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편지로 잇는 마법 같은 이야기.. 영화 <연의 편지>

새 날 2025. 12. 11.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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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모 중학교에 재학 중인 소리(이수현)가 전학을 가게 됐다. 새로운 학교가 위치한 지역은 그녀의 유년 시절 흔적이 남아 있는 곳. 재학 동안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까닭에 숙식은 인근의 할머니 댁에서 해결해야 했다.

 

반 배정을 받고 아이들과 인사를 나눈 뒤 본격적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소리. 그런데 왠지 또래 아이들과 섞이는 게 쉽지 않은 듯 보인다. 아이들이 접근해 오면 소리가 거리를 두려 했고, 소리가 다가가야 하는 상황에서는 애써 외면하는 일이 반복됐다. 자연스레 아이들이 소리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상황. 그러다 보니 점심식사마저도 혼자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도대체 소리에게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 걸까.

 

 

영화 <연의 편지>는 학폭 사건에 휘말려 부득이 학교를 옮기게 된 한 소녀에게 어느 날 발신인 불명의 편지가 발견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이다. 조현아 작가의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하며, 제26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장편 심사위원상, 한국애니메이션산업협회장상, 코코믹스 음악상 등 3개 부문을 수상했다.

 

소리에게는 말 못 할 상처 하나가 있다. 전학 오기 전 연루된 학폭 사건 때문이다. 같은 반 친구인 지민(김연우)이 또래 아이들에게 괴롭힘 당하는 걸 제지하다가 사건에 휘말리게 됐다. 이로 인해 지민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고, 그녀를 도운 소리 역시 거의 도망치다시피하며 현재의 학교로 옮겨온 것이다. 당시 자신의 도움을 받은 지민이 저 혼자 훌쩍 떠나며 남긴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야속했다. 때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랬듯 자신 또한 괴롭힘을 보고도 못 본 척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자꾸만 품게 된다. 

 

 

소리는 이런 아픔 탓에 새로운 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 선뜻 마음의 문을 열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본인의 책상에서 우연히 편지 한 통을 발견하게 되는 소리. 전학생에게 보내는 글이었고, 발신자는 누군지 알 수 없었다. 학교 전반에 대한 소개와 교내 생활에 잘 적응하기 위한 꿀팁 같은 게 적혀 있었다.

 

"편지를 더 읽고 싶다면 다음 편지를 찾아줘"

 

강한 호기심이 발동하게 되는 소리. 마치 미션을 수행하듯 두 번째 편지를 찾아 학교 곳곳을 누빈다. 편지 글의 내용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소리에게 실질적 도움으로 다가온다. 덕분에 아직은 서투르고 조심스럽지만 몇몇의 아이들과 친해졌고, 어두웠던 낯빛도 점차 밝아지기 시작한다. 이 와중에 싹 튼 양궁부원 동순(김민주)과의 인연은 더욱 각별했다. 나머지 편지를 찾는 미션에 서로 힘을 보탤 수 있어서다.

 

 

소리와 동순에겐 결이 다른 공통분모가 있다. 동순은 일진 놀이에 빠져 툭하면 못된 짓을 일삼는 승규(남도형)와 일정 수준의 거리를 둬 오던 터다. 평소 친분이 있어 승규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 어려운 역학 관계. 이렇게 엮인 승규와의 관계는 동순을 끝까지 괴롭히는 일종의 올가미로 작용한다. 소리와 동순을 각기 붙들어 맨 학폭의 굴레. 그런데 두 사람에겐 또 다른 공통분모가 있었다. 다름 아닌 발신자 불명의 편지, 그리고 의심을 품은 우정.

 

소리는 과연 마지막 편지까지 모두 찾을 수 있을까. 더불어 그 길지 않은 여정엔 어떠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영화는 소리와 동순이 희미한 연결고리를 단서 삼아 펼치는 편지 탐색의 여정을 그리며, 그 이면에 감춰진 이야기의 실마리를 차근차근 풀어나간다. 학폭의 굴레를 떨쳐내고, 의심을 품었던 우정을 되찾으며 한층 성숙해지는 소녀와 소년. 불이익은 못 참고 불의에는 눈 감는 세태 속에서 소녀의 용기는 조그만 불씨가 되어 더 많은 이들이 불의에 맞설 수 있도록 북돋는 횃불로 승화한다.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작화 수준이 한층 업그레이드됐음을 입증하는 작품인 듯. 영화 <연의 편지>는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배경 위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이야기로 관객의 마음을 뒤흔든다. 투명한 그림은 오염된 눈을 정화시키고, 마법 같은 이야기는 구겨진 마음을 곧게 펴준다. 

 

 

 

감독  김용환

 

* 이미지 출처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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