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2차 유출'보다 더 괘씸한 정부의 '괴담' 규정

새 날 2014. 3. 17.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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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철도노조 파업과 관련하여 박근혜 대통령은 SNS 등을 통해 퍼져 나가는 잘못된 유언비어를 바로잡지 않으면 국민들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리게 할 것이라며 이에 적극 대응하기 위한 'SNS 괴담 대응팀' 운영을 시사한 바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박 대통령의 이러한 시대 착오적인 엄포는 결코 허튼 소리가 아니었다.  (여담이지만, 박 대통령은 공약 같은 건 잘도 깨면서 이런 약속은 신기할 정도로 지키는 경향이 있다) 

 

카드사 개인정보 2차 유출 우려를 '괴담'으로 지목한 정부

 

16일 민주당 강기정 의원이 금융위로부터 받아 확인한 대외비 문건에 따르면 'SNS 괴담 전담팀'이 실제 정부 내에서 운영돼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어이없게도 지난 1월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대란 이후 2차 피해를 걱정하던 국민들의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 교묘한 방식으로 여론을 조작해 온 사실이 들통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정부는 세 가지의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다. 

 

첫째,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추가 정보 유출의 개연성이 큰 상황에서도 국민들에게 무조건 안심하라며 추가 유출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사실이다.

 

둘째, 카드 3사에서 고객정보 수천만 건이 추가 유출됐고, 대출중개업자가 이 정보를 시중에 유통시켰다는 사실을 금융 당국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 시점까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해왔다는 부분이다. 

 

셋째, 2차 유출 피해에 대해 한껏 걱정을 토로하던 국민을 향해 '괴담'을 유포한다며 SNS 대응 전담팀을 꾸려 이에 적극 개입하고 여론을 호도하려 했던 점이다.

 

그렇다면 'SNS 괴담 대응팀' 운영이 비단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건에만 국한됐을까?  물론 그렇지 않을 테다.  수면 위로 드러난 부분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테니, 대통령이 공언한 대로 정부와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거나 정부의 정책을 관철시켜야 하는 영역이라면 그 종류 여하를 불문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해왔을 정황이 짙다. 

 

불안해하지 말라더니 2차 유출 피해에 'SNS 대응 전담팀' 운영까지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대란 이후 전혀 불안해하지 말라던 정부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실제 2차 유출 사태가 눈앞에서 벌어졌다.  결코 우스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에서 자꾸만 웃음이 나오려 한다.  왜일까?  아마도 정부와 금융당국의 행태가 너무도 어이없어 그럴 듯싶다. 

 

ⓒ매일경제

 

이래나 저래나 정부는 절대 면목이 설 수 없는 입장이다.  우리를 더욱 당황스럽게 한 건, 실제 발생한 2차 유출 피해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 섞인 시선을 막연히 근거없는 '괴담'으로 규정한 채 온라인 매체와 SNS에 개입하여 이의 차단을 위해 적극 대응해 왔다는 부분이다.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과연 2차 개인정보 유출 피해 가능성을 우려한 국민들이 잘못한 것일까, 아니면 2차 피해는 절대 없을 것이라며 전혀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던 정부의 호언장담이 잘못된 것일까?  아울러 허술한 정부의 정책과 금융기관들의 업무 과실로 인해 유출된 대규모의 개인정보가 국민들을 더 불안하게 만들까, 아니면 인터넷 상에서 SNS 등을 이용하여 이러한 불안감을 토로하는 행위가 국민들을 더 불안하게 만들까?



답은 너무도 뻔하지 않은가?  정부는 왜 국민들이 자신의 개인정보를 유출시킨 사실에 대해 불안감을 호소하는 것조차 '괴담' 운운하며 이를 통제하려드는 것일까.  도대체 뭐가 두려워서?  SNS는 온라인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소통 도구로서 이미 시장에서 확고히 자리를 잡아 대중들에게 검증된 매체다.  때문에 이에 대해 대응하겠노라는 애초의 발상은 국민들의 입과 손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취지와 진배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아울러 괴담 확산을 빌미로 시작된 SNS 통제와 여론몰이는 궁극적으로 18대 대선에서 그 정황이 드러났던 선거 개입과 같은 파렴치한 행위나 민간인 사찰과 같은 범죄로까지 이어질 개연성이 다분하다.  대한민국이란 나라, 과연 표현의 자유와 같은 국민의 기본권이 보장된 국가가 맞긴 한 걸까?

