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암 예방의 날, 복지부 발표 '암 예방 수칙'의 허점

새 날 2014. 3. 21.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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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3월 21일은 암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높이고 암 예방 치료 및 관리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국가가 지정한 법정기념일인 '암 예방의 날'이다.   그런데 왜 하필 3월 21일인 걸까? 

 

그래서 알아봤더니 그 의미가 나름 신선하기도 했으며, 진지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암 질병과 관련한, 다음과 같은 설명으로부터 차용해 왔단다.  

 

암 발병의 3분의 1은 예방활동으로 막을 수 있고, 또 3분의 1은 조기 진단 및 치료로 완치가 가능하며, 나머지 3분의 1은 암환자라 해도 적절한 치료를 하면 완화가 가능하다

 

어떤가.  이쯤되면 센스 작렬 아닌가?  때마침 복지부가 이날을 기념하고자 암 예방 수칙 10가지를 제시했다.

 

1. 담배를 피우지 말고, 남이 피우는 담배 연기도 피하기

2. 채소와 과일을 충분하게 먹고, 다채로운 식단으로 균형 잡힌 식사하기

3. 음식을 짜지 않게 먹고, 탄 음식을 먹지 않기

4. 술은 하루 두 잔 이내로만 마시기

5. 주 5회 이상, 하루 30분 이상, 땀이 날 정도로 걷거나 운동하기

6. 자신의 체격에 맞는 건강 체중 유지하기

7. 예방접종 지침에 따라 B형 간염 예방접종 받기

8. 성 매개 감염병에 걸리지 않도록 안전한 성생활 하기

9. 발암성 물질에 노출되지 않도록 작업장에서 안전 보건 수칙 지키기

10. 암 조기 검진 지침에 따라 검진을 빠짐없이 받기

 

암이라는 질병이 잘못된 생활 습관 내지 스트레스로 인해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졌기에 이 예방 수칙에 대체로 공감하는 편이다.  그러나 몇 가지에 대해선 딴지를 걸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우선 첫 번째 수칙 중 담배 피우지 말라는 말엔 개인적으로 지극히 찬성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길 걸으며 흡연하는 사람들이 널린 작금의 상황에서 남이 피우는 담배 연기를 도대체 어떻게 피하라는 걸까? 

 

가뜩이나 좁아터진 인도엔 이미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점령한 채 우리들의 안전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고, 스마트폰에 빠져 정신줄 놓고 다니는 사람들 탓에 더욱이 위험천만한 상황이거늘, 이젠 담배 피우는 사람들마저 신경 써가며 피해다녀야 하다니, 이쯤되면 정말이지 목숨을 건 고도의 지뢰 피하기 게임과도 같은 상황 아닌가.  일상을 게임 즐기듯 살벌하게 살아야 하는 이러한 현실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



정작 복지부가 해야 할 일은 담배 연기를 국민들 보고 알아서 피하라고 하기 전에 담배 연기 없는 환경을 만들어주여야 하는 게 우선 아닐까?

 

암 조기 검진 지침에 따라 무조건적인 검진을 종용하는 듯한 수칙도 보인다.  이게 과연 옳은 일일까?  '면역혁명'이란 저서를 남긴 일본의 세계적인 면역학자 아보 도오루는 오히려 잦은 암 검진이 암 발생률을 높인다며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암 검진을 받게 되면 암 발병 여부에 대한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 암 발생률을 훨씬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암 검진을 실시하는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발암비율이 높다는 논문이 제출되기도 했단다.

 

그럼 우리나라 암 학회가 마련한 암 조기 검진 관련 지침을 한 번 살펴보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흔히 발생하는 7가지 암에 대한 조기 검진 가이드 라인이다.  그런데 정작 한국인에게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는 암은 생뚱맞게도 이 7대 암이 아닌, 갑상선암인 것으로 밝혀졌다.  세계 평균치의 10배가 넘을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흔한 질병이 된 갑상선암, 실은 그 이유가 복지부가 암 예방 수칙으로 내놓은 조기 검진 탓이라는 의료계 일각의 주장이 제기됐다.

 

ⓒ국민일보

 

'갑상선암 과다진단 저지를 위한 의사연대'는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갑상선암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이유를 실제 환자가 늘었기 때문이 아니라 안 찾아도 될 암까지 굳이 찾았기 때문이라며, 조기검진과 과잉진단을 그에 따른 주범으로 지목했다.  일종의 양심선언인 셈이다.

 

이러한 결과, 물론 성격이 약간 다를 수도 있겠지만, 어찌 보면 앞서 언급한 일본의 면역학자 아보 도오루가 주장한 조기 검진으로 인한 폐해의 전형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암을 예방하기 위해 실시한 조기검진이 역으로 암 환자의 대량 양산이라는 웃지 못 할 상황을 연출한 셈이다.

 

병원이나 의사들 역시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담긴 의학 윤리를 존중하기에 앞서 영리를 추구하는 이익 집단이다.  때문에 자칫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이 될 게 너무도 뻔한 이번 발표가 국민들에겐 오히려 건강을 위한 알 권리를 제대로 충족시켜준 결과이기에 일부 의사들의 이번 양심선언이 무척 반갑게 와 닿는다. 

 

하지만 반대로 복지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절로 나오려 한다.  이러한 결과가 있기까지 무슨 일을 한 것이며 또한 여전히 무조건적인 조기검진만을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통계라는 도구는 바로 이럴 때 써먹으라고 만들어진 게 아니었던가.  통계 결과로부터 무언가 비정상적인 낌새를 차렸다면 정부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내고, 이를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야 함이 맞는 것 아닐까?  

 

국민들의 건강과 행복한 노후를 총괄하는 복지부여, 그동안 보여주었던 형식적인 모습에서 탈피하여 국민들의 피부에 직접 와 닿을 수 있는, 쫀득쫀득한 생활 밀착형 정책으로 보답하라.  이는 대한민국 전 국민과 시대가 요구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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