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꿈의 궁전을 기대했건만.. 영화 <드림팰리스>

새 날 2026. 1. 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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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재해로 남편을 잃은 혜정(김선영)은 회사 측에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오랜 기간 싸워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회사 측과 돌연 합의하고 합의금으로 아파트를 장만하게 된다. 이른바 드림팰리스. 하지만 함께 싸워 온 동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아가며 어렵사리 내집 장만의 꿈을 이룬 기쁨도 잠시. 심각한 하자 발생으로 인해 그녀는 난처한 상황에 놓인다. 분양 회사는 분양이 모두 완료되어야 보수가 가능하다는 답변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

 

답답한 마음에 혜정은 입주자 회의에 참석, 해당 사안을 안건으로 제시해 보는데. 돌아오는 답변은 그야 말로 가관이다. 신규 분양 아파트의 하자를 공공연하게 떠벌리고 다니면 자신들의 집값이 떨어지니 받아들일 수 없단다. 내 재산은 스스로 지킨다는 입주민들의 격앙된 분위기에 짓눌린 그녀는 더 이상 입을 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직접 나설 수밖에. 그렇게 하여 그녀는 미분양 아파트 판촉 활동에 돌입한다. 

 

 

영화 <드림팰리스>는 남편의 사망 대가로 분양 받은 아파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 여성의 선택과 결정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사건과 엮이며 의도치 않게 그녀를 점점 더 궁지로 몰아넣는다. 제59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대종이 주목한 시선상을 수상했으며, 제43회 황금촬영상 시상식에서는 최우수 여우조연상을, 그리고 제43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는 감독상과 여우조연상을 각각 거머쥐었다. 그 해 영평 10선에 오른 작품이기도 하다.

 

한날 한시에 남편을 잃은 혜정과 수인(김윤지)은 진상 규명을 위한 농성 현장에서 동고동락하며 친분을 두텁게 쌓아온 사이. 그러나 혜정의 농성장 이탈 및 합의 이후 껄끄러운 관계로 뒤바뀐 두 사람. 최근 수인이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는 일마저 벌어진다. 혜정은 수인의 아이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와 엄마의 빈 자리를 대신 메운다. 물론 특별한 대가를 바라고 한 행위는 아니다.

 

 

이 때문일까.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져 있던 수인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진 듯. 수인은 수감 생활을 마칠 즈음 결국 농성을 풀고 회사 측과 합의에 이른다. 이윽고 혜정의 도움으로 드림팰리스를 분양 받아 서로 이웃이 된다. 비슷한 처지의 길을 걸으며 예전의 관계를 회복하는 듯한 두 사람. 이들에겐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영화는 산재로 남편을 잃은 혜정의 연이은 관계 단절과 고립에 이르는 혼란스러운 과정을 통해 돈의 사회적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극 중 돈은 권력 행사의 도구로써 매우 긴요한 장치이다. 산업재해의 원인을 제공한 회사가 진상 규명 입막음용으로 유가족들에게 제시한 합의금이나 흡사 고무줄을 빼닮은 듯한 아파트 분양 회사의 제멋대로식 주택 가격 책정 사례가 바로 그에 해당한다. 

 

 

금전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적 이해관계는 공동체 내부의 신뢰와 연대를 흔들고, 더 나아가 관계에 균열을 일으킨다. 돈은 집단을 하나로 묶는 결속 역할도 하지만, 동시에 집단을 갈라놓는 내부 분열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더불어 공동체 내부의 경계를 설정하고 배제의 논리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극 중 산업재해가 발생한 회사 및 아파트 분양 회사가 갑이라면 혜정을 비롯한 유가족 및 입주자 단체는 을. 갑은 돈이라는 권력 도구를 활용하여 을끼리의 싸움을 교묘히 부추긴다. 유가족끼리 갈등이 빚어져 서로 편을 갈라 등을 돌리는 행위, 그리고 아파트 입주민들끼리 서로를 내편 네편으로 나누어 싸우는 행위 등. 극 중 분양 팀장(김태훈)은 하자 보수를 요구하는 혜정에게 일개인이 큰 법인 회사와 법적으로 다투려는 계획은 무모하다며 회유에 나선다. 아니 외피는 회유로 두른 듯싶지만 실제로는 협박이다. 

 

 

혜정은 자신과 등을 돌린 유가족들 앞에서 정작 싸움 상대는 우리 스스로가 아닌 회사가 되어야 한다며 핏대를 세운다. 하지만 사건의 진실 여부를 떠나 이미 단일 대오가 심각하게 균열된 상황에선 공허한 메아리일 뿐. 아파트 값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라며 혜정을 궁지로 몰아 세우는 입주민 단체를 향해 우리의 싸움 대상은 분양 회사라며 혜정이 목청껏 소리쳐 보지만, 이미 돈의 속성에 길들여진 이들에겐 그저 소귀에 경 읽기.

 

집단 최면술에 걸리기라도 한 양 자신의 입장이나 원하는 결과에 배치되는 정보는 애써 외면하려는 사람들. 그들 앞에서는 혜정이 그렇게 선택하고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과정 따위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믿는 건 오직 결과뿐. 자신의 이익과 기대에 부합하는 정보만을 취사 선택하려는 집단에 의해 결국 혜정은 막다른 길로 향한다. 끝내 고립되고 마는 그녀.

 

 

영화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놓고 촉발된 집단 내 이기주의와 갈등을 꿈의 궁전을 그리던 한 여성의 단절과 고립이라는 결과물로 치환한다. 각자의 이익에 따라 어제는 이웃이었던 사람들이 오늘은 적이 되는 촌극. 그 이면엔 돈줄을 쥐고 흔드는 갑이 버티는 상황. 영화 <드림팰리스>는 아파트 공화국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감독  가성문

 

* 이미지 출처 : 인디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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