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빛바랜 이부진 선행, 그럼에도 칭찬해야 할 이유

새 날 2014. 3. 20.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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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신라 이부진 사장이 지난달 신라호텔 출입문을 들이받은 사고로 인해 4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변상 처지에 내몰린 한 80대 택시기사의 의무를 면제해 준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를 모으고 있다. 

 

ⓒ서울신문

 

우선 이번 선행이 화제가 될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4억원이란 거액의 가치가 갖는 속물적 느낌 탓이 클 것 같다.  아울러 한국 사회에서 시장 지배적 지위에 위치해 있으며 승자독식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삼성이기에 뭘 해도 미운털이 박혀있는 상황이거늘, 때문에 모처럼의 선행 소식으로 세간의 뜨거운 관심이 유발되는 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도 아니라면 지난해 아들의 영훈국제중학교 편법 입학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이부진 사장의 오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행동에 비해 도드라져보이는 그녀의 도덕적 우위 때문? 



하지만 정작 그런 이유들 때문만은 결코 아닌 것 같다.  물론 재벌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선이 평소 곱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고, 이런 상황에서 뜻밖의 선행 소식이 유독 귀에 쏙 들어온 탓이 크겠지만, 그보다는 이번 선행을 '삼성 띄우기'의 기회로 작심한 듯 지나친 극찬 일색의 보도 경쟁을 벌인 언론들 행태 때문이라 여기고 싶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구절에서 보듯 선행이란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행해져야 참 의미가 있을 법 하거늘, 우리 언론들의 오지랖은 태평양만큼 넓기만 하다.  삼성이란 기업에 대해 기사를 잘 써주지 않으면 안 될 모종의 돈독한 관계라도 형성되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물론 그런 일 따위 우리 사회에선 절대 없으리라 생각하고 싶다.

 

 

 

사실만을 기술해도 충분하고도 넘칠 내용을, 언론들은 무척 우호적이면서 상세히, 게다가 각종 미사여구까지 총 동원하여 묘사하고 있었다.  기사 작성의 기본 원칙을 벗어나도 단단히 벗어난 셈이다.  아울러 삼성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에 있어 이번 건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긴 탓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또 다른 선행을 끄집어낸 기사부터 이부진 씨의 결혼과 관련된 이야기들까지, 일개 개인사를 미주알고주알 자세히도 전하고 있었다.  제대로된 포장이다.

 

때문에 이번 선행은 삼성이 이미지 마케팅 비용 4억원을 지출한 것과 진배없으며, 오히려 그 이상의 효과를 누렸으리란 관측마저 가능해진다.  일종의 비아냥일 수도 있겠지만, 워낙에 일부 언론들의 행태가 도를 넘어선 것이기에 일견 맞는 표현 같기도 해보인다.  택시기사의 형편상 어차피 받을 수 없는 돈에 대한 생색내기일 뿐, 선행을 염두에 두기보단 삼성이나 택시기사 모두에게 있어 윈윈이란 결과를 바라보고 한 지극히 계산적인 행동이란 생각에까지 미칠 수도 있겠지 싶다. 

 

그러나 비록 삼성이란 기업이 이부진 사장의 선행을 기업 이미지 개선이나 마케팅 용도로 활용했을지언정, 아울러 최악의 경우 어차피 못 받게 될 돈 생색내기한 셈 쳐도, 그런 부분까지 우리가 고려해야 할 이유나 필요성은 물론 없다.  다만, 이부진 사장의 선행 자체는 아무리 재벌가라 하더라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음엔 틀림없으며, 목적과 수단을 위한 도구화의 여부를 떠나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신호를 불러온 것만은 분명할 테니 말이다.

 

 

이번 선행 한 건으로 일부 언론들이 작심하며 '삼성 띄우기'에 나서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삼성을 비롯 재벌에 대한 이미지가 급작스레 호전될지의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번 선행이 재벌기업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기보다 이부진 씨 개인을 향한 호감도 상승의 시각이 맞을 것 같고, 또한 그런 그녀를 칭찬해주고 싶을 뿐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제껏 보여온 재벌의 행태가 비록 괘씸하고 못마땅하더라도 잘한 건 잘한 일이라고 칭찬하는 데에 있어 인색할 필요는 졀대 없다.

 

단 한 건의 선행이 '노블리스 오블리제'란 매우 고상한 용어로 포장되고 있을 정도이니, 삼성의 좋지 않은 이미지에 대해 일부 언론들이 대대적인 물타기 공작에 나선 것처럼 보이는 건 인지상정이다.  과연 이번 선행이 노블리스 오블리제란 극찬까지 이끌어낼 만큼 도덕적 의무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아니 많이 과장된 것만은 틀림없다.  때문에 언론의 호들갑으로 인해 외려 이부진 씨의 선행에 따른 호의가 반감되며 빛이 바래가는 느낌 지울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결정이 자칫 파탄날 뻔한 한 사람의 삶을 구제한 것임엔 틀림없고, 이런 훈훈한 선행이 가뜩이나 팍팍한 우리 사회에 작은 온기나마 불어넣는 결과가 될 수 있기에 충분히 칭찬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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