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신직업 육성 계획.. 정작 우려스러운 것은?

새 날 2014. 3. 19.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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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는 18일 국무회의에서 40여 개의 새로운 직업을 육성하고 이를 지원하기로 한 '신직업 육성 추진 계획'을 발표하고, 민간 부문에서 자생적으로 신직업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도록 각종 법과 제도를 구축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정부가 언급한 신직업이란, 사립탐정, 매매주택연출가, 노년플래너, 이혼 상담사, 전직 지원 전문가, 사이버 평판관리자 등으로서 그 명칭조차 낯선 직업 40여개를, 외국의 사례를 토대로 발굴하여 새로 육성키로 한 것입니다.

 

ⓒ연합뉴스

 

가뜩이나 꽁꽁 얼어붙은 취업시장인지라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 신규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데에 있어 이를 마다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외국의 사례를 토대로 만들어진 데다가 대부분이 아직 국내에선 그 이름조차 생소한 직업들이기에 과연 그에 따르는 수요가 창출될 수 있을런지의 여부가 사실 상당히 걱정스럽긴 합니다.  물론 전세계 10위권에 해당하는 대한민국의 경제적 볼륨을 고려해볼 때 어쩌면 이러한 염려는 애초부터 기우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지만 몇몇 직업에 대해선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새나오고 있는 게 현실이기도 합니다.  특히 민간조사원이라 불리는 사립탐정의 경우 국내 도입을 놓고 의견이 찬반으로 갈리며 논란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현재도 암암리에 성행하고 있는 심부름센터나 흥신소에 의해 불법행위가 판을 치고 있는 마당에 이를 합법화했다가는 자칫 더 많은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판단에서입니다.

 

그러나 정작 우려스러운 부분은 따로 있었습니다.  낯선 직업 몇 종의 명칭을 보니 조건반사와도 같이 대뜸 관련 자격증이 연상되는 것이었습니다.  왜일까요?  일종의 학습효과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유망직종들이 거들먹거려져왔고, 또 그와 관련한 무수한 자격증이 양산돼왔습니다.

 

가뜩이나 의미없는 자격증들로 인해 자격증 관련 시장은 이른바 '혼돈' 속에 놓여져있는 양상이기도 한데, 신직업과 관련한 각종 자격증이 또 다시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지게 된다면, 작금의 혼돈에 혼란까지 가중시키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바로 그러한 연유 때문입니다. 

 

 

정부가 이번 계획과 관련하여 지난해 7월 100여개의 신직업 육성 방안을 발표하자마자 발빠른 관련 업체들은 벌써부터 떠오르는 직업이라며 아직은 형체도 불분명한 신직업을 마치 정부에서 추천하는 유망직종인 양 홍보하고 있었습니다.  

 

자격증 역시 이러한 과정 중 자연스레 탄생하게 될 텐데요.  새로이 떠오르는 유망직종에 취업을 하려면 반드시 관련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거나 100% 취업 보장이란 달콤한 유혹으로 가뜩이나 취업이 안 돼 미래가 불안한 청년층이나 중장년충들의 마음을 훔쳐갈 게 뻔합니다.  우린 그동안 이러한 사례들을 무수히 경험하거나 봐왔으니까요.



수많은 업체가 너도 나도 자격증 발급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자격증 시험에 따르는 응시료 뿐 아니라 이를 공부시키는 학원 등을 직접 운영하거나 자격증 대비 교재를 팔아 수입을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격증이 일종의 고수익 부가산업이 된 셈이니, 주객이 전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이렇듯 자격증 시장이 혼탁하게 된 데엔 2008년 도입된 민간자격 등록제도 탓이 큽니다.  이 제도는 애초 해당업계의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는데요.  자격기본법에서 정한 결격사유와 금지분야에 해당되지 않으면 누구나 자격증을 신설해 등록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흡사 '자격증 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무척이나 다양한 종류의 자격증이 존재합니다.  취업준비생들은 그들 나름의 불안한 미래에 대비하는 방식 중 하나로 일종의 스펙 쌓기인 자격증 따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초등학생들마저 벌써부터 각종 자격증 취득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정을 누구보다 꿰뚫고 있을 관련 업체들, 너도나도 자격증 신설에 열심입니다.  현재 등록된 민간 자격증 수는 6천 7백개입니다.  지난해에만 2천 8백개가 새로 생겼으며, 2009년 천개에 불과했던 자격증이 4년 사이 무려 6배나 급증한 것입니다. 

