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사교육비 최고, 학업성취도는 최하'가 지닌 함정

새 날 2014. 3. 18.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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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역 일반고 학생들이 다른 시도에 비해 사교육을 많이 받고 있는 편이지만, 학업성취도는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는 민주당 신학용 의원이 17일 교육부의 2013년 전국 초중고교별 과목당 사교육비 지출 현황과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자료를 분석한 데 따른 결과입니다.

 

ⓒ세계일보

 

분석된 자료를 살펴보게 되면, 투입된 비용에 비해 실제로 서울의 학업 성취도는 별로 신통치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고교 2학년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서울은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42만 7천원으로 가장 높았지만, 기초 학력 미달 학생 비율 역시 가장 높게 나타난 때문입니다.  많은 비용이 투자된 만큼 기초 학력 미달 학생이 상대적으로 적어야 정상일 듯한데, 전혀 그렇지 못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반면, 사교육 비용이 17만 1천원에 불과한 충북은 오히려 기초 학력 미달 학생 비율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충북은 학업성취도평가에서 5년째 전국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를 두고 자료를 분석한 신 의원 측은 가장 많은 사교육비를 투입하고도 전국 최하위의 저조한 성적인 서울의 결과에 빗대 충북의 좋은 성과는 올바른 공교육의 영향이란 나름의 결론을 내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이번 분석에서 의도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부분 몇가지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 이는 자칫 치명적인 오류일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어떻게든 사교육의 효과가 없다라는 것을 증명해내야 할 테니까요.  우선 이번 분석이 지역별로 학업성취도평가에 대한 비중을 달리 두고 있으며, 따라서 이에 대비하는 수준 역시 천차만별이란 부분을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알다시피 학업성취도 평가 등의 일제고사가 성적 별로 학교를 줄세우기 위한 시험 내지 성적 향상을 위해 학생들에게 주입식 교육을 오히려 심화시킬 것이라는 비판이 일며 찬반이 팽팽히 맞서왔던 게 우리 교육계의 현실입니다.  여기엔 시도교육감의 정치적 성향도 한 몫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향 탓인지 대도시, 특히 수도권으로 갈수록 일제고사 시험 대비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서울 일반고의 경우 학업성취도 평가가 이뤄질 때면 3분의 2 이상의 학생들이 누워 자거나 다른 짓을 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5년째 전국 1위를 하고 있는 충북 지역은 달랐습니다.  각급 학교의 학교장을 중심으로 별도의 시험 대비팀을 꾸려가며 교사와 학부모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지역사회의 아낌없는 지원이 바탕이 되고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학업성취도평가 1위는 온 도민의 올인에 의한 성과물로 봐야 함이 옳을 것 같습니다.

 

지역사회의 이러한 분위기는 엉뚱한 부작용을 낳기도 합니다.  지난해 청주의 한 교사가 학업성취도 평가 시험 감독 과정에서 성적이 좋은 학생이 적은 답을 다른 학생들에게 알려주어 부정행위를 한 혐의가 들통난 것입니다.  때문에 충북은 교육청의 지나친 학업성취도 평가 집착이 결국 이러한 부정행위까지 눈감게 한 것 아니냐는 비아냥을 감수해야 할 처지에 내몰리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수년째 이어져온 전국 1위의 기록마저 무색케 할 지경입니다.

 

이렇듯 지역별로 시험을 대하는 분위기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기초 학력 미달 학생 비율을 단순 비교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어떤 지역은 모든 지역민들이 올인하여 매달리다시피 준비해와 시험에 임하고, 또 어떤 지역은 별 대수롭지 않은 시험으로 간주, 시험시간에 잠을 청하거나 엉뚱한 짓을 일삼는 상황에서 과연 제대로된 비교가 가당키나 할까요?  이는 마치 100미터 달리기 경주에서 어느 한 사람은 전력질주를 하고 있으나, 또 다른 사람들은 걷거나 쉬엄쉬엄 뛰어가는 형국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대목에서 우리는 오히려 다른 부분을 눈여겨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학교알리미가 공개한 '2013년 고2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서울지역에서 학업성취도 평가가 상위 20위권 내에 든 학교는 대부분 특목고와 자사고 일색이었고, 일반고는 1곳뿐인 것으로 집계된 것입니다.

 

ⓒ연합뉴스

 

이는 무얼 의미하는 걸까요?  소위 특목고나 자사고의 성적이 월등히 앞서고 있다는 건 그 만큼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이들은 특수목적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일반고에 진학한 아이들에 비해 평소 월등히 많은 사교육을 받아왔을 테고, 입학한 이후로도 특별히 더 사교육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의 절반 이상이 이러한 특수목적고 진학을 염두에 둔 것이란 건 이미 주지의 사실이니까요.

 

ⓒ세계일보

 

이와 관련한 또 다른 통계 하나를 살펴보겠습니다.  서울연구원의 '서울 교육복지 기본계획 수립연구'에 의해 보고된 서울지역 가구당 사교육비 월평균 지출표인데요.  이에 따르면 이른바 강남권에 해당하는 지역(동남권 : 서초 강남 송파 강동)이 81만 9천원으로, 가장 낮은 지역(서북권 : 은평 서대문 마포)의 43만 7천원보다 두배 가까이 많았습니다.  같은 서울임에도 불구하고 편차가 제법 크게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교육비의 차이는 고스란히 앞서 살펴보았던 특목고 등의 고등학교 입시뿐 아니라 대입 결과로도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2013학년도 서울대 정시모집 합격자를 서울 지역 일반고등학교만으로 국한시켜 놓고 봤을 때 강남 서초 송파구 등 강남3구 출신이 70%를 차지하고 있으며, 양천과 노원까지 포함할 경우 80%를 넘어서는 놀라운 결과가 이러한 현상을 극명하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사교육의 영향이 미미하다고 확언할 수 있을까요?  아울러 여러 조건과 변수들을 대입시켜 볼 때 단순히 학업성취도평가 결과 상대적으로 좋은 성적이 나온 것만으로 '공교육의 효과가 크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공교육을 살려야 한다는 취지엔 공감합니다.  그러나 엄연히 공교육과 함께 우리의 교육을 이끌어오며 그 존재감이 사뭇 남다른 사교육에 대해 투입 대비 전혀 효과가 없다라는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함인 듯한 이러한 억지 분석은 실제 현실 속에서 교육 주체들이 직접 체득하고 있는 상황과는 거리가 너무 먼 듯하여 오히려 씁쓸하기만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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