 민원을 제기하고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  창구는 무척 다양하다.  그중 대표적인 경우가 국민권익위의 국민신문고이며, 그밖에 인권위, 다산콜센터, 그리고 각급 행정관청의 민원실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들을 이용해 본 대개의 민원인들은 하나 같이 민원 해결은커녕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행태에 그만 분통을 터뜨리고 만다.  국민과 민원인의 눈높이에 맞춘 편익 제공보다는 그저 행정 편의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비정상화의 정상화' '규제 개혁' '국가 개조'라는 화두를 꺼내든 박근혜 정부다.  그러나 중앙에서 아무리 개혁을 외치고 제도를 바꿔가며 변화를 꾀하려 노력해도, 언제나 그렇듯 우리 공직사회의 복지부동과 무사안일이라는 기본 자세는 절대 바뀌지 않은 채 그대로다. 

 

이번 불법광고물 민원 건을 접수시키며 처리되는 일련의 과정을 몸소 체험해 보니, 흡사 우리나라 공직사회의 썩은 단면을 그대로 보고 있는 듯하여 못내 씁쓸하다.  오늘도 이들의 방조 아닌 방조 덕분에 나이트클럽의 불법 홍보 차량은 음악을 쿵쾅거리며 도로 위를 활개치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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