 

 

하지만 직무 요건에 필요충분 조건인 일부 국가자격증과 민간자격증을 제외하고선 대부분의 자격증들이 실은 실무 현장에서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유명무실하다는 얘기입니다.  국가자격증조차도 이럴진대 민간자격증이야 두 말 하면 입만 아픈 결과일 테지요.  수 천종에 달하는 자격증 대부분이 취득을 하더라도 실제 현장에서 활용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때문에 자격증에 대한 효용성이 크게 떨어져 그나마 취업 시 인정을 해주던 자격증마저 취업시장으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실정이기도 합니다.  넘쳐나는 자격증, 너도나도 취득하다보니 이젠 경쟁력이 사라진 탓입니다.  결과적으로 쓸모없는 자격증 취득으로 인해 귀한 시간과 돈만 허비하게 되는 셈입니다.

 

민간자격증을 이용한 사기 행각도 두드러집니다.  늘어나는 자격증의 수만큼 이와 관련한 소비자 피해가 급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이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08~2012년) 민간 자격증과 관련한 소비자 상담 건수가 7926건에 달했습니다. 

 

향후 유망 직종이 될 것처럼 그럴싸하게 홍보하여 100% 취업을 보장한다는 홍보 문구 등은 이제 애교로 보일 정도입니다.  각종 감언이설로 자격증을 만들 수 없는 분야마저도 버젓이 자격증을 내놓아 일반인을 현혹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취업에 목말라 하는 이들의 절박한 심정을 역이용한 얄팍한 상술이자 범죄 행위가 아닐 수 없는데요.  누구나 자격증을 만들 수 있는 점 때문에 양적으로 급격한 팽창이 이뤄졌고, 반면 그에 걸맞는 질적 성장은 이뤄지지 않아 각종 소비자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는 자격증에 따른 소비자 피해와 질적 저하를 우려해 2012년 민간 자격 관리 감독 강화를 골자로 한 자격기본법을 개정한 바 있지만, 이러한 정부의 뒷북 수습이 우습다는 듯 그 해에만 새로 생긴 민간 자격증이 2천개가 넘습니다.  이쯤되면 백약이 무효인 상황인데요.  등록 자격증이 너무 많다보니 정부가 사실상 관리에 손을 놓고 있는 셈입니다.  이렇듯 사후관리가 미흡하다 보니 자격증과 관련한 각종 사기범죄는 자격증의 수에 비례하여 해마다 늘어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현재도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자격증 제도를 그대로 방치한 채 새로운 유망 직업이랍시고 아직 검증되지도 않은 직업을 정부가 정책적으로 밀어붙였다간 새로운 일자리의 창출은 고사하고, 이제껏 무수한 유망직업의 사례에서 봐왔듯 무늬만 존재하는, 순전히 허울 뿐인 엉터리 신직업만 대량으로 양산할 공산이 큽니다.  아울러 이러한 신직업은 하이에나들처럼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을, 자격증에 따른 부수적인 이득만을 노리는 업체들의, 자칫 새로운 먹잇감으로 전락할 개연성마저 다분합니다.  

 

창조경제?  매우 좋습니다.  물론 외국의 좋은 사례 도입 또한 창조경제의 한 축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보았듯 기존 인프라가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마구잡이식 신규 정책 도입은 자칫 커다란 부작용을 양산할 개연성이 농후합니다.  신직업 육성 추진 계획을 본격 시행함에 앞서 정부가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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