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아베의 립서비스에 일희일비해선 안 될 이유

새 날 2014. 3. 16.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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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아베 총리가 14일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수정 않고 계승하겠다고 밝혔다.  아베가 고노 담화 수정 의지를 공개석상에서 부인한 것은 취임후 최초의 일이다.

 

그동안 그는 침략 전쟁과 식민 지배를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 내각의 결정인 만큼 인정할 수밖에 없노라는 입장을 피력해온 반면, 종군위안부 인정과 사과를 담은 고노 담화에 대해선 '관방장관 담화'에 불과할 뿐이라며 그 의미를 애써 축소해 왔다. 

 

한편 지난 13일 미국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 출연하여 "역사인식 문제는 근본적으로 신뢰 관계를 해치기 때문에 공동의 번영과 이익에 있어 큰 장애가 된다"며 일본의 우경화 행보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아베의 이번 발언 단 한 마디에 반색하는 듯한 속내를 비치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아베에 대한 긍정 평가는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최초의 일이다. 

 

 

때마침 우리 언론들은 아베의 이번 발언이 한일 정상회담으로까지 이어지리라는 조심스런 전망과 함께 뒤엉킨 한일관계의 개선에도 단초 역할을 하게 되리라는, 다소 섣부르지만 희망 섞인 예측마저 내놓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우린 이를 전향적인 움직임으로 봐야 하는 걸까?

 

아베가 이제껏 보여온 우경화 행보와 그의 뼛속 깊은 출신 성분 등을 놓고 볼 때 이번 단 한 마디만으로 일본의 우측 행보가 다른 방향으로 바뀌리란 게 과연 가당키나 할까?

 

모두가 예측하고 있듯 아베의 이번 립서비스는 오바마 대통령의 4월 한국과 일본 순방 전 한일 관계 개선을 요구한, 미국의 압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취한 제스처일 뿐이다.  아울러 오바마의 방문에 앞서 오는 24일부터 25일까지 네덜란드에서 개최되는 핵 안보 정상회의에서의 한일 정상회담 성사를 고려한, 다분히 계산적이며 의도적인 발언이기도 하다. 

 

 

큰 형님 미국이 아우인 한국과 일본을 방문한다는데, 이들이 다투며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보기가 좀 그러하니 소원한 관계를 화해시키려는 온갖 장치들이 총동원되고 있지만, 물리적인 억지 화해를 통해 과연 화학적인 변화까지 이뤄낼 수 있을까? 

 

어림없는 소리다.  아베는 이날 고노 담화를 수정 않겠다는 뜻을 밝히면서도 "전후 체제로부터 탈각하여 생기 넘치는 일본을 만들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현재의 일본 평화헌법은 전쟁에서 승리한 세력인 점령군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에 이를 개헌하겠다는 뜻이며, 결국 우경화라는 칼날을 품속에 숨긴 채 겉으론 웃으면서 여전히 언젠가 이를 휘두를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겠다는 속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치권의 움직임보다는 어느덧 일본 사회 내로 깊숙이 스며든 채 자연스레 발현되고 있는 우경화의 바람이 더욱 우려스럽다.  그동안 아베가 총대를 매고 앞에서 진두지휘하며 분위기를 고조시켜 왔던 탓인지 일본 사회는 이미 우경화가 대세로 자리를 굳힌 분위기다.  비근한 예로 정치색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야 할 스포츠계에도 이로 인한 영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정도다. 

 

 피파 홈피 쇼핑몰에서 판매되고 있는 일본 축구 유니폼

 

지난해 11월부터 착용하기 시작한 일본 축구대표팀 유니폼, 비록 색은 다르지만 누가 보더라도 일본 침략 전쟁의 상징인 욱일승천기를 형상화하고 있다.  그러나 FIFA 측의 특별한 제재가 없는 이상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일본 대표팀은 이 유니폼을 입고 뛸 예정이란다.  해당 유니폼은 FIFA 공식 사이트의 쇼핑몰에서도 버젓이 판매되고 있어 일본의 극우적 망동은 이제 글로벌 상품화 단계에까지 이르고 있다. 

 

욱일승천기는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상징으로서 1945년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뒤 이의 사용이 전면 금지되었으나, 언젠가부터 일본 자위대를 통해 은근슬쩍 부활되더니 최근엔 일본 우경화의 상징과도 같은, 없어선 안 될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때문에 정치적인 의사 표현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는 FIFA가 지난 런던 올림픽 당시 독도 세레모니를 한 박종우 선수에게 제재를 가했던 것과는 달리 이에 대해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는 행태는 형평성 논란을 부추기기에 충분하다. 

 

ⓒYTN 방송화면 캡처

 

이뿐만이 아니다.  일본 자국 프로축구 리그에도 우경화의 그림자는 어른거리고 있다.  프로축구장 출입구엔 일본인만 출입하라는 자극적인 문구의 현수막과 함께 일장기가 내걸리기도 한다.  특히 재일교포 선수들에겐 일본 관중들로부터의 원색적인 야유가 쏟아질 만큼 현지의 분위기는 험악하단다. 

 

우경화의 영향으로 일본에서는 한류 열풍마저 퇴조하고 있다.  한때 한류 열풍의 진원지이기도 했고, 여전히 우리에겐 가장 큰 손일 만큼 영향력이 막대했던 일본, 이젠 역으로 한류 열풍이 사그라들고 있는 유일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일본 TBS와 NHK는 물론 후지TV 등 5대 메이저 방송사들이 잇따라 한국 드라마를 편성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우경화의 대세는 일본 내 혐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우리의 한류 입지에도 커다란 타격을 입히고 있는 모양새다.

 

얼마전 일본 젊은 세대의 우경화 정도가 기성세대보다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어 우려스럽다는 보도가 잇따랐듯 흔한 정치인들의 망언이나 망동보다는 이렇듯 우경화 바람이 사회 깊숙이 스며든 채 일상이 되어 일본인들 삶에서 각양각색의 형태로 표방되고 있는 모습이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이미 대세로 굳혀진 일본 우경화가 미국의 압박에 의한 아베의 립서비스 한 도막으로 인해 그 기조가 바뀌리라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때문에 아베의 발언 한 마디 한 마디에 일일이 대응하며 일희일비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우리의 정서상 영 낯설며 달갑지 않게 와 닿는다.  외려 그럴수록 국민들은 따끔한 일침을 놓는, 줏대있는 대통령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지 않을까?  

 

겉으로는 유화적인 제스처를 사용해가며 립서비스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음흉한 속내를 숨기며 칼날을 세우고 있을 일본의 우경화 망동에 대해, 때문에 오히려 철저한 대비가 필요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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