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한 어촌 마을. 작은 고깃배 한 척을 소유한 선장 영국(윤주상)은 어느 날 그가 고용한 용수(박종환)로부터 은밀한 제안을 받게 된다. 조업 중 자신이 바다에 빠져 숨진 것처럼 꾸미고 어촌으로부터의 탈출을 도와달라는 것. 영국은 용수를 이른 새벽에 몰래 떠나 보내고 그의 실종 사실을 관청에 신고한다.
해경과 어민들이 일제히 용수 수색에 투입되면서 마을은 발칵 뒤집힌다. 용수 어머니 판례(양희경)는 아들의 실종 소식에 까무라치기 일보직전. 2년 전 한국으로 들어와 용수와 신혼 살림을 차린 베트남 출신 영란(카작)은 충격 때문에 병원 신세까지 지게 됐다. 평소 마을회관에서 주민들과 고스톱을 치며 짜투리 시간을 소일해 오던 판례는 하루종일 부둣가에 앉아 수색에 나선 이들만 물끄러미 바라보는 게 일과.

용수의 빈자리를 메울 인력이 필요했던 영국은 관련 기관을 통해 수소문해 보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워 상대적으로 만만한 형락(박원상)을 택한다. 형락은 3년 전까지 만 해도 이곳 어촌에서 나름 전도유망한 인물이었다. 젊은 나이에 어촌계장을 맡으며 주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던 터. 하지만 얼마 후 어업권과 관련한 정부 보상을 받고 모든 걸 처분, 서울로 올라가더니만 최근 사정이 생겨 다시 내려온 인물이다. 이러한 전력 때문에 그는 마을 주민들로부터 배신의 아이콘으로 찍혀 철저히 배척 당하는 중.

판례는 동네에서 폐지를 주우며 억척 같이 살아온 인물이다. 아들을 향한 그녀의 모정은 남달랐다. 베트남 출신의 처자 영란도 그녀의 작품이다. 용수의 나이 40이 넘도록 장가를 못 가자 그녀가 손수 나선 것이다. 아들 명의의 보험도 가입해 놓았다. 용수가 기획하고 영국이 거든 이번 사기 행각도 다름 아닌 이 보험금을 노린 결과물.
영란에게는 영주권을 얻은 뒤 한국에 정착하여 알콩달콩 살아가고자 하는 소박한 꿈이 있다. 이를 위해 용수와 결혼하여 임신도 하고 집안일을 거들며, 영국의 일에도 직간접적으로 간여하는 등 착실히 입지를 다지는 중이다. 시어머니인 판례도 이런 영란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돕는 입장이다.

용수의 어촌 탈출 계획은 애시당초 한 달가량이면 무사히 마무리되고 자신이 원하는 결과물을 손에 쥘 것으로 예상됐다. 용수가 실행에 옮기기 전 사전 검토를 충분히 거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수가 발생했다. 그의 어머니 판례가 아들의 사망을 인정하지 않고 완강히 버티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작은 어촌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 어처구니없는 한바탕 소동은 지역 공동체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노정시킨다. 용수는 과연 그가 계획했던 대로 이곳 공동체로부터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
쇠락한 어촌 마을의 풍경은 삭막함 그 자체다. 마을엔 적막감만 감돈다. 구성원의 대부분은 어르신. 용수처럼 그나마 젊은 계층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들 탈출을 꿈꾼다. 그들이 비운 공간은 동남아 등 외국인 인력이 일부 메우고 있으나 이로 인해 발생하는 새로운 갈등은 또 다른 뇌관. 한국 사람들, 친절한 듯 보이나 은근히 무시하는 태도가 못마땅하다는 베트남 새댁. 극 중 아버지벌 연령의 혁수(유순웅)가 영란에게 성희롱성 발언과 행동을 서슴지 않는 등 이들을 향한 시선은 아직도 갈 길이 먼 듯. 이런 류의 수모를 수도 없이 겪었을 영란은 용수와는 또 다른 이유로 어촌 탈출을 꿈꾸게 된다.

영국에겐 아픈 가정사가 있다. 도시로의 탈출을 원했던 딸과 이를 극구 반대하는 자신의 의견 충돌로 빚어진 비극적 결말이다. 영국의 한숨 속엔 작금의 어촌이 품고 있는 온갖 문제점뿐 아니라 비극적 개인사에 대한 자조적 의미가 내포돼 있다. 그만큼 이 어촌 마을로부터는 희망을 찾을 수가 없다는 의미이다. 극 중 형락이 주민들과 다투면서 내뱉은 한 마디. "여긴 공동체가 아니라 공동묘지야."
영화는 희망이라고는 1도 없어 보이는, 공동묘지가 되어가는 작은 어촌 마을을 통해 관객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려 했을까. 영국이 형락에게 왜 서울에서 돌아왔느냐고 묻자 형락은 이렇게 답한다.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잖아요." 묘한 답변이 아닐 수 없다. 공동체가 아닌 공동묘지라 힐난하고 떠났던 그가 정작 죽을 수 없다며 돌아온 곳이 바로 여기 아닌가. 그러니까 자신을 절대로 받아주지 않던 이 공동체에서는 적어도 죽을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

이런 형락의 얼굴을 향해 냅다 주먹부터 날리는 영국. 용수를 포함하여 젊은 사람들이 하나둘 공동체를 떠나가도, 요즘엔 고깃배가 수지타산이 안 맞으니 낚싯배로 바꿔보라는 형락의 제안에도 콧방귀조차 안 뀌던 그 고집스러운 신념이 그래도 이 공동체엔 털끝만큼의 희망으로 남아 있는 게 아닐까. 뭉칫돈 갖고 따뜻한 곳에 가서 여생을 편안히 살라며 등 떠밀어도 이렇게 착하게 성실하게 살다 보면 좋은 날 오지 않겠느냐며 공동체를 고집스럽게 지키는 또 다른 인물 판례 역시 누군가에겐 희망이 되지 않을까. 형락이 죽을 일은 없을 거라며 찾아온 바로 그 희망. 희망과 절망 사이 그 어디쯤.
감독 박이웅
* 이미지 출처 : (주)트리플픽쳐스
'간접 경험의 즐거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영화 <마지막 숙제> (0) | 2025.12.30 |
|---|---|
|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하나.. 영화 <허들> (1) | 2025.12.26 |
| 익숙하기에 오히려 오싹한.. 영화 <홈캠> (1) | 2025.12.24 |
|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 영화 <대홍수> (2) | 2025.12.22 |
|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태어난... 영화 <이름에게> (1) | 2025.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