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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괴롭힘에 경각심을.. 영화 <망내인: 얼굴 없는 살인자들>

새 날 2026. 1. 9.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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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고생이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얼마 후 자살 사건으로 종결 처리된다. 숨지기 전 지은(박율리)은 성추행을 당해 가해자를 신고한 일이 있었고, 가해자 측에서 이의 앙갚음을 위해 거짓으로 사건을 꾸며 그 내용을 인터넷에 퍼뜨린 것. 그러니까 숨진 지은이 가해자로 낙인 찍힌 셈이다. 지은의 신상이 공개되고, 수많은 악성 댓글이 달리면서 그녀는 하루아침에 파렴치범으로 둔갑한다. 조롱과 모욕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지은의 언니 소은(강서하)은 동생의 죽음이 명백한 타살임을 입증하고 억울함을 풀기 위해 사설탐정 준경(김민규)을 찾아간다. 그는 이쪽 세계에서는 나름 실력자로 통하는 인물. 소은으로부터 동생 지은의 사건을 전해 들은 그는 처음에는 일을 맡지 않겠다고 완강히 버텼으나 소은의 끈질긴 구애 끝에 결국 수락하게 된다. 준경의 일 처리는 능숙했다. 해박한 관련 지식과 방대한 정보 처리 능력으로 사건의 실체를 막힘 없이 파헤쳐 나간다.

 

 

영화 <망내인: 얼굴 없는 살인자들>은 누명을 뒤집어 쓰고 온라인 괴롭힘을 당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여고생의 친언니와 사설탐정이 해당 사건을 파헤치며 실체에 접근해 가는 과정을 속도감 있게 그린 스릴러물이다. 추리 소설가 찬호께이가 쓴 소설 <망내인>이 원작.

 

 

범인으로 의심되는 쪽도 기술력은 만만찮다. 준경은 인터넷 공간에 남겨진 흔적을 통해 범인의 윤곽을 서서히 좁혀 나간다. 지은이 다니던 학교가 유력한 범행 배경으로 떠오른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지은의 장례식장을 방문한 학생들, 이 아이들부터 접촉하기로 한다.

 

학교를 방문한 준경과 소은. 치밀하게 사전 준비한 질문들을 아이들에게 풀어 놓은 뒤, 그로부터 결정적인 단서를 포착하는 추리 기법이 동원된다. 네트워크 접속 흔적, 그밖에 온라인을 싹 다 뒤져 찾아낸 갖가지 물증과 아이들로부터 획득한 정보를 종합하여 얻어낸 결정적인 단서. 진범은 바로 갤럭시폰을 사용하는 같은 학교의 학생. 

 

 

영화의 중반 부분까지는 소은과 준경이 학교를 오가며 아이들을 만나고 그로부터 범인을 압축해 가는 과정이 쉼 없이 펼쳐진다. 비교적 이른 시간에 밝혀지는 범인. 중반 이후로는 범인을 향한 소은의 대대적인 반격과 복수에 대부분의 시간이 할애된다. 더불어 평소 드러나지 않던 지은의 낯 선 면모가 하나둘 들춰지고, 자신이 알던 동생과 너무 달라 괴리감을 호소하며 혼란스러워 하는 소은.

 

범인 특정 이후 준경이 소은에게 복수의 길을 터주면서 온라인 공간에서 괴롭힐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 동원, 범인을 점차 고립시켜 나가는 과정은 무척 인상 깊다. 이때 준경의 역할은 온라인 공간에서 진실 여부와 관계 없이 자극적으로 꾸며진 악성 루머를 미끼 삼아 익명에 기댄 대중들이 희생양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쏙 빼닮았다. 

 

 

이때의 준경은 가용 가능한 모든 자원과 정보, 그리고 기술을 자신의 손아귀에 움켜쥐기라도 한 듯 전지전능한 능력을 겸비한 채 소은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며 그 재능을 마음껏 휘두르는 역할이다. 이는 익명 뒤에 숨은 대중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사용한 조롱 섞인 단어 하나하나가 비수가 되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들어가는 과정과 흡사하다. 대중들의 관심이 커져갈수록 희생양을 향한 괴롭힘은 속도감이 붙으며 칼끝은 더욱 예리해지기 마련. 전지적인 인물 준경을 대중들의 역할에 빗댄 연출이 돋보인다.

 

소은 배역의 강서하 배우. 안타깝게도 올해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이다. 이 작품이 유작인 셈이다. 일부 장면은 AI를 활용하여 마무리했다는 전언. 강서하 배우의 명복을 빈다. 

 

 

인터넷에 근거 없는 루머를 퍼뜨리고 사실 여부 확인 없이 이를 또 퍼나르기하며, 신상 공개에, 악성 댓글을 달거나 조롱하고 모욕하는 온라인 괴롭힘은 지금 이 시각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여전히 활개 중이다. 영화 <망내인: 얼굴 없는 살인자들>은 한 여고생의 자살을 촉발한 온라인 괴롭힘 사건을 통해 대중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다. 사회적 메시지가 뚜렷한 작품이다. 다만, 사건 전개 과정이 밋밋하고 흥미 요소가 다소 미흡했던 점은 아쉬운 대목. 

 

 

감독  신재호

 

* 이미지 출처 : ㈜제이씨엔터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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