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미술 학원 보조 강사로 재직 중인 강단경(김현수). 사실 그녀가 꿈꾸는 건 번듯한 웹툰 작가다. 언젠가 자신의 재능을 활짝 꽃 피울 날을 고대하며 틈틈이 수련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학원의 김세은(연이안) 강사가 국내 최고의 웹툰 플랫폼을 통해 정식 작가로 등단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학원 관계자며 학생들까지 모두들 나서서 그녀의 성공을 축하해 준다. 하지만 단 한 사람 단경만큼은 어쩐지 속내가 불편해 보인다.
그 무렵 단경의 애제자 태범(여회연)을 통해 우연히 접하게 된 다크웹. 그 곳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졌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접속해 본 단경. 자신이 시샘하던 세은의 웹툰 캐릭터 능욕 작품을 통해 커미션(업계에서 금전을 받고 원하는 그림 등을 창작해 주는 것을 의미)을 의뢰받으면서 모처럼 몰입이라는 걸 경험하게 된다. 세은을 괴롭힐 수 있다는 사실에 전율마저 느껴질 정도.

영화 <커미션>은 스스로 재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한 웹툰 작가 지망생이 다크웹의 커미션 의뢰를 받아들인 뒤 벌어지는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스릴러물이다. 디지털 세상 안에서 자기만의 세계에 도취해 있는 독특한 취향의 덕후들이 늘어나는 현실을 반영한 작품이기도 하다.
단경이 커미션을 대가로 다크웹에 올린 그림은 한 곳에만 머물지 않았다. 곳곳으로 퍼나르기 되며 결국 피해 당사자인 세은에게까지 가 닿았다. 그림을 그린 당사자가 단경으로 밝혀지고, 세은은 그녀를 고소하기에 이른다. 이 사건의 여파로 학원을 그만두게 된 단경. 이후 웹툰 업계의 천상계 실력자로 분류되는 그녀의 친언니 주경(김용지)의 도움으로 레거시 만화계의 거장 목진필(남명렬) 선생 휘하로 가게 된다.

목 선생의 작품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에 보조로 투입된 단경은 그녀와 함께 보조 역할을 담당하던 동료 박응태(정재오)를 통해 다크웹의 좀 더 내밀한 세계와 접하게 된다.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하드코어하거나 고어한 작품일수록 그 세계에서는 더 높은 평가를 받으며 그에 따른 상당한 금전적 대가도 뒤따른다. 단경은 익명의 커미션 제안자와 접촉하여 그들 각자의 입맛에 맞는 작품을 창작하기 시작한다.
단경이 작품 활동을 통해 최근 이토록 몰입하며 희열을 느꼈던 적이 있었던가. 그녀는 다크웹 세계에서 실력자로 인정 받으며 차츰 영향력을 키워 나간다. 덩달아 손에 쥔 돈의 액수도 불어났다. 한편 다크웹의 한냐(김진우)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자가 단경에게 커미션 의뢰를 해 온다. 가장 싫어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작품을 만들어 달라는 내용. 단경은 주저 없이 세은을 떠올렸고, 그 어느 때보다 심혈을 기울여 작품을 탄생시킨다. 이번엔 세은이 창작한 캐릭터가 아닌, 그녀를 직접 고어한 세계로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누군가에 의해 세은이 잔혹하게 살해된 것이다. 단경의 작품 속 형태와 똑같이 고어한 자태로. 수사 조직이 꾸려졌다. 그들은 단경의 턱 밑까지 추적해 온다. 당황한 단경. 당장의 위기를 모면해야 했다. 순간 떠오르는 건 평소 다크웹을 자주 드나들던 응태. 그래, 그에게 덮어씌우자. 그의 컴퓨터를 활용하여 다크웹에 접속, 자신의 작품을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수사에 혼선을 가하려는 단경. 그녀의 계획은 과연 뜻대로 이뤄질까.
이후 영화는 현실 세계에서 인정 받지 못 한 설움을 어둠의 세계에서 훌훌 털어버리며 다크웹의 최고 실력자로 등극하는 단경과 고어한 취향을 자신만의 방식대로 즐기는 다크웹의 십덕후인 한냐, 이 두 사람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벌어지는 멍군장군식 폭주를 그린다.

그렇다면 단경이 다크웹에 손 쉽게 빠져든 이유는 무얼까. 단경의 친언니 주경은 천재급 웹툰 작가다. 대중적인 인기도 구가 중이다. 반면 단경은 언니만큼 타고난 재능이 부족하다. 늘 자격지심에 기를 펴지 못 한 채 짓눌려 있었으며, 인정 욕구에 목 말라 있다. 현실에서는 이렇듯 보잘 것 없던 그녀가 다크웹이라는 일탈 세계에서 물 만난 고기마냥 인정을 받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고 몰입하며 행복감을 누릴 수 있었다.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현실은 어떨까. 어쩌면 영화 속 이야기보다 더욱 심각할지도 모른다. AI로 구현하지 못 하는 게 거의 없을 만큼 오늘날의 기술 발달은 놀랍다. 단순히 웹툰에서 그치는 게 아닌 실사나 영상을 활용한 범죄 행위를 부추길 개연성이 상당하다. 극 중 이야기는 그 가운데 한 갈래에 불과할 수도 있다.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우리가 알지 못 하는 방식으로 어떠한 형태의 범죄가 행해질지 알 수 없기에 더욱 두려운 것이다.
영화 <커미션>은 살아가기 위해 꿈을 꾸기 보다 살아남기 위해 꿈을 뒤쫓던 한 웹툰 작가 지망생의 일탈을 이야기한다. 허구에 불과하지만, 충분히 개연성 있는 소재를 다루기에 섬뜩하다.

감독 신재민
* 이미지 출처 : 팬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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