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가 뒷골목에서 폐지를 모아 근근이 살아가는 우식(장용)과 형준(박근형)은 어느 날 종이 박스 한 장의 소유권을 놓고 서로 자기 것이라 우기며 시비가 붙는다. 두 사람의 치열한 몸싸움은 주먹다짐까지 오고 간 끝에 인근의 야채 노점상 화진(예수정)에 의해 중단되는데. 싸움은 끝장을 볼 기세였다. 화진이 뜯어 말리지 않았더라면 틀림 없이 더 큰 사달이 빚어졌을 터.

이렇게 인연이 닿은 세 사람은 형준의 제안으로 소고기뭇국을 끓여 먹기로 한다. 홀로 살아가는 형준이 과거 아내가 해준 음식이 불현듯 생각나 즉석에서 제안하여 성사된 것이다. 형준의 집에 모인 세 사람. 화진의 도움으로 뭇국이 완성되고 정말 간만에 제대로 갖춰진 뜨끈한 식사 한 끼를 함께 나눈다. 소고기뭇국을 먹다 보니 고기 생각이 절실해진 우식. "우리 진짜 고기나 한 번 먹으러 갈까?"

영화 <사람과 고기>는 무전 취식 투어에 나선 세 노인에 대한 이야기다. 녹록지 않은 노인의 삶을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우식의 제안으로 모인 고깃집 원형 탁자에 세 사람이 빙 둘러 앉는다. 이게 얼마 만에 맛보는 고기인가. 고기 안주엔 역시 소주가 제격. 한 잔씩 걸친다. 뱃속이 든든해지니 마음에 여유마저 깃든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오가고, 상대의 처지도 헤아리게 되니 자연스레 정도 싹 트는 법.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이 세계에선 고기를 먹자고 제안한 사람이 계산하는 게 국룰. 하지만 우식이는 정작 돈 한 푼 없단다. 당황해 하는 형준과 화진. 우식은 이들에게 침착하라며 대응 방법을 귀띔한다. 차례로 내빼는 세 사람. 그러니까 무전 취식이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세 사람. 그날의 살 떨리던 무용담을 각기 풀어 놓기 바쁘다. 두 번 다시는 못 할 짓이라며 파안대소하는 그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우식이 똑같은 제안을 해 온다.
"우리 고기 먹으러 갈까?"
"돈은 있고?"
형준과 화진의 화답에 우식이 고개를 가로로 젓는다. 곤란한 표정의 형준과 화진. 하지만 세 사람은 어느새 고깃집 원형 탁자에 빙 둘러 앉아 있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 지난 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세 사람이 처음부터 의기투합하고 실행에 옮긴 셈이다. 어떤 일이든 처음이 어려운 법. 무전 취식도 자꾸 경험하다 보니 식당 고르는 법이나 메뉴 선택 법 등 나름의 노하우가 하나둘 쌓여간다. 돼지고기에서 시작하여 소고기 특수부위까지 넘보기 시작했고, 활동 영역도 서울 전역으로 확장됐다.

수차례의 성공을 발판 삼아 세 노인의 무전 취식 투어는 점차 대담해져 간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고깃집 업주들 사이에선 이른바 노인 사기단에 대한 소문이 파다했다. CCTV에 찍힌 이들의 사진은 이미 SNS를 뜨겁게 달구었고, 정작 본인들만 모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우여곡절 끝에 경찰에 넘겨진 세 사람.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노인은 추하고 무쓸모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강하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다. 공경은커녕 혐오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사회는 밝고 화려한 공간에 젊은 사람들과 뒤섞이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전철의 노약자석이 한쪽 귀퉁이로 밀려났듯 눈에 거슬리는 건 그게 뭐가 됐든 변방으로 몰아내야 직성이 풀린다. 탑골공원이 오갈 데 없는 노인들의 성지가 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영화 <사람과 고기>는 이렇듯 모두의 관심 밖 영역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는 노년의 삶에 따스한 시선을 건넨다.

세 노인이 살아온 환경은 저마다 다르다. 자식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낸 뒤 손자를 거두어 양육해 온 사람도 있고,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 온 사람도 있다. 그러나 현재를 살아가는 처지는 모두가 비슷하다. 노년층으로 접어듦과 동시에 빈곤의 나락으로 수렴해 가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2023년 기준 38.2%로 OECD 1위. 무엇을 의미할까. 노년층이 생활고를 겪는 건 물론 개인마다 각기 처한 특수한 환경과 사정 때문이기는 하겠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동안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경제 사회적 근간이 이들을 빈곤층으로 몰아넣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젊은 시절엔 그럭저럭 유지할 수 있었던 삶이지만, 자식들에게 모든 걸 퍼주고 나이가 들어 보살핌을 받아야 할 시기에 정작 그들에게 외면 받는 스토리는 그동안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다. 극 중 형준은 자식들을 향해 싸가지 없는 놈들이라며 싸잡아 비난한다. 비단 형준만의 사례일까. 어쩌면 이땅의 노인 대다수가 겪는 아픔일지도. 결국 작금의 노인 빈곤 문제는 일개 가정 내 해결을 넘어 사회 시스템이 나서야 하는 사안이다.
극 중 우식이 말한다. "최근에 이토록 심장이 뛰어본 적 있어?" 고기와 무전 취식을 떠올리면 도파민이 절로 샘솟는다. 이들에게 무전 취식은 일종의 놀이이자 해방구. 뒷방 늙은이로 전락한 뒤로는 기대나 희망 따위의 단어들과 자연스레 멀어졌는데, 이들에게도 드디어 심장을 뛰게 할 무언가가 생긴 것이다. 갈 곳 없어 탑골공원으로 내몰린 노인들에게도 '고기'를 제공하면 어떨까. 그곳에서 자연스레 벗어나지 않을까?
극 중 담당 직원들이 우식에게 수의를 안겨 주고 사진 몇 장 찍듯이 노인을 위한 복지는 그저 누군가의 치적을 홍보하거나 생색내는 수단으로 전락하면 안 된다.
노화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누구든 피해갈 수 없다. 결국 그 화살이 자신에게 향할 것을 알면서도 노인은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렇다면 언젠가 노인이 될 나나 당신의 미래가 너무 암울하지 않은가.
"우리 고기나 먹으러 갈까?"
감독 양종현
* 이미지 출처 : ㈜트리플픽쳐스
'간접 경험의 즐거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 영화 <대홍수> (2) | 2025.12.22 |
|---|---|
|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태어난... 영화 <이름에게> (1) | 2025.12.20 |
| 그러니 비밀일 수밖에.. 영화 <비밀일 수밖에> (1) | 2025.12.16 |
| 욕망의 결정체.. 영화 <84제곱미터> (0) | 2025.12.13 |
| 편지로 잇는 마법 같은 이야기.. 영화 <연의 편지> (1) | 2025.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