 

인터넷 통제 사회가 그려내는 살풍경

 

ⓒ연합뉴스

 

최근 터키와 베네수엘라에서 발생한 대규모 소요 사태는 정부의 지나친 인터넷 검열과 통제에 따른 반발 성격이 짙다.  베네수엘라에서의 시위는 정부가 트위터의 이미지를 차단한 사실이 알려져 이에 반발하는 시민과 학생들이 거리에 나서며 시작되었고, 터키에서의 시위 역시 법원 명령 없이 특정 콘텐츠 삭제가 가능해지는 등의 인터넷 통제 강화법안이 통과되자 이에 반발하는 시민들이 대통령의 승인 절차를 막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며 시작됐다.

 

이와는 약간의 거리가 있겠지만, 미국 역시 자신들이 관리해오던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를 최근 민간에 이양키로 했단다.  이는 미 국가안보국(NSA)의 광범위한 인터넷 감시 행위가 폭로된 이후 미국의 인터넷 통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들끓자 어쩔 수 없이 취하게 된 조치인 셈이다.  (ICANN : 인터넷 도메인 관리와 정책을 결정하는 도메인관련 국제최고기구)

 

이렇듯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터넷 통제와 감시 행위에 맞서 싸우는 시민들의 모습을 결코 남의 일인 양 가볍게 받아들이면 곤란할 듯싶다.  SNS 괴담 운운하며 이의 통제를 꿈꿔온 우리에겐 외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필요성마저 엿보인다. 

 

카드 정보 유출 2차 피해보다 더 괘씸한 정부의 '괴담' 규정

 

애초 추가 정보 유출 따위는 절대 없을 것이라며 호언장담했던 정부의 태도, 물론 굉장히 괘씸하다.  또한 이를 알고서도 검찰의 수사발표가 있기까지 일부러 숨겨온 사실 역시 너무도 괘씸하다.  하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벌어진 2차 유출 우려에 대해 국민들이 불안감을 호소하는 행위마저 '괴담'으로 취급하며 전담팀까지 투입시켜 대응한 행위는 그보다 백배, 아니 천배는 더 괘씸하다.

 

정부는 이미 양치기소년이 돼버렸다.  2차 유출 0건을 호언장담하더니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 됐을 뿐 아니라 국민들의 우려 섞인 걱정과 호소마저 통제하려 한 파렴치한 행각이 들통난 상황인지라 그 어떤 변명이나 대책 따위가 무색할 지경이다.  때문에 이미 2차 유출 피해가 현실화된 마당에 이후 또 어떠한 피해로 연결될런지의 추측이나 예상은 디지털의 특성상 크게 의미를 두긴 어려워 보인다.  한 번 새나간 정보는 이미 지금 이 시각에도 무한복제가 이뤄지며 또 다른 범죄 형태로 모의되고 있을 테니 말이다.

 

이 상황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과연 무얼까?  책임자 처벌?  그런 눈에 빤히 보이는 형식적인 대책 같은 건 너무 식상하다.  책임자를 바꾼다고 하여 유출됐던 개인정보가 다시 제발로 살아 돌아올 일은 절대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아주 간단하다.  우선 전 국민의 기존 주민등록번호를 전량 폐기하고 새로운 체계의 번호로 재설정하여 부여해주는 방법이 있겠다.  그러나 이 또한 다시 털리면 유명무실해질 테니, 차라리 다른 방식의 도입을 신중히 검토해 보자.  전 국민에게 수백 개의 서로 다른 주민번호를 부여해주고 이것이 등록된 OTP를 지급하여 온라인 상에서 주민번호 입력 요구 시마다 인터넷뱅킹 거래하듯 매번 이를 통해 무작위로 새로운 번호를 부여받아 입력하는 방식은 어떨까? 

 

물론 절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정부의 심사숙고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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